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3.07 · 15:33
화와 짜증이 많은 아이, 부모 탓이 아니에요
화를 잘 느끼는 건 타고난 기질이고 자라면서 대부분 나아져요. 화를 자주 조절하는 아이의 전전두엽은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해요.
주말에 남편이 아이를 봐 줄 테니 카페에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고 오라고 해요. 그런데 옆 테이블 학생들이 너무 시끄럽게 고함을 질러 대는 통에 짜증만 차올라요. "얘들아, 조금 조용히 하면 어떨까" 해 봐도 잠시뿐이었는데, 다른 테이블의 한 남성이 "학생들, 조용히 좀 하지" 한마디 하자 상황 종료. 화에는 이렇듯 기능이 있어요. 아이가 돌을 지나며 자꾸 화를 낼 때 부모가 왜 당황하는지, 화가 많은 아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이야기해 볼게요.
화에는 기능이 있어요
욕구가 좌절됐을 때 올라오는 분노는 내 욕구를 충족시키고 내 바운더리를 지키는 수단으로 작동해요. 하지만 개인의 욕구 추구가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규칙으로 정리해 둔 현대 사회에서 화는 그 기능을 많이 빼앗겼어요. 카페에서도 화보다 더 좋은 해결 방법이 많았을 거예요. 특히 화를 참는 게 미덕인 한국 문화에서는 화라는 감정 자체를 문제시하는 경우가 많죠. 이런 문화에서 자란 우리는 부모가 되어 아이가 돌 정도 지나면 슬슬 당황해요. 아이가 자꾸, 그것도 상당히 원시적인 형태로 화를 내거든요. 화를 느끼지 않는 아이는 없어요. 화는 자신의 욕구와 바운더리를 넓히거나 지키려는 동물의 본능이니까요.
화를 잘 느끼는 아이는 타고나요
다만 개인차가 있어요. 기질의 세 가지 큰 범주 중 두 번째인 부정적 정서성 안에 분노·좌절 수치가 높은 아이도 있고 낮은 아이도 있거든요. 강도와 방식도 달라서,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는 식으로 공격적으로 표출하는 아이도 있고, 계속 짜증을 내거나 징징대거나 토라져서 시위하는 식으로 표출하는 아이도 있죠.
아이의 화를 자주 겪는 부모라면 삶이 힘들기도 하지만 걱정도 많으실 거예요. 다혈질에 반사회적인 사람으로 자라면 어쩌나, 나를 만만하게 보는 건 아닐까, 사소한 것에 화내다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면 어쩌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육아를 잘못하고 있나. 화가 많은 아이, 정말 부모 탓일까요? 아니에요. 분노와 좌절은 어릴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고 기질의 영향도 커요. 자라면서 나아질까요? 네, 많은 경우 자연스럽게 나아져요.
화는 생후 가장 빨리 나타나는 감정 중 하나예요. 한 논문은 영아가 분노를 표출하는 예로 배고플 때 수유가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카시트에 앉혀 움직임을 제한당하는 것을 들었어요. 이런 일이 있다고 화가 많아진다는 게 아니라, 타고나기를 화가 많은 아이가 이런 상황에서 더 강하게 표출한다는 거예요. 우리 아기가 화가 많은 편인지 궁금하다면 카시트에 앉힐 때 울음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심한지 보시면 돼요.
자라면서 화는 늘어나요
화는 좌절과 관련된 감정이고, 좌절에 앞서는 것은 욕구예요. 아이는 세상 경험이 쌓이면서 욕구가 점점 늘어나요. 베싸는 호캉스를 처음 해 본 순간이 아직도 기억나요. 그전에는 멀쩡한 집을 두고 왜 돈을 내며 호텔에서 자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한번 해 보니 알겠더라고요. 경험으로 새로운 욕구가 생긴 거죠. 그런데 남편이 "호캉스는 무슨, 사치 부리지 마" 하며 막는다면 당연히 화가 나겠죠.
어린아이에게는 매일매일이 이 첫 호캉스와 같을 거예요. 새로운 경험을 하면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분비되고, 그 경험은 머릿속에 좋은 것으로 저장돼요. 처음 아이스크림을 먹은 순간, 키즈 카페에서 즐겁게 논 순간, 블록을 키보다 높이 쌓은 순간. 도파민은 그 활동을 떠올리고 예측하기만 해도 분비되니 욕구가 드릉드릉해지는 거죠. 그런데 당연히 매일 좌절할 일이 생겨요, 부모 때문에요. 게다가 인지 능력이 발달하면서 좌절이 마법처럼 생기는 게 아니라 부모의 의지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부모에게 화가 나기 시작하죠.
발달심리학 학술지에 실린 한 연구가 보여 주는 나이별 화 표현 정도를 보면 '마의 18개월'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화를 쉽게 내는 성향은 미국 기준으로 아동이 정신과 상담을 받는 이유 1위라고 해요. 발달적으로 화가 정점을 찍는 시기를 한참 지났는데도 화와 짜증이 정말 남다르게 심하다면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 전문가 상담을 꼭 받아 보시길 권해요.
한 논문에서는 화에 미치는 기질과 환경의 영향이 반반 정도라고 했어요. 하지만 앞선 글에서 말씀드렸듯 환경의 주요 요인인 양육 태도가 아이의 기질에 영향을 받기도 하니, 실제로는 기질의 영향이 조금 더 크게 나타날 거예요. 아이가 자꾸 화를 내면 부모가 긍정적으로 육아하기가 더 어려워지니까요.
화가 잘 나는 아이는 편도체가 더 예민해요
화가 잘 나는 사람은 감정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타고나기를 좀 달라요. 생존 본능이 강한 경우로, 적을 잘 가려내고 적의 나쁜 행동에 대비하는 능력이 좋은 거예요. 화난 얼굴 같은 위협적인 자극을 보여 주면 공포와 위협을 다루는 편도체가 더 격렬하게 반응하고 주의도 더 많이 가요. 부모가 무서운 표정과 단호한 목소리로 "안 돼"라고 하면 더 화를 내고 울어 버리는 아이들이 바로 이런 경우예요. 이렇게 되면 전두엽이 제 기능을 못 해서 훈육 효과가 떨어지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표정이나 말투는 삼가고 차분하고 여유롭게 훈육해 주세요. 현실적인 문제는 아이가 화가 잘 나면 확률적으로 부모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아이의 화에 부모의 편도체도 격렬하게 반응하면 훈육이 아니라 편도체 싸움이 되죠. 어쨌든 부모가 어른이니 어렵더라도 조금 더 감정조절을 해내야겠죠.
주변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는 게 미덕인 현대 사회에서 화가 잘 나는 특성은 특히 아동기에 불리해요. 한 연구에 따르면 만 2세 때 화가 잘 나는 특성은 7세 때 사회적 기술 부족으로 이어졌고 10세 때 학업 성취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해요. 하지만 아이가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부모가 아이의 그런 성향과 불리함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첫 번째예요. "너는 왜 그렇게 화를 잘 내"가 아니라 "너는 화를 잘 느끼는 아이지"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거예요. 누구나 이 세상에 그렇게 말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야 해요.
화를 자주 느끼는 아이의 전전두엽은 더 열심히 일해요
다행인 건 아이들이 자라면서 화를 조절하고 성숙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는 거예요. 뇌는 환경에 적응해서, 화를 자주 경험하는 아이의 전두엽은 화 조절에 특화된 방향으로 성장한다고 해요.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죠.
화를 잘 다루려면 주의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해요. 이 능력을 실행기능이라고 하는데, 작업 기억력, 인지적 유연성, 충동 억제의 세 하위 영역으로 나뉘어요. 중국의 한 인지심리학자는 화를 잘 느끼는 아이와 인지적 유연성의 관계를 다룬 논문을 여러 편 냈어요. 인지적 유연성은 목표나 규칙을 상황에 따라 빠르게 바꾸는 정신적인 능력이에요. 베싸가 유튜브를 하면서 역대급으로 공감을 받았던 사례가 바나나를 잘라서 줬다며 엉엉 우는 아이였는데, 기대한 긴 바나나 대신 잘린 바나나나 사과를 받은 좌절감을 잘 다루려면 '내가 원한 건 아니지만 뭐 어때, 이것도 좋은데' 하고 새로운 보상에 재빨리 주의를 재할당할 수 있어야 해요. 이게 인지적 유연성이에요. 실행기능은 전전두엽이 맡고 만 2세에서 7세 사이에 급격히 발달해요.
이 학자의 이야기는, 화를 자주 느끼는 아이는 인지적 유연성 같은 고급 인지 기능을 쓸 일이 더 많다는 거예요. 화날 일이 많으니 조절을 연습하는 상황도 많은 거죠. 실제로 이런 아이들은 좌절을 느낄 때 전전두엽이 더 많이 활성화됐고,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일반적인 인지적 유연성 과제에서도 그랬어요. 감정조절과 인지 기능이 같은 뉴런 회로를 공유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에요.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지나치지 않다면 화를 좀 느끼는 아이가 인지 기능 측면에서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내비쳤죠. 다만 화를 너무 심하게 느끼는 상위 10% 아이들은 오히려 전전두엽이 덜 활성화되는 반대의 모습을 보였어요. 피츠버그 대학 연구진도 충동 억제에서 비슷한 결과를 냈고요.
아이에게 적당한 좌절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는 말,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거예요. 좌절도 화도 없는 환경에서 자란다면 화를 조절하는 뇌 회로를 만들 필요조차 없겠죠. 적당히 화를 느끼고 경험하는 것은 전전두엽이 성장하는 기회이기도 해요. 화가 너무 과하지 않다면, 특히 전전두엽이 채 성숙하지 않은 학령기 이전 아이라면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밖에서는 천사, 집에서는 짜증쟁이인 이유
이 연구를 읽으면서 베싸는 화가 많은 사람은 평소에 쉽게 피곤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전전두엽의 자원을 일상적으로 많이 쓰잖아요. 뇌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아서, 하루 동안 자제력을 요구하는 과제를 계속하다 보면 후반부에는 자제력을 발휘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해요. 일종의 총량이 있는 거죠. 아이가 화를 잘 조절해 내더라도 그런 에피소드가 하루에 너무 많으면 나중에는 힘들어질 수 있어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천사 같은데 집에서는 짜증을 너무 많이 낸다는 고민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어요. 아이는 사회성이 발달하면서 언제 화를 더 조절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부모는 누구보다 내 감정을 섬세하게 받쳐 줄 존재라는 확신이 있으니 집에서 당연히 감정을 더 드러내요. 밖에서 이것저것 조절하느라 전전두엽 자원이 떨어지는 저녁때, 편한 상대인 부모와 있으면 풀어지는 거죠. 물론 부모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겨서는 안 되고 화를 혼자 적절하게 해소하는 방법도 알아야 해요. 하지만 화를 성숙하게 해소하는 과정 자체가 전두엽 자원을 요구하고 항상 가능하지는 않다는 걸 이해하고, 특히 어린아이라면 조금 더 도와주는 자세로 따뜻하게 접근하면 좋겠어요.
실행기능이 성장하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화를 잘 다루게 돼요. 부모가 옆에서 감정을 이해하도록 돕고 감정 코칭을 잘해 주면 더 좋겠죠. 특히 기질적으로 화가 많은 아이일수록 통제적이고 욕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권위적인 육아를 하지 않는 것이 감정조절을 잘하는 아이로 자라는 데 더욱 중요해진다고 해요. 큰 방향에서 보면 화에 앞서 화를 유발하는 좌절을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진단이나 치료가 필요해 보이면 소아청소년과 등 전문가와 상의하세요.
정리해 보면
- 화는 욕구와 바운더리를 지키는 본능이고, 화를 잘 느끼는 정도는 타고난 기질이에요.
- 경험이 쌓이며 욕구가 늘고 인지가 발달하면서 화도 늘어나요. '마의 18개월'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에요.
- 화가 잘 나는 아이는 편도체가 예민하니 무서운 표정과 말투 대신 차분하게 훈육하세요.
- 화를 자주 조절하는 아이의 전전두엽은 더 활발히 일하고, 적당한 좌절은 성장의 기회예요.
- 집에서 유독 짜증이 많다면 밖에서 자제력을 다 쓰고 온 것일 수 있으니 도와주는 자세로 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