아이의 세 번째 생일을 맞아 워터파크에 가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어요.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도 싸고 티켓도 미리 샀죠. 그런데 아이에게 오늘 워터파크에 갈 거라고 말하니 가기 싫대요. 놀이터에서 노는 게 더 좋다고요. 이 상황에서 차분하게 "그래, 놀이터 가서 놀자"라고 말하실 수 있나요. 또 아이가 바나나를 달라고 해서 먹기 좋게 썰어 줬더니 통째로 먹고 싶었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쳐요. "입에 들어가면 다 똑같잖아, 짜증 그만 내"라고 화내지 않고 진심으로 연민을 느끼며 공감해 주실 수 있나요.

돌을 지나 유아기에 들어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육아가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 보셨을 거예요. 책이나 유튜브에서 이런 상황에선 이렇게, 저런 상황에선 저렇게 하라고 가이드를 주지만 왠지 우리 아이에게는 잘 안 통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그대로 실천하기가 어렵죠. 먼저 공감하고 마음을 읽어 주라는데, 바나나를 썰었다고 난리 치는 아이의 마음에 전혀 공감이 안 되는걸요.

여기서 말씀드릴 것은 그런 아이에게 어떻게 대처하라는 가이드가 아니에요. 난리 치는 아이를 짜증의 눈이 아니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아이의 행동을 보는 나의 심리 모델 자체를 바꿔 주는 지식이에요. 최신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델라훅 박사가 부모를 위해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쓴 책의 내용인데, 원제는 육아에서 뇌와 신체를 함께 봐야 한다는 뜻의 'Brain-Body Parenting'이에요.

육아 지식이 곧바로 실천이 되지 않는 이유

결론부터 말하면 육아를 잘하는 방법은 있어요. 양육이라는 주제로 전 세계 학자들이 수십 년 동안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훌륭한 지식을 쌓아 놨거든요. 그래서 육아서를 많이 읽은 분이라면 다들 비슷한 말을 한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지식을 잘 배워서 육아에 잘 적용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글쎄, 하게 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버럭 했던 어제 기억을 떠올리면서요.

제 생각에 그런 분들도 의식하든 안 하든 아이에게 더 나은 육아를 하려는 선택을 매일 하고 계실 거예요. 어떤 지식을 반복해서 접하면 그 지식은 신념이 되고, 신념은 행동에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거든요. 다만 사람은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기억보다 부정적인 기억에 더 강하게 영향을 받아요. 100만 원을 주웠다가 다시 잃어버리면 경제학적으로는 줍기 전과 마음이 똑같아야 하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안 좋아지잖아요. 육아 지식을 공부하면 잘하는 육아가 뭔지 알게 되지만 못하는 육아가 뭔지도 더 잘 알게 돼요. 그래서 아이와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면 그게 더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죠. 그래도 저는 뭐가 나쁜지도 모르고 육아했던 부모님 세대보다 반성하며 노력할 수라도 있는 우리 세대가 육아를 잘하기에 훨씬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책에도 나오는 말인데, 아무리 훌륭하게 키워도 아이가 가끔 떼를 쓰고 우는 걸 막을 수는 없어요. 유아들의 행동은 우리를 매우 힘들게 할뿐더러 비논리적으로 보이고 눈 깜짝할 사이에 통제 불능이 되기 쉽죠. 이 순간은 어쩔 수 없이 찾아와요. 저에게도요. 그 순간에 아이와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잘 대처하려면 방법도 방법이지만 부모 내면에 두 가지 선결 조건이 필요해요. 첫째는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것으로, 아이의 어떤 행동이 내 분노를 유발하는지, 나의 어릴 적 경험이 만든 내면의 트리거를 잘 인식하는 거예요. 둘째는 아이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는 거예요. 그러면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연민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되거든요. 여기서는 이 두 번째 이야기를 할게요.

아이의 행동은 빙산의 일각이에요

델라훅 박사는 아이의 행동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해요. 행동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조금이고 그 밑에 그 행동을 만드는 요인이 여러 가지 있는데, 사람들은 드러난 부분만 보고 좋다 나쁘다 판단하고 그 행동을 교정하기에만 급급하다는 거예요. 아이가 요새 짜증이 늘었다고 하면 많은 부모가 그걸 나쁜 행동으로 여기고 어떻게 줄일까에만 매달려요. 그러면 아이가 짜증을 낼 때마다 걱정과 불안이 커지고 부정적인 육아를 하기 쉽죠. 더 중요한 건 원인이에요. 원인을 이해하면 행동에 더 잘 대응할 수 있어요.

말하자면 이런 거예요. 지하철에서 임산부인 나에게 누군가 자리를 안 비켜 줘서 기분이 나빴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다리가 불편하다는 걸 알게 되면 짜증이 아니라 연민이 들겠죠. 그 사람도 어쩔 수 없이 거기 앉아 있던 거니까요. 아이가 짜증을 낼 때도 마찬가지예요.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예요. 이걸 이해하는 게 긍정적인 육아에 굉장히 중요해요.

아직 어리니까, 미성숙하고 자기 통제력이 약하니까 그렇지. 이 정도까지는 많은 분이 이미 알고 계실 거예요. 그런데 델라훅 박사는 그 이전에 아이의 신체, 즉 자율신경계의 변화가 행동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해요. 자율신경계는 외부 상황이 위험한지 아닌지 판단해서 몸을 긴장시키거나 편안하게 만드는 시스템이에요. 호랑이를 만나면 우리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박동과 혈압을 높여 잘 도망칠 수 있게 준비하죠. 내 의지로 제어할 수 없는 거예요. 대부분의 부모, 그리고 많은 심리학자도 잘 모르는 이 자율신경계의 작동을 이해하면 아이의 행동을 훨씬 잘 이해하고 더 잘 도와줄 수 있다는 거예요.

적색 경로, 녹색 경로, 청색 경로

어린아이는 '나는 안전하다'는 확신을 아직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예요. 경험이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보기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것도 위험으로 받아들이기도 해요. 이사를 가서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 예측 가능성이 줄어 삶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특정 감각을 위협으로 느끼는 아이도 있어요. 남성의 낮은 목소리, 특정한 움직임이나 촉감, 배고픔이나 갈증 같은 내적 감각, 강렬한 시각 자극이나 지속적인 눈맞춤에 위협을 느끼는 아이도 있죠.

이런 여러 요인으로 위협을 느낄 때 아이는 적색 경로에 들어선다고 델라훅 박사는 말해요. 투쟁-도피 상태라고도 하죠. 이 상태의 아이는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고 방어적이 되며 부모가 협조를 이끌어 내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스스로 행동을 조절하는 자제력이 낮아지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위협적인 소리나 표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돼요. 그래서 적색 경로에 있는 아이에게 부모가 화를 내면 아이는 더 큰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더욱 방어적이고 비협조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거죠.

경로는 두 가지가 더 있어요. 아이가 편안하고 수용적이고 융통성 있고 타인과 유대를 맺으려 하는 녹색 경로, 그리고 스트레스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아져서 에너지를 보존하려고 세상과의 단절을 택하는, 슬프고 느리고 무표정한 청색 경로예요. 육아의 어려움 대부분은 적색 경로에서 일어나요. 적색 경로에 있는 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뭐가 잘 안 되는 것 같은 스트레스 요인에 굉장히 취약해지거든요. 금방 짜증을 낼 수 있죠.

아이마다 적색 경로에 들어서는 이유는 다양해요. 피곤하거나 졸리거나 배가 고픈 것처럼 파악하기 쉬운 것도 있지만, 청각 자극이 과도하다거나 애착 대상과의 신체 접촉이 부족했다거나 어린이집에 매일 스트레스를 주는 위협적인 친구가 있다거나 하는 알기 어려운 것도 있어요. 그래서 아이가 적색 경로의 표시에 해당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면 부모는 아이를 잘 관찰해야 해요. 어떤 상황에서 왜 적색 경로에 들어서는지 파악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아이가 짜증을 낼 때 짜증이 아니라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해요. 빙산의 안 보이던 부분이 보이는 거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구나, 이 아이는 지금 위협을 느끼고 있구나, 취약한 상태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아이에게 연민이 들기 시작해요.

플랫폼을 튼튼하게, 공동 조절

그러면 아이가 적색 경로에 자주 들어선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요인들을 파악해서 미리 다 없애 줘야 할까요. 예측 가능한 일상이 틀어지는 게 요인이라면 평생 매일 똑같은 규칙대로 살게 해야 할까요. 소리에 민감한 아이라면 시끄러운 곳에는 데려가지 말아야 할까요. 그럴 수 없죠. 그렇게 하면 아이는 평생 부모의 섬세한 보호막 아래 배려받으며 살아야 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게 될 거예요.

대신 델라훅 박사는 아이의 플랫폼을 튼튼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고 해요. 플랫폼은 자율신경계라는 어려운 단어 대신 책에서 고른 말이에요. 아이가 적색 경로에 너무 자주 들어선다는 건 플랫폼이 취약하다는 뜻이에요. 이런저런 환경 변화 속에서도 위협을 느끼지 않고 대체로 편안한 녹색 경로에 머물게 도와주려면 플랫폼이 튼튼해야 한다는 거죠.

플랫폼을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이 공동 조절이에요.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기 힘든 순간에 처벌하거나 무시하거나 훈육하는 대신, 부모가 공동 조절을 하면서 아이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거예요. 간단히 말하면 먼저 표정이나 말투 같은 비언어적인 부분에 충분히 신경 쓰면서 아이에게 깊이 공감해 주고, 우리 아이를 가장 잘 진정시키는 방법을 찾아 적절하게 반응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 진심을 다해 잘 달래 주는 것, 아이의 감정 조절을 부모가 함께 하는 거죠. 인간은 누구나 힘들 때 누군가 옆에서 힘듦에 공감하고 도와주려 하면 그 유대감을 바탕으로 회복해 나갈 수 있고,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멘탈이 단단해져요. 반대로 힘들어서 도움을 요청하는데 부모가 훈육이나 규칙에 집착하고 부모 눈에 나쁜 행동을 고치려고 무시하거나 혼을 내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는 외로움을 느끼고 자기 삶이 안전하지 않다고 여기게 되고, 그 결과 플랫폼은 더 취약해져요.

공동 조절은 장기적으로 아이의 자기조절 능력도 키워요. 공동 조절 경험이 많아 플랫폼이 튼튼하고 주로 녹색 경로에 머무는 아이는 수용적이고 협조적이며 기꺼이 도전하려 해요. 안전하다고 느끼니까요. 예전에 위협적으로 느꼈던 것에도 선뜻 도전해 보고 '그렇게 무섭지 않네' 하고 깨달아 가면서 자기 능력에 자신감을 갖게 되죠. 그래서 스스로를 조절하려는 의지가 생겨요.

순간의 판단이 필요해요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든 순간에 공동 조절을 해 주라는 건 아니에요. 순간적으로 판단해서 아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순간에는 그렇게 하게 두고, 공동 조절이 필요한 순간에 부모가 개입해야 해요. 앞선 글에서도 말씀드렸듯 아이가 어릴 때는 공동 조절의 비중이 높고, 커 가면서 자기조절의 비중이 조금씩 높아지죠. 여기에 더해 아이가 지금 녹색 경로에 있는지 적색 경로에 있는지에 따라서도 공동 조절이 얼마나 필요한지가 달라져요. 감정의 강도가 1부터 5까지 있다면 녹색 경로에 있을 때는 3 정도까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적색 경로에 있다면 똑같은 나이의 똑같은 아이라도 1까지만 자기조절이 되고 2부터는 공동 조절이 필요할 수 있죠. 그래서 부모에게는 순간적인 상황 판단력이 필요하고,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아야 해요.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좋아져요. 아이와 육아할 날이 아직 몇 년이나 남았으니까요.

신경계 같은 낯선 개념이라 당장 이해가 안 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동안 육아 일상에서 나쁘다고만 여겨졌던 아이의 행동을 '이건 도움 요청이구나' 하고 접근해 보시고,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다가가 보신다면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경험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아이들은 결국 훈육이나 규칙보다 부모의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닌가 싶어요.

맨 처음의 두 사례로 돌아가 볼게요. 워터파크에 가자는데 싫다는 아이는 어쩌면 시끄러운 소리와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의 연속이었던 지난번 워터파크 경험이 부정적으로 남았을 수 있어요. 안전에 위협을 느껴 울음을 터뜨린 아이에게 부모가 "그러면 다음엔 안 데려올 거야" 하고 으름장을 놓았던 기억이 아프게 남았을 수도 있죠. 이걸 이해한다면 자기 생일에 워터파크에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좀 더 연민의 시선으로 다가갈 수 있어요. 바나나를 썰었다고 짜증 내는 아이는 여러 이유로 이미 적색 경로에 들어가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였고, 자기가 예측했던 것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가자 폭발해 버렸을 수 있어요. 이런 부분을 이해한다면 한층 더 담담하게, 사랑으로 아이의 짜증에 대처할 여유가 생기실 거예요.

정리해 보면

  • 아이의 행동은 빙산의 일각이에요. 드러난 행동을 고치기보다 그 아래 원인을 보세요.
  • 아이는 부모가 보기엔 위협이 아닌 것에도 위협을 느끼고 적색 경로(투쟁-도피)에 들어서요. 이때는 이성적 대화가 통하지 않아요.
  • 아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적색 경로에 들어서는지 관찰하세요.
  • 요인을 다 없애 주는 대신 공동 조절로 플랫폼(자율신경계)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세요. 진심을 다해 달래 주는 거예요.
  •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순간과 공동 조절이 필요한 순간을 그때그때 판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