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3.11 · 18:50
돌부터 취학 전까지, 선택지를 주면 주의력이 발달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기는 갈등에서 아이에게 선택지를 주면, 그 순간이 실행기능과 주의력을 키우는 훈련이 돼요.
얼마 전 아이가 있는 친구와 백화점에 갔어요. 아이가 사고 싶은 옷이 있었는데 사 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아이는 통로 한가운데서 울기 시작했죠. 친구는 아이를 벽 쪽으로 데려가 앉히고 몸을 낮춰 "속상했지. 그런데 안 돼"라고 말했는데, 아이는 더 크게 울었어요. 결국 계단 쪽으로 데려가 울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줬고요. 상황은 마무리됐지만 진이 빠진 친구는 종종 있는 일이라며 고민을 털어놨어요. 더 좋은 방법은 없었을까요?
공감하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지만
아이의 좌절감에 "그랬구나" 하고 공감해 주고, 울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단호하게 말해 주고, 울음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 요즘 많은 부모님이 이 정도는 잘하고 계실 거예요. "당장 안 그치면 집에 갈 거야" 하고 윽박지르던 옛날 방식에 비하면 훨씬 낫죠. 이렇게만 해도 몇 달, 몇 년 지나면 아이는 무난하게 자라고 조절도 그럭저럭 해낼 거예요.
그런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하루에도 여러 번 일어나는 갈등 상황을 기회로 바꿔서 아이의 조절 능력과 주의력을 더 잘 키워 주는 방법, 바로 선택지 주기예요.
주의력을 잘 다루는 능력은 실행기능과 맞닿아 있어요. 충동을 참아 내고, 주의의 대상을 유연하게 옮기고, 마음속에 정보를 잊지 않고 계속 담아 두는 능력이죠. 실행기능은 학업과 성취에 지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취학 전에 가장 급격하게 발달하는데, 부모가 일상에서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많이 줄수록 더 잘 자라요.
자율성 지지 육아, 논문에서는 이렇게 정의해요
"자율성 지지 육아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봤어요. 명확한 답을 찾으려면 이 개념이 만들어진 논문들을 보면 돼요. 자율성 지지 육아를 많이 한 부모의 아이가 실행기능이 높더라는 인과관계를 끌어내려면, 연구자들은 먼저 어떤 행동을 보고 '자율성 지지 육아를 하는 부모'라고 이름 붙일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놀이방처럼 꾸민 연구실에 부모와 아이를 불러 장난감을 갖고 노는 장면을 녹화하고, 연구원들이 그 영상을 눈 빠지게 보면서 A 행동, B 행동, C 행동이 나타났는지 체크해서 분류하는 거예요. 그 뒤 당시와 1년 뒤 아이들의 실행기능이나 학업 성적을 재서 상관관계를 확인하죠.
여러 논문이 정리한 자율성 지지 육아의 핵심 행동은 이래요.
- 공감하기. 아이의 관점과 욕구, 감정을 금지하지 않는 거예요. 친구가 "속상했지"라고 말한 게 여기 해당하죠. "그런 감정을 느끼거나 그런 욕구를 가져서는 안 돼"가 아니라 "그렇게 느끼는 건 괜찮아, 나는 네 편이야"라는 태도가 첫 단계예요.
- 가능하다면 의미 있는 선택지 주기. 아이가 이해할 수 있고, 형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실제 영향과 책임이 따르며, 아이의 욕구를 어느 정도 반영한 긍정적인 선택지를 주는 거예요. 하나는 긍정적이고 하나는 부정적이면 진짜 선택지가 아니에요. "지금 밥 먹을래, 하루 종일 굶을래?"는 밥 먹으라는 말이고, "지금 엄마랑 집에 갈래, 밤늦게까지 혼자 놀이터에 있을래?"는 집에 가자는 말이죠.
- 선택을 제한해야 한다면 의미 있는 이유 설명하기. 모든 상황에서 선택지를 줘야만 자율성을 지지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아이 수준에서 납득할 수 있게 이유를 설명해 줘야 해요.
세 번째를 예로 들어 볼게요. 아이가 초콜릿을 먹고 싶어 할 때 건강한 간식 두 종류 중에 고르게 한다면 이상적인 선택지 주기죠. 하지만 곧 저녁 시간이라 그마저 줄 수 없다면 "지금은 간식을 먹을 수 없어"라는 한계를 정해 주되 이유를 설명해야 해요. 다미 정도 큰 아이라면 저는 이렇게 말해요. 간식은 식사보다 맛있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설탕이 많아서 건강에는 더 나쁘다, 아무 때나 먹으면 식사할 배가 남지 않는다, 그러면 키도 잘 안 크고 몸이 약해져서 엄마 아빠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없다. 다미는 얼른 키가 크고 싶고 엄마 아빠와 오래 살고 싶어 하니까 이건 다미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이유예요. 만 2세 이전이었다면 이런 말은 아무 의미가 없었겠죠. 그때는 시계를 보여 주며 "이 바늘이 3까지 가야 먹을 수 있어", "아까 간식 먹었지? 저녁 먹기 전에는 더 못 먹어"처럼 루틴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면 그게 의미 있는 이유가 돼요.
자율성 지지의 꽃은 선택지 주기예요
공감하기, 지시하지 않고 선택지 주기, 이유 제시하기. 이 여러 전략 중에 주의력과 실행기능 발달에 특별히 중요하다고 꼽히는 게 선택지 주기예요. 한 논문에서는 자율성을 지지하는 여러 육아 행위 중 아이에게 선택할 기회를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 실행기능 발달에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왜 그럴까요? 열쇠는 행위자 감각이에요.
행위자 감각은 원래 sense of agency라는 심리학 용어예요. 에이전시라고 하면 보통 뭔가를 대행해 주는 업체가 먼저 떠오르시겠지만, 이 단어에서 더 중요한 건 '대신'이 아니라 '행동한다'는 뜻이에요. 광고 에이전시는 광고를 직접 수행하는 회사잖아요. 에이전시는 실제로 행동하는 주체, 행위자를 뜻해요.
아주 어릴 때 아이에게는 양육자라는 대리인이 있죠. 울기만 하면 엄마 아빠가 밥도 먹여 주고 재워 주고 기저귀도 갈아 줘요. 그러다 점점 이 에이전시의 역할이 양육자에게서 아이에게로 넘어와요. 내 의지를 표현해서 엄마 아빠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 의지를 스스로의 행동으로 직접 연결하는 거예요.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내 행동은 내가 정한다는 감각이죠.
행위자 감각이 먼저 자라야 조절이 돼요
미네소타대의 발달심리학자 스테파니 칼슨 교수는 이렇게 말했어요. 아이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낄지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기 전에, 먼저 그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느껴야 한다. 행위자 감각은 의식적인 조절 능력이 나타나는 데 필수적인 선결 조건이고, 이것이 없다면 아이들은 자기 행동을 자유롭게 통제하기보다 본능에 따라 자동으로 반응할 거라고요. 감정이나 자극에 무작정 이끌리지 않고 스스로 감정과 행동, 생각을 조절하려면 행위자 감각이 먼저 발달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행위자 감각은 어떻게 발달할까요? 칼슨 교수는 일상에서 양육자가 아이에게 크고 작은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을 꼽아요. 평소에 내가 뭔가를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스스로를 조절해 보려는 의지가 생기거든요.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사람이 늘 내가 아니라 엄마라면, 내 행동과 감정의 책임도 다 엄마라는 에이전시에 떠넘겨져요. 광고대행사에 광고를 맡겼는데 매출이 안 나오면 책임은 대행사에 있죠. 아이도 마찬가지로 "다 엄마 탓이야"가 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행동해서 이렇게 됐네,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가 아니라요.
칼슨 교수팀의 연구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조금 어려운 퍼즐을 함께 푸는 동안 엄마가 선택지를 많이 줄수록 아이의 실행기능과 주의력이 높게 나타났어요. "이것들 중에 뭐부터 시작할까?", "여기엔 이것과 이것 중에 뭐가 더 잘 맞을 것 같아? 이 방향일까, 저 방향일까?", "다 끝났으면 다른 퍼즐도 풀고 싶니?" 하고 선택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주는 모습이었죠.
선택하는 순간 아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
그러면 아이는 선택을 하면서 어떤 경험을 하길래 주의력이 좋아질까요? 엄마와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TV를 계속 보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다고 해 볼게요. 엄마는 이렇게 말해요. "TV 더 보고 싶구나. 너무 재밌지. 그런데 약속한 30분이 지났기 때문에 더는 볼 수 없어. 너는 계속 울고 떼를 쓸 수도 있지만, 다른 재밌는 걸 엄마랑 같이 할 수도 있어. 그건 네 선택이야. 방금 본 퍼피 구조대 그림책을 읽어 볼까? 아니면 자석 타일로 퍼피 구조대 본부를 만들어 볼까? 아니면 조금 더 울고 싶어?"
이제 아이는 선택해야 하는 행위자의 위치에 섰어요. 울거나, 이걸 하거나, 저걸 하거나, 이건 너의 선택이라고 분명히 말해 주면 첫 번째로 일어나는 일은 아이의 기분이 좋아지는 거예요. 사람은 선택지가 없는 무력한 상황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고, 뭔가 고를 수 있는 상황에서 만족감을 느끼도록 진화했거든요. 선택을 내릴 때의 뇌를 촬영해 보면 보상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똑같이 활성화되고,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는 강요받았을 때보다 훨씬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뇌가 계속 "선택은 좋은 거야"라고 말해 주는 셈이죠. 반대로 "너 이제 TV 못 봐, 끝났어"라고 하면 아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무력한 상황에 놓여서 스트레스와 좌절감이 극대화돼요.
선택 욕구가 자극된 아이는 좀 더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상태에서 고르기 시작해요. 내 목표는 재미있는 것이고, 떼쓰며 울기, 그림책 읽기, 자석 타일 놀이 중에 뭐가 재밌을지 목표에 비추어 옵션을 비교하죠. 이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실행기능 훈련이 일어나요. 먼저 '뭐가 재밌을까'라는 목표를 머릿속에 담은 채 여러 옵션을 떠올리는 건 작업기억이 하는 일이에요. 목표나 지시를 머리 한쪽에 담고 거기에 계속 주의를 보내면서 다른 뇌 활동을 하는 능력이죠. 그리고 "자석 타일로 놀래요"라고 고르는 순간, 선택하지 않은 다른 옵션으로 향하는 충동을 억제해야 해요. 다 고를 수는 없으니까요. 앞선 글에서 마시멜로 테스트로 강조했던 충동 억제도 실행기능이에요. 이렇게 선택하는 과정을 거치며 아이는 주의력을 스스로 통제하는 실행기능을 훈련하게 돼요.
『부모의 말, 아이의 뇌』에서 데이나 서스킨드 교수도 아이의 자기조절 능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택권 주기라고 했어요. 어른이 모든 결정을 대신 내리면 아이는 자기 행동이나 그 결과를 고려할 필요가 없지만, 선택권이 주어지면 잠깐 멈춰서 선택지를 고민하고 중요성을 비교하고 하나를 고른 다음 그 결정을 말로 하거나 실행해야 하니까요.
선택은 어려운 것을 해내게 하는 내적 동기가 돼요
주의력은 과제를 대충 할 때는 좋아지지 않아요. 근육을 기르는 것과 비슷해서, 쉬운 운동을 대충 해서는 근육이 안 붙잖아요. 힘들게 할 때 근육이 찢어지고 회복되면서 커지죠. 주의력도 조금 어려운 과제에 의도를 갖고 더 집중해서 주의를 기울일 때,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면서 발달해요. 그리고 선택은 아이에게 이 어려운 걸 해 나갈 내적 동기를 줘요.
사람은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할 때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게 된다고 해요. 결과가 좋을 것 같을 때 더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하죠. 게다가 실제로 결과가 좋으면 다음번에 같은 선택을 하려는 내적 동기는 더 높아져요. 내가 선택해서 공부할 때와 엄마가 시켜서 공부할 때를 비교해 보면, 내가 선택하면 더 몰입하고, 결과가 좋으면 공부하고 싶은 자발적인 마음이 더 커져요. 반면 시켜서 할 때는 덜 몰입하고, 성적이 잘 나와도 공부 자체를 하고 싶은 내적 동기는 그다지 높아지지 않죠. 공부처럼 어렵고 하기 싫은 걸 높은 내적 동기로 해내는 건 실행기능 훈련으로 이어져요. 그러니 평소에 스스로 선택해서 활동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실행기능 발달에 중요해요. 이 원리를 유아 교육에 적용한 게 몬테소리 교육이고요.
백화점의 그 아이에게 다시 돌아가 보면
친구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좋았을까요? 공감한 다음 바로 "안 돼"라고 하기보다 선택지를 조금 주어서 무력감을 낮춰 줬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저라면 고민해 보고 이 정도로 말했을 거예요. "그 옷이 너무 예쁜데 살 수 없어서 속상했지. 그런데 백화점에 올 때마다 옷을 살 수는 없어. 너한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첫 번째는 크리스마스 때 살 옷을 골라서 미리 사진을 찍어 놓는 거야. 당장 살 순 없지만 크리스마스까지 그 옷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질걸. 두 번째는 오늘 꼭 뭔가를 사고 싶다면, 옷은 아니지만 작은 머리핀 하나는 사 줄 수 있어. 다 싫고 계속 울고 싶다면 좀 더 우는 것도 네 선택이야."
정답은 없어요. 아이가 우는데 그걸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잠시 기다렸다가 선택지를 주는 경험이 쌓이면 아이는 제가 생각하는 동안 '엄마가 뭔가 생각하고 있구나, 나한테 선택지를 주겠구나' 하고 조금 더 차분히 기다려 줘요. 물론 현실에서는 선택지 주기가 생각보다 어렵다고 느끼실 거예요. 선택지 주기에도 기술이 필요하거든요.
정리해 보면
- 실행기능은 취학 전에 가장 급격히 발달하고, 부모가 선택의 기회를 많이 줄수록 잘 자라요.
- 자율성 지지 육아의 핵심은 공감하기, 의미 있는 선택지 주기, 제한할 때 이유 설명하기예요.
-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행위자 감각이 있어야 자기조절이 시작돼요.
- 선택하는 동안 아이는 작업기억과 충동 억제를 훈련해요.
-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기는 갈등 상황에서 "안 돼" 대신 긍정적인 선택지 두어 개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