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안 돼'라고 하면 안 되나요, 행동을 어디까지 허용해 줘야 하나요. 육아하면서 많이들 궁금해하시는 부분이에요. 당연히 안 된다고 말해야 할 때가 있죠. 다만 아이의 요구에 부모가 보이는 반응 가운데 '안 돼'가 너무 큰 비율을 차지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아 두셨으면 해요.

부모의 의지와 아이의 욕구가 부딪히기 시작할 때

아이가 아주 어릴 때 부모는 대체로 아이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존재예요. 그런데 아이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세상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면서 부모의 의지와 아이의 욕구가 충돌하는 일이 서서히 많아져요. 영아기에는 "만지면 안 돼"가 대표적이고, 유아기가 되면 밥 먹다 사탕을 달라고 하거나 목욕이 싫다, 자기 싫다 하며 부모의 요청을 거부하는 여러 욕구가 나타나죠. 자율성을 위해 투쟁하는 시기가 오는 거예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생애 초기의 아이들이 뭔가를 성취하고 지배하는 능력을 갖기 위한 힘겨운 투쟁의 연속인 시기를 보낸다고 표현했어요.

이 충돌의 결말은 크게 두 가지예요. 하나는 부모가 이기고 아이가 지는 상황. 아이가 뭔가 하고 싶을 때 "안 돼"라고 제지하거나, 하기 싫은 것을 "해야 돼"라고 강요하는 경우죠. 아이에게는 선택지가 없으니 자율감을 느끼지 못해요. 다른 하나는 아이가 이기고 부모가 지는 상황. "그래"라고 허용하는 경우고, 아이는 당연히 자율감을 느끼죠.

그렇다고 자율성 지지 육아를 하려면 무조건 져 줘야 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자율성 지지 육아는 모든 결정을 '아이가 자율감을 느끼게 돕는다'는 단 하나의 원칙으로 내리라는 뜻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간단하면 육아가 얼마나 쉽겠어요. 육아는 여러 원칙을 조합해서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중 하나가 아이의 자율성을 지지한다는 원칙이에요. 이제까지 이 원칙을 별로 고려하지 않으셨다면 이제부터 함께 고려해 보자는 거죠.

현실에서는 부모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고, 이기지도 지지도 않아야 할 때도 있어요.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과도하게 이기기만 하는 통제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피하고, 때로는 져 주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윈윈 상황의 비중을 최대한 높이는 것. 그게 자율성을 지지하는 육아예요.

늘 이기기만 하면 아이 마음속 부모의 모습이 달라져요

부모가 아이에게 너무 이기기만 하면 왜 안 될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계속 아이와 관계를 맺어 가고 있고, 애착도 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는 좋은 관계죠. 모든 인간관계는 경험으로 모양이 만들어져요. 우리도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경험하면서 '나한테 잘해 주는구나', '함부로 하는구나' 하고 관계의 모습을 그려 나가잖아요. 아이도 부모와 상호작용한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 부모는 이런 사람이야, 나한테 이렇게 해'라는 어렴풋한 이미지를 마음속에 갖게 돼요. 학술적으로는 표상이라고 해요.

맥아더 이야기 완성 과제라는 검사 도구가 있는데, 놀이 속에서 아이가 여러 에피소드의 결말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고 아이가 부모에게 갖는 표상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훈육적인지를 살펴요. 베싸도 다미와 해 봤어요. 엄마가 머리가 아파서 TV를 꺼 달라고 했는데 친구가 놀러 와 TV를 보자고 하는 장면에서, 다미는 "안 돼, 엄마가 지금 머리 아파" 하더니 같이 재미있게 놀자, 맛있는 걸 꺼내 먹자며 이야기를 끝맺더라고요.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부모가 대체로 통제하는 경우, 그러니까 늘 부모가 이기기만 하는 경우에 아이는 '우리 엄마 아빠는 맨날 안 된다고 해'라는 표상을 만들어 가요. 맨날 안 된다고 하는 사람과 살면서 내 욕구를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싸워서 이겨야 해요. 아이는 '부모님이 이러시는 게 다 나를 위한 거지'라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능력이 없잖아요. 아이 눈에는 부모의 목표와 내 목표가 항상 반대에 있는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투쟁적이고 부정적인 관계가 만들어지죠. 아군이 아니라 적인 거예요. 이렇게 지속적으로 통제하는 육아를 받은 아이들은 장기적으로 더 반항적이거나 문제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어요.

반면 부모가 대체로 아이의 자율성을 지지하고 아이 말을 들어주려고 노력하면, 아이는 '우리는 같은 목표를 가진 파트너야, 엄마 아빠는 웬만하면 내 말을 들어주려고 해'라는 표상을 갖게 돼요. 부모와의 관계를 협력적이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거죠. 이런 아이들은 장기적으로 부모에게 더 잘 협조하고, 부모가 안 된다고 할 때도 더 잘 받아들여요. 자율성 지지 육아와 아이의 협조성 사이의 긍정적인 상관관계를 보고한 연구가 여럿 있어요.

힘겨루기에 승자는 없어요

아동심리학자 로스 그린 교수는 부모와 자녀의 협력적인 관계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썼어요. 권위와 힘은 나이가 어리든 많든 모든 인간에게서 최악의 것을 이끌어내고, 아이는 자기가 가진 모든 힘을 써서 부모의 힘에 대응한다. 그 결과가 흔히 말하는 힘겨루기다. 힘겨루기는 누가 이기고 지는지 가리는 것이 목표지만, 현실은 힘겨루기에 승자가 없다는 것이다. 당장은 한쪽이 우세하니 이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부모가 아이의 걱정이나 관점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낸다면, 조만간 아이도 부모의 걱정이나 관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하고, 그렇게 부모의 영향력은 사라진다.

"통금 시간까지 안 들어오면 핸드폰 압수야." "핸드폰 뺏으면 통금 시간 절대 안 지킬 거예요." 이런 식이죠. 그린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힘겨루기는 독재자의 왕국에서는 흔히 일어나지만 협력의 땅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늘 져 주는 것도 답은 아니에요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져 주느라 지나치게 허용적인 육아를 해요. 아이가 충분히 징징대기만 하면 원하는 것을 대부분 얻어낼 수 있는 집이죠. 이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부모가 행동의 기준점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아이의 욕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지 못하거든요.

아이는 그럴 능력이 생기면 부모와의 좋은 관계 속에서 '엄마 아빠와 원만하게 지내려면 이 부분은 내가 좀 포기하고 조절해야겠구나' 하는 동기를 갖고 스스로를 조금씩 조절해요. 이 과정에서 자기조절력이 길러지죠. 그런데 부모가 대체로 져 주기만 하면 아이가 자기를 조절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부모와의 관계는 우호적일지 몰라도, 그 관계가 아이의 자기조절력을 키우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는 거예요. 아이는 점차 부모가 져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 줄 거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생각하게 될 수도 있어요.

제3의 길,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윈윈

많은 분이 부모가 이기거나 지거나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제3의 방향이 있어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모교육 프로그램 PET를 만든 심리학자 토머스 고든 박사는 이걸 누구도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다는 뜻에서 무패 방식이라고 불렀어요. 친숙하게 말하면 윈윈이죠. 고든 박사의 『부모 역할 훈련』은 부모라면 꼭 읽어 봐야 할 교과서 같은 책이에요. 윈윈은 부모도 한발 물러서고 아이도 한발 물러서서 둘 다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는 연습이에요.

아이가 목욕하기 싫다고 하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볼게요. 부모가 이기는 건 이런 거예요. "싫어도 목욕은 해야 되는 거야." "목욕 안 하면 나쁜 아이야." "목욕 안 하면 TV 안 보여 줄 거야." "젤리 줄 테니까 목욕하자." 규칙, 권위, 지시, 협박, 보상으로 아이가 부모의 의지에 억지로 따르게 하는 거죠. 이런 상황이 절대 일어나면 안 된다거나 그 자체로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큰 그림에서 이런 식으로만 대처하면 좋지 않다는 이야기예요. 부모가 지는 건 쉽죠. "오늘 목욕하기 싫어." "알았어, 하지 마." 이것도 무조건 나쁜 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는 이게 더 나을 때도 있어요.

윈윈은 목욕이 싫은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면서, 때로는 부모가 한발 물러서기도 하면서, 아이가 자율적으로 부모의 제안에 동의하도록 동기를 이끌어내는 거예요. "지금 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그렇구나. 엄마가 10분까지는 기다려 줄게. 그 뒤에는 목욕을 꼭 해야 돼. 준비되면 이리 와." "눈에 물 들어갈까 봐 무섭구나. 샴푸할 때 얼굴에 수건을 얹어 줄게. 한번 해 볼래?" "다미 인형이 깨끗해지고 향기로워지고 싶대. 우리 같이 인형 목욕시켜 줄까?"

부모가 이기거나 아이가 이기거나, 이 두 방향은 한쪽이 진다는 점에서 윈루즈로 묶을 수 있어요. 윈루즈 구도가 일상이 되면 부모와 아이는 한 팀이 아니라 대립하는 관계가 돼요. 부모가 윗사람이 되어 권위나 보상, 협박처럼 부모만 쓸 수 있는 자원으로 아이를 이기거나, 아이가 윗사람이 되어 부모가 아이를 상전처럼 모시거나. '부모가 노예가 되면 안 돼, 대장이 되어야지' 혹은 '부모가 너무 권위적이면 안 돼, 아이에게 다 맞춰 줘야 돼'로밖에 결론을 못 내린다면 가정 안에 이기고 지는 관계밖에 없다는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예요.

아이는 인간관계에서 윈윈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정에서 배워요. 일차적으로는 부모와의 상호작용에서 배우고, 엄마 아빠가 둘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푸는지 보면서 간접적으로도 배우죠. '갈등은 누가 이겨야 끝나는구나'가 기본 사고방식이 된 아이는 사회에서 환영받기 어려울 수 있어요. 윈윈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려워서 이기려고만 하고 작은 양보를 잘 못하거나, 반대로 속수무책으로 양보만 하고 지기만 하거든요. 반면 가정에서의 경험으로 윈윈이 늘 가능하다고 믿고, 자기 일이든 친구 일이든 나서서 윈윈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아이는 사회적으로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아요.

윈윈 상황에서도 아이는 자율성을 어느 정도 느껴요. 부모가 한계를 그어 주고 그 안에서 아이가 고를 수 있는 여러 선택지를 제시하니까요. 동시에 아이가 자기를 조절하고 욕구 일부를 포기하는 경험도 하게 돼요. 져 주는 것이 무제한의 자유를 주는 거라면, 윈윈은 제한 속의 자유를 주는 거예요.

아이의 나이와 기질에 따라 다르게

언제 이기고 언제 져 주고 언제 윈윈해야 할까요. 아이의 발달 단계에 따라 조금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아이가 커 가면서 자율성을 발휘하려는 능력과 의지가 커지니, 충돌하고 제한하고 금지해야 하는 상황이 조금씩 많아지는 건 당연해요. 미국의 한 연구진은 6개월, 12개월, 24개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양육 태도를 세 부류로 나눴어요.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반응적이며 유아기에 접어들어도 제한이 조금만 늘어나는 부모, 따뜻함이 낮고 유아기에 제한이 크게 늘어나는 부모, 원래 따뜻했지만 유아기에 제한이 크게 늘고 따뜻함은 낮아지는 부모. 아이들이 40개월이 됐을 때 다시 봤더니 첫 번째 부류의 아이들이 사회적 발달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가장 앞서 있었어요.

다만 부모의 양육 태도가 아이 발달의 전부는 아니에요. 어떤 아이는 타고나기를 주의를 조절하는 능력이 좋고 부정적인 정서를 덜 경험하는 편이라 제한할 일 자체가 많지 않고, 그래서 긍정적인 육아를 하기가 더 쉬워요. 반대로 아이가 주의 조절 능력이 약하고 부정적인 정서를 자주 경험하는 기질을 타고나서 부모가 늘 지쳐 있고 의도치 않게 통제와 제한을 많이 하게 되는 경우도 있죠. 부모와 아이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예요. 그러니 내가 너무 통제적인 육아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신다면 내 성격이 그래서, 내가 부족해서라고 자책만 하기보다 '내가 조금 더 어려운 육아를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정리해 보면

  • 부모가 늘 이기기만 하면 아이는 부모를 '맨날 안 된다고 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적으로 대해요.
  • 늘 져 주면 아이가 스스로를 조절할 이유가 없어져 자기조절력이 자라지 않아요.
  •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지만 둘 다 한발 물러서는 윈윈의 비중을 최대한 높이세요.
  • 윈윈은 한계를 그어 주고 그 안에서 아이가 고르게 하는, 제한 속의 자유예요.
  • 통제가 많다고 느껴지면 자책하기보다 아이 기질까지 고려해 더 어려운 육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