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4.04 · 13:06
주의력 좋은 아이는 어릴 때 무슨 놀이를 많이 했을까
신체놀이는 부족하지 않게, 역할놀이와 열린 놀이는 꾸준히, 만 3세 이후에는 규칙 있는 게임 비중을 높여 주세요.
아이는 노는 게 일이죠. 그런데 무작정 뛰어다니며 아무렇게나 놀기만 하면 되는 걸까요, 아니면 어른이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 주거나 퍼즐, 보드게임 같은 특정한 놀이를 하면 더 좋을까요. 미취학 아동에게 학습을 시키는 게 뇌 발달에 좋지 않다는 건 이제 많이들 아시지만, 아이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주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실 거예요. 그래서 부모가 주목하게 되는 게 놀이입니다. 실행기능의 관점에서 어떤 놀이가 조금 더 효과적인지 연구 결과를 살펴볼게요.
신체활동은 뇌의 영양소예요
신체활동과 실행기능의 관계는 연구가 많이 됐는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와 없다는 연구가 둘 다 있어요. 실행기능 전문가인 아델 다이아몬드 교수는 신중하게 리뷰한 논문에서 근거가 부족하다고 결론 내렸고요. 그러니 신체활동을 많이 할수록 공부를 더 잘하게 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부족해서는 안 된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있어요. 저는 영양소 섭취량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비타민이나 미네랄이 결핍되면 나쁘지만 과다 복용한다고 더 좋아지지는 않잖아요. 신체활동은 뇌의 영양소라서, 넘치게 할 필요는 없어도 기본 수준은 넘어야 해요.
유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달리기를 얼마나 오래 할 수 있는지로 체력을 쟀는데, 체력이 낮은 아이들은 중간 강도 이상의 신체활동을 자주 하면 실행기능이 장기적으로 향상됐어요. 반면 체력이 좋은 아이들은 앉아서 하는 활동을 많이 하는 게 오히려 실행기능에 도움이 됐고요. 아이들은 하루 종일 열심히 놀기 때문에 체력이 넘친다고 느끼기 쉬운데, 몸을 썼을 때 금방 지치는지 숨이 차는지 같은 심폐지구력은 아이마다 차이가 있어요. 평소 신체활동 수준이 낮아 체력이 떨어지는 아이라면 몸을 쓰는 놀이를 많이 하는 게 실행기능에 더 좋을 수 있다는 거죠.
우리 아이 체력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면 세계보건기구 권장량을 기준으로 보통보다 많은지 적은지 가늠해 보세요. 권장량을 다 채우는 데 너무 연연하기보다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바깥놀이 시간과 집에서 갖는 바깥놀이 시간을 계산해 보고 부족하다 싶으면 주말에 노는 공간을 실내에서 실외로 옮기는 정도의 노력이면 좋을 것 같아요. 다미는 유치원에서 하루 90분쯤 바깥놀이를 하기 때문에 하루 180분을 꽉 채우지는 못해도, 하원 후 유치원 앞에서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노는 별것 아닌 듯한 한 시간을 저는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환경상 어렵다면 태권도나 줄넘기 학원을 보내는 것도, 아직 어리면 넓은 공원에 자주 나가거나 실내 체육 프로그램을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공원에 갈 때도 그냥 걷기보다 공을 가져가거나 부모도 운동 삼아 달리기 시합을 하면 신체활동이 자연스럽게 늘어요. 이걸 알아 두면 앞으로 첫 사교육을 정할 때나, 학교에 다니면서 아이의 신체활동이 확 줄어드는 시기에 조금 더 경각심을 갖고 대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열린 놀이와 닫힌 놀이
예전에 장난감을 추천하면서 열린 놀이와 닫힌 놀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학술적으로는 각각 비구조화된 놀이(열린 결말의 놀이)와 구조화된 놀이라고 불러요. 한 가지 장난감으로 둘 다 할 수 있어요. 블록으로 자유롭게 아무거나 만들면 열린 놀이, 부모가 만든 모델을 보고 똑같이 따라 만들면 닫힌 놀이예요. 장난감 음식으로 역할놀이를 하면 열린 놀이, 과일·채소·디저트로 분류하거나 사진을 보고 맞는 장난감을 찾으면 닫힌 놀이죠. 열린 놀이는 목적이나 정해진 틀이 없는 놀이, 닫힌 놀이는 목적과 때로는 규칙이 있는 놀이예요.
실행기능 측면에서는 뭐가 더 좋을까요. 연구들을 보고 제가 내린 결론은, 전반적으로 골고루 하는 게 좋지만 만 3세 이후에는 규칙이 있는 게임 같은 구조화된 놀이의 비중을 좀 더 높여야겠다는 것이었어요.
역할놀이, 어른이 적당히 끼어들면 더 좋아요
역할놀이가 충동 억제를 포함한 실행기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많아요. 해외에는 비고츠키 이론을 바탕으로 역할놀이를 중심에 두는 기관 커리큘럼도 꽤 유행하고 있고요. 역할놀이 안에서 아이는 '내가 맡은 역할대로 행동한다'는 나름의 규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원래 자기 모습대로 하려는 충동을 계속 억제하면서 실행기능이 좋아져요.
그런데 아이가 완전히 자유롭게 놀고 어른은 수동적으로 리액션만 하는 것보다, 어른이 적당한 지분을 갖고 개입해 놀이 수준을 계속 높여 줄 때 실행기능이 더 잘 향상된다고 해요. 아이가 단순한 레퍼토리만 반복하며 식당놀이를 하고 있다면 "아니, 음식이 왜 이렇게 짜요?" 하고 해결할 문제를 던져 줄 수 있죠.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역할만 맞춰 주기보다 "이번엔 내가 그 역할 할래, 바꿔서 해 보자" 하며 타협하고 양보하는 연습을 시킬 수도 있고요. 아이들끼리 역할놀이를 하면 갈등을 못 풀어서 금방 끝나 버리기도 하는데, 어른이 중재해 더 길고 다양한 시나리오로 흘러가게 도울 수도 있어요.
어른이 시나리오나 규칙을 정해 아이에게 역할을 맡기는 식으로 놀이를 주도하는 경우에도, 아이가 즐겁게 참여한다는 전제라면 실행기능 향상 효과가 크다고 해요. 그렇게 놀다 보면 다음번에 아이가 "지난번에 엄마가 하자고 했던 놀이 재밌었지, 우리 그거 또 하자" 하며 스스로 그 놀이를 이끌기도 하거든요. 놀이 레퍼토리가 늘어나는 거죠. 아이 주도가 중요하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듣다 보니 부모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반응만 하다가 놀이가 단조로워지는 경우도 있는데, 세상 경험과 놀이 소재가 풍부할 수밖에 없는 어른이 이끌 때 생기는 이점도 있으니 적당히 섞어 주세요.
다미가 다니는 유치원은 몬테소리 유치원이라 역할놀이 비중이 크지 않고 규칙 있는 구조화된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는 집에서 다미와 역할놀이를 많이 해요. 천이나 나무 막대가 든 드레스업 박스가 있고, 블록이나 루즈 파츠로 가게를 만들어 놀기도 하고요. 수동적으로 받아 주기보다 적극적인 플레이 파트너로서 의견도 내고 갈등 상황도 만들어 보는 편이에요.
미술, 블록 같은 열린 놀이는 자기주도성을 키워요
역할놀이가 아닌 열린 놀이, 그러니까 미술 놀이나 블록놀이, 스몰월드 플레이 같은 건 어떨까요. 저는 실행기능과 별개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한 연구는 자기주도형 실행기능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어요. 기존의 실행기능 측정 과제는 어른이 아이에게 규칙과 과제를 주고 그에 맞게 잘하는지만 봤기 때문에 자기주도성이 빠져 있다는 거예요. 아이가 정말 삶에서 자기 할 일을 스스로 계획해 해내려면 자기주도형 실행기능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죠. 이 연구에서는 그림 그리기나 규칙 없는 블록놀이 같은 자유놀이처럼 스스로 완전히 이끌어야 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 아이들이, 특정 수업을 받거나 정해진 대로 하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보다 자기주도형 실행기능이 높았다고 보고했어요.
주어진 공부만 잘하는 아이보다 자기주도적으로 해 나가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가 알아서 계획하고 만들어 가는 열린 놀이 시간도 어느 정도 확보해야겠죠. 블록놀이는 실행기능과 직접 연구된 게 많지는 않지만 수학적 능력이나 창의력 같은 다른 영역과 관계가 있다고 밝혀지기도 했어요.
만 3세 이후에는 규칙 있는 게임을
연구로 가장 잘 뒷받침된, 실행기능을 높인다고 알려진 놀이는 닫힌 놀이예요. 나름의 규칙과 구조가 있는 일종의 게임이죠. 다만 이 연구들이 대부분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은 알아 두세요. 유치원생쯤 되면 하루 종일 자유롭게 뛰어놀고 열린 놀이만 하기보다, 규칙을 따르고 충동을 억제하는 연습이 들어가는 게임 같은 놀이도 어느 정도 하면 실행기능에 좋다는 뜻이에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가라사대,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처럼 우리가 아는 동네 놀이가 여기 많이 들어가요. 유치원에서도 누리과정 안에서 그룹으로 많이 하고, 규칙을 따라야 하는 보드게임 형식의 놀이도 많이 포함돼 있어요.
정리해 보면
- 신체활동은 뇌의 영양소예요. 넘치게 할 필요는 없지만 기본 수준은 넘기세요.
- 어릴 때는 최소한의 신체놀이와 역할놀이를 많이 하고, 만 3세가 넘으면 규칙과 구조가 있는 게임 비중을 높이세요.
- 나이와 상관없이 미술, 블록 같은 열린 놀이 시간을 확보하면 자기주도형 실행기능이 자라요.
- 역할놀이에서는 부모가 문제 상황을 던지거나 역할을 바꾸자고 제안하며 적극적인 파트너가 되어 주세요.
- 아이가 다니는 기관에서 덜 하는 놀이를 집에서, 주말에 보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