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2.10 · 15:25
힘들어도 대체로 행복하게 육아하는 비법, 육아의 방향성
육아가 힘들기만 한 건 무력감 때문이에요. 좋은 육아의 방향을 알면 스스로를 인정하며 행복하게 육아할 수 있어요.
육아를 시작한 뒤로 저는 좋은 육아란 대체 뭘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육아를 하면서 행복하고 싶었거든요. 일대일 육아는 굉장히 힘든 노동이잖아요. 제 모든 걸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아기를 사랑했지만, 솔직히 육아 그 자체를 즐기기란 정말 어려웠어요. 본질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이 노동을 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 고민에서 이 글이 시작됩니다.
힘들어도 행복했던 순간의 공통점
제 삶을 돌아보니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학생일 때도 직장인일 때도요. 그 순간들은 '내가 이 공부나 일을 잘하고 있구나,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어제보다 나아졌구나, 앞으로 더 좋아지겠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유능감에서 오는 정신적인 만족을 느낄 때였어요.
반대로 힘든 일이 그저 힘들기만 할 때는 언제일까요. 저는 무력감을 느낄 때라고 생각했어요. 신경과학자 윌리엄 스틱스러드 교수는 한 책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스트레스는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과 관련된 상황을 본인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요. 상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덜 받지만, 반대의 경우 그 일은 세상에서 제일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안 나오면, 성적이라는 결과를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공부가 싫어지는 것처럼요.
초보 부모가 무력감을 자주 느끼는 이유
초보 부모는 육아를 하면서 내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무력감을 자주 느껴요. 안 그래도 아이를 매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순간이 너무 많은데, 거시적으로 보면 육아를 잘한다는 게 어떤 건지, 어느 방향으로 노력해야 나아질지조차 헷갈리거든요. 그냥 힘껏 사랑해 주기만 하면 되는지, 버릇이 나빠지지 않게 어느 정도 제지해야 하는지, 마음껏 놀게 두면 되는지, 뭔가 가르쳐야 하는지, 늘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지, 혼자 하게 등을 떠밀어야 하는지. 이런 기본적인 방향성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육아는 스트레스의 연속이죠. 내가 육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능력이 있고, 육아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일이 너무 적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행복하게 육아하려면 먼저 육아를 잘하는 방법과 방향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장 100%를 실천하든 70%를 실천하든,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알아야 천천히라도 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잖아요.
주변 육아 전문가들의 말이 다 너무 달라서 헷갈렸기 때문에, 저는 실제 가족들을 관찰하고 분석한 연구 결과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육아 태도를 오랫동안 연구해 놓았고, 그 연구들은 대체로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이걸 읽으면서 '이렇게 하는 게 육아를 잘하는 거구나' 하는 방향성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방향성이 있으면 육아가 달라져요
마음속에 '좋은 육아란 이런 육아야'라는 방향성이 있으면, 육아를 하면서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고 수시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칭찬하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요. 방향성이 없으면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지금 잘하고 있으면서도 그게 잘하는 건지 모르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분들은 반응육아를 타고나서 정말 잘해요. 아이에게 주파수도 잘 맞추고 상호작용도 풍부하고, 본능적으로 풍부한 언어 환경도 만들어 주시죠. 그런데도 '내가 아이에게 특별한 걸 못 해주고 있다'며 셀프 칭찬을 잘 안 하세요. 늘 잘하다가 어쩌다 한 번 화를 내면 그것만 가지고 자책하고요. 눈에 띄는 이벤트만 보는 거예요.
방향성을 알고 나면 '나는 잘하고 있어' 하고 때때로 스스로를 인정해 줄 수 있어요. '오늘 우리 아이와 이렇게까지 열심히 상호작용했어, 그러니 나는 좀 쉴 권리가 있어' 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요.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설득이 되니 배우자나 일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해져요. 육아 관련 의사결정도 검색하고 불안해하고 여기저기 물어보지 않고 주체적으로 내릴 수 있게 되죠. 큰 그림에서 잘 가고 있다고 믿으니, 아이가 의외의 모습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여도 덤덤할 수 있어요.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우리 정말 많이 성장했구나' 느낄 순간도 많아지고, 그때마다 행복해져요. 즉 육아 방향성이 잘 잡혀 있으면 전반적으로 정신 건강이 좋아요. 물론 덤으로 아이가 훌륭하게 클 가능성도 높아지죠. 이걸 목표로 삼는 분들도 있지만, 저에게 아이가 잘 크는 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본품만큼이나 좋은 덤이에요.
연구가 가리키는 좋은 육아, 세 가지 방향
좋은 육아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도식이 있어요. 심리학자 바움린드가 만든 것으로, 아이를 통제하려는 의지가 높으냐 낮으냐, 따뜻함이 높으냐 낮으냐에 따라 육아를 네 가지로 나눠요. 그중 통제 의지도 있으면서 따뜻함도 높은 권위형 육아가 가장 좋다는 이야기죠. 방임형은 사실상 육아가 아니고, 너무 권위적인 것도 너무 허용적인 것도 안 좋으니 그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잡으라는 거예요. 큰 그림에서는 맞는 이야기이고 실증 연구도 많지만, 저는 이 틀이 방향을 잡는 데 구체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권위가 있어야 하지만 따뜻하기도 해야 한다니,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러다 작년에 OECD에서 발간한 육아 리포트를 읽고 굉장히 기뻤어요. 제가 그동안 읽은 수백 편의 논문과 책을 표 하나로 깔끔하게 정리한 느낌이라 속이 시원해졌거든요. 이 리포트는 메타분석을 포함한 수많은 연구를 신뢰도 높은 것 위주로 추려서, 아이의 이상적인 발달로 이어지는 육아 태도를 세 가지로 정리했어요.
- 따뜻한 육아. 제가 소개해 온 반응육아가 여기에 해당해요. 아이의 신호에 관심을 갖고 반응하며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늘 오가는 육아죠. 아이는 부모의 따뜻한 반응 속에서 '나는 가치 있는 존재야, 이 세상은 따뜻하고 나에게 호의적인 곳이야'라는 단단한 믿음을 키워요.
- 자율성을 지지하는 육아. 아이를 부모 마음대로 통제하려 하기보다 아이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육아예요. 아이는 자율성을 발휘하는 수많은 기회 속에서 '나는 유능하며 나를 둘러싼 상황을 대체로 통제할 수 있어'라는 확신을 키워요.
- 구조가 있는 육아.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일관되게 메시지를 주는 육아예요. 훈육, 칭찬, 모범 보이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부모는 아이 삶에 구조를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구조가 없으면 뭐가 옳고 그른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아이의 삶은 매일 혼란스러워져요.
리포트에는 각 육아 방향이 아이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 하나하나를 표시한 표가 있는데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세 가지 육아는 대체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그 반대의 육아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과학적으로 밝혀진 좋은 육아의 방향은 크게 이 세 가지로 잡을 수 있습니다. 반응육아는 이미 다뤘으니 이제부터는 자율성 지지 육아 이야기를 해 볼게요.
자율성 지지 육아의 뿌리, 자기결정성 이론
자율성 지지 육아의 기원이라 할 만한 이론이 있어요.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가 만든 자기결정성 이론인데, 육아뿐 아니라 조직관리, 인간관계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쳐서 일종의 학파를 이룰 정도예요.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관계감, 유능감, 자율감이라는 세 가지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행복해지기 어려워요.
관계감은 타인과 유대를 맺거나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는 감각이에요. 이게 없으면 고립감을 느끼고 행복해지기 어렵죠. 어린아이는 주로 주양육자와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관계감을 느끼는데, 따뜻한 육아, 즉 반응육아로 부모와 단단한 신뢰 관계를 만들면서 채워져요. 나머지 둘이 자율성 지지 육아와 관련된 자율감과 유능감이에요. 자율감은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통제되지 않고 어느 정도 스스로 선택하며 살 수 있다는 느낌, 유능감은 말 그대로 내가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이죠. 어린아이도 이 두 가지를 느끼고 싶어 해요.
특히 18개월 무렵부터 아이들은 자율감을 얻으려는 눈물겨운 투쟁을 하며 "싫어", "아니야"를 달고 살게 되죠. 그래서 이 무렵부터 자율성 지지 육아가 더 중요해지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더 어려워지기도 해요. 아이의 "싫어"를 지지해 주면서도 부모가 무조건 다 포기하지는 않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아이가 외투를 입기 싫어할 때 "감기 걸려, 외투 입어" 하고 무섭게 지시하면서 자율성을 빼앗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입기 싫구나. 그럼 들고 나가서 추우면 입자"라거나 "그래도 지금은 너무 추워서 외투를 입어야 할 것 같아. 이거랑 이거 중에 네가 원하는 걸 골라 볼래?" 하고 아이가 이 상황에서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느끼게 배려해 줄 수도 있어요. 이렇게 자율성을 지지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통제적인 육아를 받은 아이보다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유능하다는 거예요. 부모도 육아가 더 쉬워질 수 있고요.
통제적인 육아는 만성 스트레스가 돼요
앞서 스틱스러드 교수가 말한 '사람은 통제감을 느끼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 자율성 지지 육아에서도 아주 중요한 포인트예요. 스트레스가 발달에 나쁘다는 건 다 아실 텐데, 어린이집 적응이나 수면교육 같은 단기 스트레스는 괜찮아요. 아이가 목이 찢어져라 울어서 걱정되지만, 사실 해롭지 않고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범주거든요. 문제는 만성 스트레스예요. 울음을 유발할 만큼 크지 않더라도 매일 지속되는 낮은 수준의 스트레스는 발달에 해롭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부모가 일상에서 매일, 아이가 삶에 충분한 통제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지시적이고 통제적인 육아를 한다면 어떨까요. 규칙이나 금지가 너무 많거나, 아이가 부모의 매 요구에 투쟁해야 하고 그 투쟁에서 대부분 지는 구조라면요. 이렇게 자율성을 지지받지 못하는 삶은 아이에게 굉장히 큰 만성 스트레스가 될 수 있어요. 매일 게임을 금지당하고 하기 싫은 공부를 강요당하는 학령기 아이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자기결정성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아이들은 정말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에게 자율감, 유능감, 관계감이 필요하다는 이 이론이 힘을 얻기 전에는 우리 사회가 사람을 굉장히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존재로 봤어요. 직장인이시라면 옛날 조직 문화를 떠올려 보세요. 일 못하면 임금을 깎고 잘하면 돈을 더 주고, 엄격한 위계 속에서 까라면 까고, 그러면 사람들이 소처럼 일해서 능률이 오른다는 사고방식이 통하던 시대였잖아요. 자기결정성 이론이 힘을 얻으면서 조직 문화도 바뀌기 시작했어요. 사람은 보상으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자기 일을 잘한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가장 열심히 일한다고 보게 됐죠. 그래서 보상이나 권위, 위협으로 휘두르기보다 권한을 위임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주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수평적인 문화를 만드는 실리콘밸리식 조직 문화가 한국에서도 조금씩 대세가 되어 가고 있고요.
갑자기 조직 문화 이야기를 한 이유는, 조직 문화도 이 이론에 힘입어 힘들지만 결국 바뀌었잖아요. 저는 육아 문화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우리가 인간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지식을 바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아이를 대하는 어른의 태도에는 낡은 권위주의가 많이 남아 있어요. 육아나 가정 문화는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고, 우리도 그런 육아를 받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육아를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진심으로 공부하는 부모님들이 있기에, 저는 육아 문화도 언젠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갈 거라고 믿어요.
정리해 보면
- 육아가 그저 힘들기만 한 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무력감 때문이에요.
- 좋은 육아의 방향을 알면 스스로를 인정하고, 흔들리지 않고, 의사결정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어요.
- 연구가 가리키는 좋은 육아는 따뜻한 육아, 자율성을 지지하는 육아, 구조가 있는 육아 세 가지예요.
- 사람은 관계감, 유능감, 자율감이 채워져야 행복하고, 어린아이도 마찬가지예요.
- 아이의 "싫어"를 지지하면서도 부모의 요구를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 매일 이어지는 통제와 금지는 아이에게 만성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