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1.11 · 15:55
돌아다니며 먹는 아이, 식사에 집중하게 돕는 현실적인 방법
식사는 30분 안에, 영상 대신 대화로, 보상은 조심해서. 배고플 때 가족과 같은 음식을 먹으면 집중이 늘어요.
앞선 글들에서 먹이려는 압박이 식사 거부를 키운다는 이야기, 그리고 억지로 먹이는 대신 행복한 식사 시간을 만드는 두 가지 원칙인 식사 루틴 지키기와 책임의 분리를 말씀드렸어요. 이번에는 마지막 원칙, 아이가 식사에 집중하게 돕는 방법이에요.
식사는 30분 안에 끝내요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원칙만큼 중요한 게 식사 시간이 너무 늘어져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식사든 간식이든 30분 정도 안에 끝내는 게 가장 좋아요. 식사가 한두 시간이 되어 버리면 다음 식사까지 충분한 간격이 생기지 않아서 아이가 식사를 시작할 때 식욕이 돌 만큼 배고파지기 어렵고, 식사 시간과 아닌 시간의 구분 자체도 흐려지거든요.
이렇게 하루 종일 뭔가를 먹고 있는 걸 영어권에서는 그레이징(grazing), 소가 풀을 뜯는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해요. 소는 정해진 식사 시간 없이 하루 종일 먹지만 사람은 배고플 때 먹고 배부를 때 그만 먹어야죠. 간식도 마찬가지로 들고 다니면서 먹는 게 아니라 앉아서 30분 안에 먹고 치우는 게 바람직해요.
돌아다니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에요
식사 시간 지키기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아이가 식탁을 떠나 돌아다니려는 문제일 거예요. 그런데 저는 좀 큰 아이라면 모를까 유아 정도로 어린아이가 식사 중에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아주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릴 때부터 앉아서 끝까지 식사해야 한다는 예절을 유달리 강조하는 건 어느 정도는 동양의 예의범절이라는 문화적 맥락이 반영된 거라고 보고요. 물론 테이블 매너는 중요하고 부모가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하지만, 중요한 건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에요. 아이의 기질에 따라 그 과정이 길고 어려울 수도, 짧고 쉬울 수도 있어요. 어린아이는 아직 집중력이 짧고 오래 앉아 있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고, 기질적으로 활동성이 높은 아이는 더 어렵죠.
그러니 앉아서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앞세우기 전에, 다른 누구도 아닌 부모가 먼저 '이건 너한테 어려울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인정해 줘야 해요. 그런 다음 내가 환경적으로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거예요. 호주 정부가 운영하는 육아 정보 사이트에서 아이를 앉아서 먹이는 것에 관한 조언으로 제일 먼저 나오는 문장이 이거예요. "행동의 변화에는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차분하게 인내심을 가져라." 조급해하지 않고 길게 보면서, 행복한 식사 시간이라는 대원칙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아이와 손잡고 한 걸음씩 가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나를 흔드는 외적인 압력을 많이 마주하실 거예요. 무조건 앉혀서 먹여야 한다는 주변의 조언, 우리 아이보다 어려 보이는데 식당에서 얌전히 앉아 끝까지 밥을 먹는 아기의 모습,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 하지만 아이에게 뭔가를 하루아침에 가르칠 수는 없어요. 초등학생이 되어서까지 떠먹여 줘야 먹거나 돌아다니면서 먹는 아이는 별로 없잖아요. 부모가 조급해하거나 압력과 강요가 들어가면 행복한 식사 시간으로 가는 길은 더 멀어질 뿐이에요.
따라다니며 먹이기, 붙잡아 두기, 식사 끝내기
아이가 돌아다녀서 식사가 늘어지는 문제 앞에서 부모는 대체로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게 돼요. 첫째, 따라다니면서 먹인다. 둘째, 영상 시청이나 책 읽기처럼 아이를 식탁에 붙잡아 둘 수 있는 활동을 하면서 먹인다. 셋째,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식사를 끝낸다.
첫 번째는 이미 아시겠지만 좋지 않은 방법이에요. 앉아서 먹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돌아다니면서 먹어도 돼"라고 부모가 행동으로 보여 주는 거나 다름없죠. 아이를 따라가느라 부모도 식탁을 벗어나게 되고요. 식사 도중 식탁을 자주 이탈하는 부모님이 생각보다 많은데, 식사는 앉아서 하는 거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면 부모도 식사 중에는 가급적 식탁을 떠나지 않는 게 좋아요. 사회적으로 어떤 행동이 적절한지 배울 때 아이가 기본 모델로 삼는 게 부모의 행동이니까요.
저는 두 번째와 세 번째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어요. 두 번째 방법은 의아하시죠. 원칙적으로는 좋지 않아요. 하지만 앞선 글에서 말했듯 모든 원칙은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미는 상당히 활동적인 편이라 뇌물이나 협박이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식탁에 끝까지 앉아 있게 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책의 도움을 좀 받는 편이에요.
책은 되고 영상은 안 되는 이유
다만 두 번째 방법도 최소한으로만 쓰는 게 좋아요. 그 활동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아이가 식사에 줘야 할 집중력을 모두 빼앗아 버린다면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아이는 식탁에 앉아 100%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식사에 집중하는 경험을 조금씩 늘려 가야 하거든요. 책을 읽어 주면서 아이가 40%는 식사에, 60%는 책에 집중한다면 이 40%를 서서히 늘려 결국 100% 식사에 집중할 수 있게 돕는 거죠.
반면 영상처럼 자극적인 걸 보여 주면서 먹이면 아이는 영상을 보면서 기계적으로 입을 벌리고 씹을 뿐이에요. 이렇게 정신이 완전히 딴 데 팔린 채 먹는 걸 마인드리스 이팅(mindless eating)이라고 해요. 그 식사를 정말로 경험하고 있지 않은 거죠. 앉아서 식사하는 연습이 안 될 뿐 아니라, 배부름을 잘 못 느껴서 자기 양보다 더 먹게 되고 과식이나 이후의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상당히 많아요. 그러니 식사 중에는 웬만하면 영상을 보여 주지 않는 게 좋고, 배경으로 TV가 켜져 있는 집이라면 그것도 끄는 게 좋아요. 사실 아이와의 일상에서 배경 TV는 웬만하면 꺼져 있는 편이 좋긴 해요.
그래서 저는 식사 시간에 책을 보여 주더라도 그림책을 본격적으로 읽을 때처럼 스토리에 집중하지는 않아요. 책을 펴 놓고 그림을 보며 같이 이야기하거나, 그 그림과 연관된 다미의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주로 대화의 도구로 활용해요. 전문가들이 식사 중에 유일하게 권장하는 단 하나의 활동이 대화거든요. 식사 자리는 굉장히 사회적인 자리이고 대화가 큰 부분을 차지하잖아요. 아직 어려서 눈앞에 없는 주제로 대화하기 어려울 때는 책을 적절히 활용하면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돌아다니기 시작할 때가 있죠. 그럴 때는 세 번째 방법처럼 식사를 끝낼 수 있어요. 저는 엉덩이만 떼면 바로 종료하는 식으로 엄격하게 적용하지는 않아요. 조금씩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의자에 앉아야지", "앉아서 먹자" 하고 계속 말해 주면서 다시 와서 먹게 하고, 그래도 너무 돌아다니면 '이제 정말 배부르구나' 판단하고 한번 물어본 뒤 식사를 끝내요. 이 부분은 가정마다 다르게 적용하실 수 있어요. 세 번째를 아주 엄격하게 적용해서 성공한 사례도 분명 있을 거고, 집집마다 아이가 자발적으로 앉아 있게 하는 다양한 전략을 창의적으로 생각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보상은 조심해서 쓰세요
한 가지 주의해서 써야 할 전략이 있는데, 바로 보상이에요. "이거 다 먹어야 간식 줄 거야" 하는 거죠. 식사에서 보상을 활용하는 건 그리 좋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에요. 스티커나 칭찬처럼 덜 물질적인 보상을 적절히 활용하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있어요. 하지만 간식이나 영상, 장난감처럼 더 자극적이고 물질적인 보상을 주기 시작하면 오히려 좋은 식습관 형성에 방해가 된다는 연구가 많아요. 먹는 행위에서 보상으로 초점이 옮겨 가 버리고, 식사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만 굳어지죠. 그래서 저는 보상이 되기 쉬운 식후 디저트를 잘 활용하지 않는 편이에요. 무조건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잘 안 먹는 아이라면 간식만 기대하면서 식사를 억지로 해치우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배고플 때, 가족과 같은 음식을
어떤 전략을 쓰든, 아이가 식사에 집중하도록 돕는 환경 요소가 크게 두 가지 있어요.
첫째, 아이가 배고픈 상태에서 식탁에 앉아야 해요. 식사 루틴이 있는 아이가 끝까지 앉아서 먹을 확률이 더 높은 건, 더 배고픈 상태로 식탁에 앉기 때문이에요.
둘째, 가족과 함께, 같은 음식을 먹는 거예요. 많은 연구가 가족과 함께 먹고 부모와 같은 음식을 먹는 환경이 잘 먹는 아이를 만들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지속적으로 보고하고 있어요. 어린이집에 가면 아이들이 집에서보다 조금 더 잘 먹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뭔가 하는 걸 볼 때 아이는 그 활동을 하려는 동기가 높아질 수 있어요.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것도 도움이 돼요. 앞선 글에서 유아는 생존 본능 때문에 낯선 음식에 유독 신중하다고 했죠. 자기가 먹는 것과 똑같은 음식을 부모가 먹는 걸 눈앞에서 본다면, 그 낯선 음식이 적어도 위험하지는 않겠구나 판단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아이 음식을 따로 준비하는 경우가 더 많죠. 한국 음식은 매운 게 많고 소금 간도 걱정되니까요. 가장 이상적인 건 부모와 아이가 건강한 저염식 식단을 함께 나누는 거예요. 아이 음식이 너무 완벽해야 한다는 집착도 좀 내려놓고, 적당한 수준에서 함께 먹을 수 있는 구성으로 가족 식사 시간을 많이 가지시면 좋아요. 다만 각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시면 돼요.
베싸네 집도 사실 가족이 다미의 식사 스케줄에 맞추지 못할 때가 많아서 다미가 혼자 먹는 일이 많아요. 그래서 다미 식사만 준비해서 혼자 먹일 때도 반찬을 넉넉하게 가져오고 제 젓가락도 가져와서 다미 반찬을 조금씩 빼서 먹어요. 안 먹는 반찬은 일부러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고, "이거 엄마랑 나눠 먹을래?" 하면서 감자 같은 걸 반으로 나눠 한 입씩 먹는 재미를 느끼게 해 주기도 하고요. 이렇게 했을 때 확실히 다미도 조금 더 즐겁게 식사하고, 맛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할 거리도 더 많아지더라고요. 무조건 다 같이 앉아서 똑같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가족 식사가 왜 좋은지 본질을 생각해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적용해 보세요.
식사는 정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심리적인 문제로 폭식이나 거식이 생기기도 하고, 건강에도 영향이 크죠. 아이와의 식사 시간을 행복한 경험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정리해 보면
- 식사와 간식은 앉아서 30분 안에 끝내고 치우세요.
- 어린아이가 돌아다니는 건 자연스러우니, 인정한 뒤 환경으로 도우면서 길게 보세요.
- 따라다니며 먹이지 말고, 부모도 식사 중에는 식탁을 떠나지 마세요.
- 영상은 끄고, 책은 대화의 도구로만 쓰세요.
- 간식·영상·장난감 같은 보상으로 먹이지 마세요.
- 배고픈 상태로 식탁에 앉게 하고, 가족과 같은 음식을 나눠 먹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