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안 된다고 말해도 무시하듯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는 청각 주의력, 그러니까 부모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이 아직 부족해서 그럴 수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아이가 한 번 말해서는 안 듣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부모님이 많으셨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여기에는 청각 주의력 말고도 여러 발달심리학적 이유가 있어요. 육아에서 생기는 문제는 대부분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거거든요. 이유를 잘 이해해야 부모도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고 스트레스도 줄어요.

첫째, 자아가 발달해야 죄책감을 느껴요

아이의 자아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으면 아이는 잘못된 행동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요. UCLA의 데보라 스티펙 교수는 14~40개월 아기를 둔 부모들에게 이런 걸 조사했어요. 아이가 거울을 보고 자기를 알아보는지, 스스로 착한 아이라고 하는 식으로 자기 평가를 할 수 있는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지.

결과를 보면, 아이가 안 되는 행동이라는 걸 알더라도 그걸 하지 않으려면 '그 행동을 하는 나는 착한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하는 자기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해요. 자기 평가를 하려면 그 전에 '이건 나야, 나는 독립된 존재야'라는 자아 인식이 있어야 하고요. 이 단계들을 거친 뒤에야 안 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식과 자기를 통제할 동기가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아이들은 어른이 기대하는 것보다 더 천천히 이 발달을 이뤄 가요.

  • 자아 인식: 14~18개월 아이의 80%가 거울이나 자기 사진을 보고 '이건 나야'라고 알아봤어요. 코끼리나 원숭이처럼 인지 능력과 사회성이 높은 동물만 할 수 있는 거고, 사람도 태어나면서부터 되는 건 아니에요.
  • 자기 평가: '나는 착해, 나는 나빠' 같은 평가와 표현은 19~24개월 아이의 절반 정도가 할 수 있었고, 그보다 몇 달 더 큰 아이들은 80% 정도가 할 수 있었어요.
  • 죄책감과 자기 통제: 잘못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고 그 행동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데는 더 오래 걸려서, 25~29개월은 51%, 30~40개월은 59%였어요.

베싸가 이걸 실감한 일이 있어요. 조카는 남자아이라 그런지 다미보다 조금 늦게 자기 평가에 민감해졌거든요. 다미를 칭찬해도 별 관심이 없다가, 어느 날부터 "저는요? 저는요?" 하면서 자기가 착한 아이인지 부쩍 궁금해하더라고요. 그 단계가 지나서야 하면 안 된다고 말해 줄 때 단순히 혼나서가 아니라 죄책감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충동을 억제하고, 착한 행동을 더 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아이가 세 돌쯤 됐더라도, 부모가 아무리 안 된다고 가르쳤어도, 굳이 재미있는 행동을 멈추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있어요. 왜 그래야 하는지 개념 자체가 아직 없을 수 있거든요. 통계를 보면 우리 아이뿐 아니라 많은 아이가 그렇고,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죠. 기질에 따라 시기의 개인차는 있고요. 세 돌은 넘어야 대부분의 아이가 집단생활을 수월하게 해 나가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둘째, 알아도 충동을 조절하지 못할 수 있어요

안 되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이렇게 하면 나쁘다는 걸 알아도, 눈앞의 자극에 이끌리는 충동을 조절하지 못할 수 있어요. 자극 추구 성향이 높은 아이는 충동 조절이 더 어려워요. 기질이 다 다른 만큼 충동 조절의 난이도도 다르다는 걸 이해해 줘야겠죠. 이성으로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은 만 3~6세 유치원생 시기에 가장 크게 발달해요. 일상에서 아이가 충동을 억제하고 기다려야 하는 기회를 많이 주고 성공했을 때 칭찬을 많이 해 주면, 이 나이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 평가가 가능하니까 '참고 기다릴 줄 아는 건 좋은 거야, 난 착하게 행동할 거야'라는 내적인 동기로 점차 충동을 조절해 나가요.

그러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아이가 나쁜 게 아니라 아직 미숙한 거다'라는 안경을 쓰고 아이를 봐 주세요. 그리고 눈맞춤을 하는 등 주의를 충분히 끈 다음 "그렇게 하면 안 돼"라고 명확히 말해 한계를 그어 주세요. 다만 내면의 기준으로 조절하기 어려운 어린아이에게는 안 된다는 걸 알려 주는 것만으로 부족할 수 있어요. 그 행동에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를 몸소 체험하게 해 주세요. 아직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라도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따라오는구나'라는 인과관계는 이해할 수 있거든요.

이때 그 행동과 무관한 벌을 주면 아이는 부모가 제멋대로 한다고 느껴서 억울해하고 반발할 수 있어요. 남에게 제멋대로 결과를 부과해도 된다는 것도 배우게 되고요. 그보다는 행동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여야 해요. 공공장소에서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하면 잠시 차 안이나 계단으로 데려가야 할 수 있죠. 변기 물을 마시면 안 된다고 했는데 계속 마시려 하면 몇 시간 동안 화장실 문을 잠가야 할 수도 있고요. 식당에서 소란스럽게 굴면 몇 번이고 데리고 나가서, 뛰어다니지 못하게 안고 "네가 더 얌전히 있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게. 준비되면 다시 들어가자"라고 해야 할 수도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가 궁극적으로는 재미없는 차 안으로 가기 싫어서, 식당 밖에서 심심하게 기다리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그 행동은 옳지 않기 때문에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내면에 갖도록 돕는 것이에요. 지금은 그 결과가 싫어서 좋은 행동을 하겠지만 계속 거기 머물러서는 안 돼요. 자연스러운 결과를 주면서 그 행동이 왜 좋지 않은지를 너무 부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꾸준히 설명해 주면 그게 점차 내면의 도덕적 기준이 돼요. 그다음부터 아이는 그런 행동을 하면 스스로 마음이 불편해서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게 되죠.

1단계 자아 인식, 2단계 자기 평가, 3단계 자기 통제. 2단계에서 3단계로 마법처럼 넘어가지 않아요. 부모가 한계를 그어 주는 과정에서 아이가 내면의 기준을 만들어 갈 수 있게 계속 메시지를 전달해야 해요. 아이의 언어 수준에 맞게, 너무 장황하지 않게, 왜 옳지 않은지 설명해 주세요. 윽박지르고 부정적인 결과만 경험한 아이는 이 마지막 과정을 겪지 못해서 내면에 제대로 된 기준이 자리 잡지 않을 수 있어요.

돌 무렵이라면 자아 개념부터

아이가 돌 정도로 아직 많이 어리다면 자아 개념부터 알려 주세요. 너는 독립된 개체라는 걸 알려 줄 방법은 일상에 무궁무진해요. 다미가 돌 조금 지났을 때 아주 좋아해서 자주 해 줬던 놀이가 "엄마는 이거, 너는 이거"예요. 제가 커피를 마시고 다미가 물을 마시면 "엄마는 커피, 너는 물" 하고 손가락으로 번갈아 가리키며 말해 줬는데, 다미가 말은 잘 못해도 "엄마 응, 밍 응" 하고 몇 번이고 따라 하곤 했어요. '너는 너고 엄마는 엄마야'를 배워 가는 중이었죠. 거울이나 사진을 보며 "이건 다미" 하고 실제 몸과 번갈아 보거나 만져 볼 수도 있어요. "다미 바지 입고 있구나"처럼 아이의 행동을 실황 중계하듯 말해 주는 것도 좋아요. 자기 행동의 주체로 자신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자아 인식이 자연스럽게 발달하거든요.

자기 평가는 사람의 행동을 다양하게 평가하고 묘사할 수 있다는 걸 알려 주면 돼요. 그림책을 읽으며 등장인물을 평가해 보는 건 어떨까요. 놀이하다 부모를 도와주거나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아이에게 "참 친절하네, 고마워"라고 말해 주는 것도 좋고요.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는 "안 돼"뿐 아니라 "아프게 하는 건 나쁜 거야"라고 더 정확히 이름 붙여 주세요. 다만 착한 아이, 나쁜 아이라는 틀을 지나치게 씌우는 건 많은 아동심리 전문가가 좋지 않다고 지적해요. 인격처럼 변하지 않는 본질보다 행동을 두고 좋다, 나쁘다, 친절하다, 관대하다, 멋지다, 무례하다, 허용되지 않는다처럼 다양한 형용사로 평가해 주세요. 그 평가를 바탕으로 아이는 자기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 가요. 미취학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를 좋게 보는 자아상을 갖다가 8세 이후 균형 잡힌 자아상을 만들어 가니까, 일부러 좋게만 혹은 나쁘게 평가하려는 노력은 필요 없어요. 아이는 잘 모르니까 객관적으로 "그 행동은 좋은 거였어, 나쁜 거였어" 하고 가르쳐 주는 거죠.

한 번 말해서 듣게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싶으시죠. 사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한 번에 말을 안 듣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훈육자의 역할을 방임하지 않고 아이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면, 대체로 아이들은 서서히 더 말을 잘 듣는 방향으로 자라요. 조금 더 성장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면, 오늘 아이에게 짜증스럽게 대하거나 "안 돼"로만 끝내지 않았는지, 그 대신 뭐라고 말할 수 있었을지 샤워할 때마다 한 번씩만 생각해 보세요. 차이는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 있지, 모든 걸 외워서 적용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 사이에 있는 게 아니거든요.

정리해 보면

  • 안 되는 행동을 스스로 멈추려면 자아 인식, 자기 평가, 자기 통제 순서로 발달이 따라와야 해요.
  • 두 돌 반에서 세 돌 사이 아이도 절반 정도만 죄책감을 느끼고 자기를 통제할 수 있어요. 못 하는 게 정상이에요.
  • 알아도 충동을 못 참을 수 있어요. 기다리는 기회를 주고 성공하면 칭찬하세요.
  • 주의를 끈 뒤 명확히 한계를 긋고, 행동과 연결된 자연스러운 결과를 체험하게 하세요.
  • 결과가 싫어서가 아니라 옳지 않아서 안 한다는 기준이 생기도록 왜 안 되는지 짧게 설명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