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많은 말을 하며 살지만, 육아할 때만큼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도 없는 것 같아요.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가 아니라, 잔소리로 들리지 않고 아이 귀에 딱 박혀서 마음을 녹이고 행동을 바꾸는 말이요. 이번 글에서는 초등학교 교사를 12년 하신 최은아 선생님의 책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를 소개하면서, 부모가 덜 하면 좋은 말과 더 하면 좋은 말을 하나씩 짚어 볼게요.

선생님이 쓴 육아서를 좋아하는 이유

베싸는 육아 유튜브를 시작한 뒤로 육아 자료를 보고 공부하는 게 일이 됐어요. 가장 선호하는 자료는 한 분야를 오래 연구한 학자가 만든 자료예요. 경험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귀중한 통찰이 담겨 있거든요. 다만 학자는 수가 적고, 직업 특성상 데이터로 검증된 것만 말하는 경향이 있어서 현실에 적용하는 친절한 방법까지 알려 주지는 않아요. 그래서 베싸는 이런 자료를 소개하면서 직접 적용해 본 사례를 더해 실전에 쓰기 좋은 다리 역할의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어요.

그다음으로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적용법을 알려 주는 분들이 의사 선생님과 학교 선생님, 그리고 상담사나 치료사처럼 임상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에요. 이 중에서 베싸는 학교 선생님의 콘텐츠를 가장 좋아해요. 개인적인 견해니 감안하고 들어 주세요. 의사 선생님은 아무래도 병원까지 와서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불안이 크거나 실제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 그러니까 나쁜 케이스를 주로 봐요. 진단을 내리는 게 일이다 보니 한국 부모가 부족하고 잘못하는 양육을 짚어 주는, '너희 잘못하고 있어'라는 결의 콘텐츠가 많은 것 같아요.

반면 학교 선생님은 교실에서 아주 다양한 아이를 만나요. 나쁜 사례도 있지만, 누가 봐도 잘 자란 아이와 그 학부모를 직접 만난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좋은 사례 이야기를 많이 하죠. 사람은 혼나기만 해서는 잘 자랄 수 없어요. 육아 잘하는 사람들의 좋은 사례를 많이 만나면 모델링 효과가 있어서 내 육아 실력이 자라는 데 도움이 돼요. 게다가 선생님은 담임을 맡은 아이들과 오래 관계를 맺으면서 아이마다 다른 특성에 맞게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적용해 본 분들이라, 그 전략이 본인의 육아에도 책에도 잘 녹아 있어요.

베싸는 한국의 더 많은 부모님이 육아에 자신감과 효능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안 되는 것만 강조하면서 되는 것, 좋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반쪽짜리 가르침이거든요. "세상에 망한 육아는 없다." 책에 나오는 말이에요.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는 많이들 아시는 『자발적 방관 육아』의 후속작으로, 부모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꼭 중요한 말만 하면서 긍정적인 권위를 갖고, 아이는 자기 주도적인 삶으로 더 행복해지는 실용적인 전략을 알려 줘요. 육아 잘하는 선배가 "잘하고 있어" 하고 격려하면서 진짜 좋은 팁을 건네주는 느낌이었고, 베싸도 와닿는 부분이 많았어요.

덜 하면 좋은 말: "싫어도 해야 하는 거야"

이 말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싫어도 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 줘야 할 때가 있죠. 그런데 잠깐 아이 입장이 되어 볼까요. 아이는 조절 능력이 미숙해서 하기 싫은 게 어른보다 훨씬 많아요. 양치도 싫고, 야채도 싫고, 어린이집도 싫고, 하기 싫은 걸 꾹 참고 착한 어린이인 척하는 것도 싫고요. 그 싫다는 말을 가장 가깝고 편한 부모에게 표현해요. 그런데 우리는 '아이가 싫어하는 그걸 하게 해야 해'라는 조급한 마음이 앞서서, 싫다는 마음을 알아주기보다 "싫어도 해야 돼"라는 당위를 내세우기에 급급할 때가 있어요.

"싫어도 해야지"는 가깝고 편한 사람에게 자주 듣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해요. 남편에게 "오늘 회사 안 가고 이불 속에서 하루 종일 넷플릭스 보고 싶다"라고 투정을 부렸는데 "그래도 회사는 가야 하는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면 어떨까요. '맞아, 가야지'보다 반발심만 더 생기겠죠. 아이와 이런 소통을 많이 하고 계시고, 아이가 매사에 싫다고만 해서 이 말을 하는 빈도가 점점 높아진다고 느끼신다면, 차라리 그 말을 하고 싶을 때 그냥 안 하는 편이 나을 수 있어요. "싫어? 그럼 양치하지 마", "싫어? 그럼 어린이집 가지 마" 하고 허용적으로 대하지만 않는다면, 부모가 수십 번 말하지 않아도 아이는 이미 알고 있거든요. 싫어도 해야 한다는 걸요. 그걸 굳이 말로 들으면 안 싫을 것도 괜히 싫어져요.

베싸는 이 말을 잘 안 쓰는 편인데, 다미가 유치원 적응기에 유치원 가기 싫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한번은 "싫어도 가야지, 그게 다미 일이잖아. 엄마는 회사 가는 게 일이고"라고 했더니 다미가 이렇게 말했어요. "나도 알아. 그냥 이야기한 거야." 아, 그냥 싫다고 표현한 거구나, 들어 달라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더 어린 아이들도 그런 마음인데 표현을 잘 못 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어, 그래", "그럴 수 있지", "유치원 끝나고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정도로 대처해요.

대신 할 수 있는 말: 우리 같이 견뎌 내자

작가님은 "싫어도 해야 돼"라는 훈계 대신 다른 전략을 제안해요. 아이의 지금 삶에 공감해 주면서, 엄마 아빠도 뭔가 하고 싶지만 혹은 하기 싫지만 참고 하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모델링이에요. '그래, 우리 같이 견뎌 내자'라는 동질감과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 주는 거죠.

  • 양치하기 싫다는 아이에게: "엄마도 양치하기 귀찮다. 우리 같이 힘내서 해 보자."
  • 반찬 투정하는 아이에게: "이 반찬 엄마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잘 먹게 되고 싶어. 우리 같이 조금씩만 입에 넣어 볼까."
  • 초콜릿 사 달라고 떼쓰는 아이에게: "초콜릿 먹고 싶지. 엄마도 아이스커피 한 잔 먹고 싶다. 이제 가자."

훈계의 말은 빼고 담백하게 '그래, 너는 그런 마음이구나. 나도 원하는 게 있고 나도 싫은 게 있어' 하면서, 아이가 앉아 있는 벤치 옆에 잠시 같이 앉아 줬다가 손잡고 같이 쓱 떠나는 거예요.

책은 숙제나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학령기 아이 이야기도 해요. 부모는 밖에서 넷플릭스 보며 쉬면서 아이만 숙제하라고 방에 들여보내면 당연히 더 하기 싫겠죠. 그래서 부모도 공부할 거리를 만들어 거실이든 어디든 함께 모여, 하기 싫지만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같이 하기를 권해요. 서로 힘든 마음을 다독이고, 참는 모습을 보며 나도 더 참아 보고, 모르는 건 도움도 받으면서요. 베싸도 다미가 다 크면 함께 모여 각자 할 일을 마치고 다 같이 보드게임을 하거나 대화하는 단란한 가족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더 하면 좋은 말: "그건 옳지 않아", "그건 옳은 행동이야"

부모는 아이가 사회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으로 자랄까 늘 걱정해요. 그게 부모의 의무이기도 하고, 아이가 커서 배척당할까 봐 걱정되기도 하죠. 그래서 매일 "안 돼"를 외치며 받아들여질 수 있는 구성원으로 키우려고 무진장 노력하는데, 이 노력이 아이에게 정말 잘 전달되고 있을까요.

얼마 전 다미 할머니가 목도리를 사 주셨어요. 다미에게는 아이용 노란색, 할머니가 쓰실 어른용은 흰색이었죠. 그걸 보고 다미가 "나 노란색 싫어, 흰색으로 줘"라고 투정을 부렸어요. 선물 받은 사람으로서 예의가 아니었죠. 그때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다미야, 선물을 받았을 때는 싫은 마음이 들더라도 싫다고 말하면 안 돼. 다미를 생각해서 사 주셨으니까 일단 고맙습니다 하고, 나중에 색깔은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바꿀 수 있는지 살짝 여쭤 보자." 나름 잘 이야기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에 이 책을 읽고 나니 제 대처가 조금 아쉽더라고요. 더 명확하게 가르쳐 줄 수 있었어요.

우리는 아주 다양한 이유로 "안 돼"라고 해요. 그걸 먹으면 배가 아프니까, 그걸 입으면 이따가 추우니까, 엄마가 허락하는 수준을 넘어서니까, 그냥 안 돼. 그런데 이 상황은 아이가 예의에 어긋나게 행동한, 크게 보면 옳지 않은 것, 도리를 벗어난 것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엄마, 간식 먹어도 돼요?" "안 돼"와 같은 말을 쓴 거예요.

아이는 어릴 때는 엄마가 하지 말라니까 안 하는 일이 대다수지만, 조금씩 크면서 '이건 옳지 않으니까 안 돼'라는 내면의 기준에 따라 행동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해요. 아이가 도덕적인 존재가 되는 시기를 예전에는 만 5~6세쯤으로 보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만 2~3세부터 기본적인 도덕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근거가 나오고 있어요. 어떤 개념을 이해할 인지 능력을 갖췄다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황마다 계속 이름을 붙여 주면서 더 명확히 이해하도록 도와줘야 해요. 빠르면 만 2세부터 "이건 옳은 거야", "이건 옳지 않은 거야" 하고 부모가 계속 라벨을 붙여 줄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 아이는 옳은 게 뭔지 점점 잘 이해하게 되고, 옳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더 옳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요. 단순히 "안 돼"라고만 하면 아이는 안 되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여도 왜 안 되는지는 모를 수 있어요. 그걸 어기는 자기가 옳지 않은 사람, 예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까지는 모르고 그냥 안 좋은 거구나 하고 두루뭉술하게 이해할 거예요.

남이 속상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예의가 아니니까

"그렇게 하면 할머니가 속상하시겠지"라고 하면 안 될까요. 한국은 관계 지향적인 문화라 아이를 가르칠 때 이런 이유가 먼저 떠오르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남이 불편하니까, 민폐가 되니까, 남이 속상하니까.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도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옳고 그름, 예의 바름의 문제는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예요. 할머니가 "난 안 속상해"라고 하시면, 속상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면 싫다고 말해도 되나요?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되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누가 싫어하고 속상해하고를 떠나서, 어떤 행동은 그 자체로 예의 없는 행동이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려 주는 거예요. 작가님도 한국에 있을 때는 "너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해"라고 많이 말했는데, 지금 사는 프랑스에서 부모들이 "규칙을 존중해", "그건 예절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걸 듣고 관점이 바뀌었다고 해요.

옳고 그름보다 조금 좁은 개념인 예의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영어에서는 아이에게 be polite, don't be rude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한국에서는 "그러는 거 아니야", "그건 나쁜 거야" 같은 두루뭉술한 부정의 말 말고 어떤 말을 쓰나 고민해 봤더니 딱히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베싸는 "그건 예의 없는 거야", "그건 예의 바른 행동이었어"라고 라벨링해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런 말을 더 많이 쓰면 한국 아이들이 더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육아 문화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한 발 더 나아갈 수도 있어요. 한 연구에 따르면 유치원생 아이에게 "도와줄래?"라고 하는 것보다 "도움이가 되어 줄래?"라고 했을 때 아이들이 더 잘 도와줬다고 해요. 도와주는 행위를 넘어서 '나는 도와주는 사람이야, 나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야'라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방식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행동 단위로 옳다, 옳지 않다, 예의 바르다, 예의 없다를 붙여 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의 바르게 행동했을 때는 "너 정말 예의 바른 아이구나" 하고 정체성을 만들어 주고, 예의 바르지 않게 행동했을 때는 "너는 예의 바른 아이지 않니. 방금 그 행동은 예의가 없었던 것 같구나" 하고 내면의 정체성에 맞게 행동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할 수도 있어요.

저도 "다미야, 선물을 받았는데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는 건 예의 없는 거야, 옳지 않은 거야"라고, 오늘부터 이런 말을 더 적극적으로 써 보려고 해요. 육아하다 보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너무 많아 머리가 아플 때도 있지만, 당장 완벽하게 적용하려는 조급함은 버리고 좋은 사례를 꾸준히 보다 보면 아이를 대하는 말뿐 아니라 나의 인격도 성숙해지고 소통하는 능력도 자라는 느낌이 들어요.

정리해 보면

  • "싫어도 해야 하는 거야"는 가까운 사람에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에요. 허용적으로 대하지만 않는다면 아이는 이미 알고 있어요.
  • 대신 "엄마도 하기 싫지만 해" 하고 공감하며 함께 견디는 모습을 보여 주세요.
  • "안 돼"에는 여러 이유가 섞여 있어요. 옳고 그름의 문제라면 "그건 옳지 않아"라고 말해 주세요.
  • 남이 속상해서가 아니라 그 행동 자체가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세요.
  • 만 2세부터 "예의 바른 행동이야", "예의 없는 거야"라고 라벨을 붙이고, 예의 바른 아이라는 정체성을 만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