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셀마 프레이버그라는 미국 소아정신분석학자가 쓴 오래된 육아서를 읽었어요. 저는 그동안 관찰과 통계로 확인할 수 있는 아동발달·심리학 지식을 주로 공부하고 전해 드렸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의 내면과 무의식을 이해해 보려는 정신분석학적 접근도 육아에 꽤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다미에게 직접 해 봤는데, 나름 성공적이었어요.

정신분석은 상담실에서 더 힘을 발휘해요

정신분석학은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내면의 어떤 불안이나 욕구가 그 행동으로 나타나는지 분석하고, 원인에 맞는 심리적 처방으로 행동을 바꾸는 접근이에요. 책에 나오는 예를 들면, 목욕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어요. 물이 하수구로 빠져나가면서 자기 몸도 이 세상에서 사라질까 봐 걱정하는 거죠. 이런 아이에게는 세면대에서 인형을 씻기는 놀이를 반복하면서 "이것 봐, 물은 빨려 들어가는데 곰은 커서 못 빨려 들어가네" 하고 부모가 자꾸 말해 줘요. 그러면 불안이 차츰 사라지면서 목욕 거부도 줄어들기도 합니다.

이런 건 대중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서 연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아이가 목욕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깊은 내면의 불안 때문이라는 걸 연구로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목욕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모두 같은 불안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정신분석은 논문보다 1:1 상담 장면에서 더 유용해요. 대화로 상황을 살피고 아이의 맥락에 맞게 가설을 세우고, 처방을 해 보고, 나아졌다면 "그게 이유였구나" 하는 식이죠.

그렇다면 부모가 정신분석을 잘할 수 있다면 육아에 굉장히 쓸모가 있겠죠. 아이가 언뜻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어떤 욕구나 불안이 그 마음에 있는지 파악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을 테니까요. 아이가 목욕을 싫어한다고 소아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기는 좀 그렇잖아요. 저는 정신분석가로 훈련받은 사람은 아니지만 제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 한번 해 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유가 없다고만 생각했던 행동의 전후 맥락을 잘 떠올려 보고, 가설을 세우고, 다미에게 적용해 보기로 한 거예요.

첫 번째, 이불 사건

어느 날 다미가 한밤중에 일어나서 막 울고 있었어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불을 켜 달래요. 자는 시간이라고 달래도 막무가내라 불을 켜 줬더니 "이불이 안 예뻐" 하면서 우는 거예요. 어떻게 해 달라는 거냐고 물으니 이불을 흐트러지지 않게 똑바로 펴 달라고 하고, 펴 주면 또 이불 밑에 있던 인형이며 책을 다 치우라고 하고요. 치우다 보면 이불을 밟게 되니까 모양이 조금 흐트러지는데, 그걸 보고 또 대성통곡을 했어요. 결국 매트리스 모양에 딱 맞게 호텔처럼 반듯하게 펴 준 뒤에야 "엄마 침대에서 잘 거야" 하면서 제 침대로 올라와 잤어요. 그날은 뭐가 문제인지 끝내 파악하지 못했어요.

다음 날 밤, 평소 통잠을 자는 편인 다미가 또 자다 깨서 울고 있었어요. 침대 구석에 앉아 이불을 똑바로 펴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불을 켜고 깜짝 놀랐어요. 코피가 났는지 울면서 손으로 훔친 피가 얼굴에 범벅이 된 채로 이불을 펴고 있었거든요. 피를 닦아 주고 물어보니 역시 이불이 안 예쁘대요. 이날도 이불을 반듯하게 만든 다음에야 제 침대에서 잤습니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짚이는 게 있었어요. 다미가 오랫동안 덮고 자던, 할머니가 사 주신 꽃무늬 이불이 있는데, 얼마 전 기저귀 없이 자다가 이불에 쉬를 해서 빨래를 하는 바람에 며칠째 새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거든요. 다미가 그 꽃 이불에 특별히 애착을 보이는 행동을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알고 보니 애착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새 이불을 인정하기 싫었고,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리고 싶었던 거죠. 침대에 딱 맞게 펴서 침대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는 방식으로요.

이 가설을 세우고 그날 밤 다미에게 물어봤어요. "어제 자다 일어나서 이불이 안 예쁘다고 엉엉 울었지? 혹시 꽃 이불이 덮고 싶어서 그래?" 다미는 잠깐 생각하더니 "맞아!" 하더라고요. 제가 물어봐 주기 전에는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몰랐고 설명도 못 했던 것 같아요. 꽃 이불은 아직 빨래 중이라 비슷한 꽃이 그려진 다른 이불을 덮고 잘지 물었더니 그러자고 했고, 그날은 자다 깨서 울지도, 제 침대로 올라오지도 않았어요. 그다음 날부터는 원래 꽃 이불을 다시 덮었고요. 그 이불이 좀 오래돼서 버리고 새것을 사 주려던 참이었는데, 바로 바꾸지 말고 새 이불과 같이 쓰다가 서서히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두 번째, 아기 흉내 사건

3월 초중반부터 다미가 계속 아기처럼 행동하며 놀았어요. 혀 짧은 소리를 내고, 쪽쪽이를 빠는 흉내를 내고, 기어 다니면서 "안아 줘" 하고요. 하루 이틀 그러다 말면 그냥 놀이겠거니 했을 텐데 한 달 가까이 이어지니까 마음속에 뭔가 이유가 있나 싶더라고요. 며칠 동안 생각도 해 보고 다미와 이야기도 해 보다가 이유를 찾았어요.

신학기가 되면서 다미의 어린이집 반이 바뀌었거든요. 교실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다 바뀌어서 낯설었나 봐요. 다미는 이제 언니 반이라 2층으로 올라갔고, 예전 선생님은 1층에서 더 어린 아기들을 돌보고 계셨어요. 그런데 어린이집 선생님과 이야기하다 들어 보니, 다미가 자꾸 1층 예전 선생님 반에 가서 놀고 싶어 한다는 거예요. 그 반은 다 어린 아기들이니까 선생님이 "여기는 아기 반이야" 하면서 원래 반으로 데려왔겠죠. 그 과정에서 예전 반으로 돌아가려면 아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아기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고, 그걸 놀이로 표출하고 있었다고 저는 이해했어요.

물론 이게 원인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나름의 가설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어요. 다미가 아기 흉내를 낼 때는 저도 어린이집 선생님이 된 것처럼 아기 대하듯 놀이에 참여해 줬고요. 지금은 새 반과 새 선생님, 새 교실에 적응하기도 했고, 어쨌든 아기 흉내는 거의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세상은 마법처럼 움직여요

이 두 사건으로 말씀드리고 싶었던 건, 아이가 보이는 행동만 보고 "이상한데?" 하고 불안해하거나 걱정하거나 못 하게 하기보다, 일단 그 내면을 이해해 보려고 시도해 보시면 좋겠다는 거예요. 프레이버그는 『마법의 첫 6년』에서 아이의 첫 6년은 마법과 환상이 현실과 조금 섞인 모습이라고 했어요. 아이들은 어른처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표현하지 못합니다. 아주 어린 아이는 부모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다시 나타나면 마법처럼 나타났다고 여기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경험이 수없이 반복되고 인지 능력이 자라면서 그게 마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이불을 반듯하게 펴서 침대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려 하거나, 다시 아기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어른이 보기엔 이상하고 논리적이지 않은 해결책이에요. 하지만 아이는 자기가 이해한 범위 안에서 자기의 안정과 안녕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죠. 우리 아이는 대체 왜 이럴까 스트레스만 받기보다 냉철한 관찰자가 되어 그 이유를 파악해 보려고 해 보세요. 이 마음가짐의 전환만으로도 육아 일상의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크게 줄고, 아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서로 연결돼 있다는 기분 좋은 느낌을 느끼며 지낼 수 있게 됩니다.

정리해 보면

  • 이해되지 않는 행동 뒤에는 아이 나름의 불안이나 욕구가 있어요.
  • 행동의 전후 맥락을 떠올려 가설을 세우고, 아이에게 물어보고, 적용해 보세요.
  • 다미의 이불 사건은 빨래 중인 애착 이불, 아기 흉내는 어린이집 반이 바뀐 것이 이유였어요.
  • 아이가 쓰는 해결책은 어른 눈에 비논리적이어도 자기 안정을 지키려는 최선이에요.
  • 걱정하거나 막기 전에 냉철한 관찰자가 되어 이유부터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