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베싸TV에 올린 영상의 '수면 독립'은 사실, 몬테소리를 공부하다가 시작하게 되었다.

몬테소리 공부를 하다가 아이의 독립심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본 날이 있었다. 몬테소리는 가끔씩, 이렇게 내가 육아를 잘 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반성해 볼 수 있는 기준점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육아에 큰 도움이 된다.

몬테소리에서는 아이들은 독립심에 대한 민감기도 있다고 했다. 민감기(sensitive period) 하면 사실 많은 부모님들이 결정기(critical period)와 헷갈리시기도 하고, 약간 겁먹기도 한다. 그런데 몬테소리에서 말하는 민감기란 사실 별 거 아니다. 독립심에 대한 민감기를 가지고 이야기해 보면, 아이들을 관찰해 보니 특정 시기에 독립적으로 뭔가 하려는 경향을 더 보이더라, 이건 그 시기에 그 독립심을 획득해야 하는 어떤 나름의 발달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시기에 더 독립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줘라, 이런 것이다.

돌 정도 되면서 아이들은 자아가 강해진다. 다미도 자기 주장이 정말 강해지고, 예전처럼 뭔가 해주려고 하면 싫다고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한동안 '아냐!'를 정말 많이 들었다.) 이런 것들이 독립심에 대한 민감기를 보여주는 게 아니었나 싶다. 부모님께 의존해왔던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독립적으로 해나가고 싶어하는 시기. 이 시기에 부모님이 아이가 충분히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부모님께 의존하는 게 더 편해지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누구나 의존하는 게 편하다. 누가 음식해주고 설거지해주면 편한 것처럼. 그래서 우린 돈을 내고 식당에 가지 않는가. 아이는 그런데 어른과 약간 달라서, '의존하면 편하다'도 있지만, '스스로 하고 싶다'도 있다.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욕구가 있고, 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뭔가 해내는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사실 다 해주면 편한데도 스스로 하겠다고 떼를 쓴다. 이 때 부모님은, 스스로 하게 하면 다 어질러지고 더 손이 가고 느려지고 힘들어지더라도, 아이가 왠만하면 스스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고 독립심의 민감기가 지나면, 아이는 그냥 '의존은 편하구나'만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 하고 싶다', '혼자 해내는 건 짜릿하구나'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독립적으로 뭔가에 성공하는 경험은,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경험일지라도 중요하다. 일단 동기 부여에 중요하다. 잠깐 건방진 소리를 해보자면, 나는 중학교 때 공부를 대체로 잘 하는 편이긴 했다. 그런데 아주 전교 1등 수준으로 하는 편은 아니었고, 전교 20위 정도 왔다갔다 하는 편이었다. 왠지 전교 10등 안에 드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일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난 20위 안에는 들어' 이 정도로 나를 규정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한 번 전교 3등을 했다. 그 때의 나에게 있어 전교 10등 안에 드는 건 일종의 성공이자 큰 마일스톤이었다. 이 성공의 경험은, 나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 예전보다 공부를 하는 게 더 즐거웠다. 그 뒤로 예전보다 공부를 더 자발적으로, 즐겁게 했던 것 같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내가 스스로 정한 '전교 10위 안'이라는 기준에서 성공을 한 번 경험한 것이, 나에게 자신감과 동기를 주었다. 더 높은 목표를 잡아, 또 한번 성공을 경험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고, 여기에 성공하면 또 그 경험을 자양분으로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이런 선순환이 만들어졌다.

아이도 마찬가지로 작은 성공의 경험들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도와줘서가 아니라,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이 스스로 해본 성공 경험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능력에 확신을 갖고, 더 어려운 도전도 해보고 싶을 것이고, 계속해서 성공하고 싶을 것이다. 뭔가를 스스로 해내고 나서 얼굴이 환해지며 박수 치는 아이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 부모라면, 아이가 성공에서 어떤 짜릿함을 느끼는지 감이 올 것이다.

이 성공 경험을 하려면, 부모님이 혼자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뭔가 해주는 데 너무나 익숙하다. 그래서 아이가 혼자 해보면서 성공 경험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들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도 있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다미가 옷을 자꾸 입혀달라고 했다. 한동안은 스스로 입겠다고 해서 거의 다 혼자 입었었는데. 왜 그러지? 하고 있었는데, AMI 과정에서 관찰 과제를 하면서 다미를 유심히 관찰해보니, 시터님이 다미 옷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입혀주고 있었다. 물론 이럴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즈음 다미가 옷을 하루에 5번 넘게 갈아입었던 시기라서, 시터님이 계속 옷을 처음부터 끝까지 입혀주는 게 더 빨리 습관으로 정착되었던 것 같다. 입혀주는 게 편한 경험을 자꾸 하다 보니, '의존은 편하구나'가 '혼자 해내는 건 짜릿하구나'를 이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옷을 혼자 입으라고 하면 자꾸 찡찡대면서 '도와줘, 다미 할 수 없어'라고 했다.

정말 할 수 없다는 걸 안다면 도와줬겠지만, 나는 다미가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예전에 이미 혼자 입었었으니까. 그래서 징징대도 굴하지 않고 '혼자 입고, 잘 안되면 도와줘.'라고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옷을 대충 막 입어보고 또 안된다며 징징댔다.(이미 '안 돼'라는 프레임이 생겨버리면 이렇게 노력도 하지 않고 포기한다.)

'한 번 더 해보자. 엄마가 여기 끝에 잡아 줄게.' 이런 식으로 최소한의 도움만 주고 스스로 하게 했다. 징징대면서 옷을 혼자 입은 다미에게 '스스로 티셔츠를 잘 입었네, 멋지다.'라고 칭찬해 주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시터님과 있는 시간에도 옷을 입을 때는 내가 이런 식으로 도와주자 몇 일 안 되어서 다미는 다시 금방 혼자서 옷을 척척 잘 입게 되었다.

아이가 혼자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부모가 옆에서 의존을 키워주는 경우가 많다. 독립심의 민감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에게, 혼자서 해내는 성공 경험을 통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아이에게, 부모의 이러한 뭐든 해주는 태도는 독이 될 수 있다. 몬테소리는 바로, 독립적으로 혼자서 하는 성공 경험을 교구니 일상생활 활동이니 하는 형태로 제공하는 커리큘럼일 따름이다. 사실 집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독립적으로 혼자서 하는 성공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혼자 식사하기, 혼자 상 차리기, 혼자 그릇 갖다 놓기, 혼자 잠들기, 혼자 빨래바구니에 빨래 넣기, 혼자 옷 갈아입기, 혼자 신발 신기, 혼자 냉장고 열어서 간식 꺼내기, 혼자 뭐 입을지 선택하기, 혼자 장난감/책 정리하기, 혼자 물 닦기, 혼자 청소하기...

물론 의존에 이미 익숙해진 아이는 처음에 좀 징징대고 해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할 수 있어'를 부모가 먼저 굳게 믿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아이도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되겠는가. 부모가 환경을 조성해 주기 나름이고, 조금 더 기다려주고 인내해주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