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다양한 세균에 노출된 아기일수록 장내 미생물이 더 다양해지고 면역력이 좋아져서 알레르기성 질환이 덜 생긴다는 이야기를 전해드렸어요. 사실 장내 미생물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친답니다. 오늘은 체질과 피부까지 좌우하는 장내 미생물의 세계를 하나씩 살펴볼게요.

좋은 세균과 나쁜 세균의 균형

장에는 좋은 세균이 나쁜 세균보다 훨씬 많아요. 좋은 균들이 우세한 상태에서 나쁜 균은 구석에 눌려 있는 게 정상이죠. 그런데 나쁜 세균이 좋아하는 먹이가 너무 많이 공급되거나, 좋은 세균의 먹이가 부족하거나, 수면이 부족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쁜 세균이 세력을 넓히기 시작해요. 이렇게 균형이 깨지면 살이 잘 찌는 체질, 만성피로, 갑작스러운 감정 기복, 피부 트러블, 분노조절의 어려움까지 다양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해요.

장내 미생물은 언제 자리를 잡을까

사람의 장에서 발견된 세균은 천 종이 넘고, 한 사람은 그중 160종 정도를 지니고 산다고 해요. 사람마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노출되는 미생물이 다르다 보니 구성도 크게 달라지는데요. 이 차이가 나라별 알레르기 유병률 차이를 설명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땅콩 알레르기는 미국에서 흔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만큼 흔하지 않죠.

장내 미생물은 생후 3년까지 활발하게 자리를 잡고, 그 이후로는 비교적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해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면역력이 성숙해지면 세균이 장까지 도달하기 전에 걸러지기 때문이에요. 아기들이 어릴 때 아무거나 입에 집어넣는 것도, 이 시기에 더 많은 세균을 몸속으로 들이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설명이 있어요. 그러니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듯 가능하면 항생제를 덜 먹이고 소독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은 장내 미생물을 만드는 첫걸음이에요.

어른이 되면 장내 미생물 구성을 바꾸기가 비교적 어려운데요. 그래서 최근 주목받는 방법이 대변 미생물 이식술이에요.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세균을 추출해 필요한 사람의 장에 넣어주는 방법인데, 아직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아 심각한 대장염 환자처럼 제한적인 경우에만 쓰이고 있어요. 이 원리를 약으로 만들려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해요.

대사와 만성피로에 미치는 영향

좋은 세균은 체내에서 다양한 비타민과 호르몬, 필수아미노산을 만들어내요. 나쁜 세균의 세력이 강해지면 이런 활동이 방해받아 특정 영양소가 부족해지거나 호르몬이 과다 또는 결핍되면서 여러 질병에 취약해질 수 있어요. 또 좋은 세균은 대사에도 관여해서, 소화가 덜 된 전분을 분해해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줘요. 이 대사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당뇨나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 같은 성인병 위험이 높아진다고 해요.

만성피로증후군은 아무리 쉬어도 피곤한데 정밀검사로는 딱히 원인을 찾지 못하는 상태를 말해요. 오랫동안 심리적인 문제로만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장내 미생물이 주목받고 있어요. 만성피로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을 조사해보니 특정 나쁜 세균의 세력이 강해져 있었다고 해요.

비만과 장내 미생물

비만인 사람들의 장내 환경을 살펴보면 특정 나쁜 세균 종의 세력이 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흥미로운 연구가 두 가지 있는데요. 하나는 집에서 살균제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쓰는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의 3~4개월 된 아기들의 장내 미생물을 비교한 연구예요. 살균제를 쓰는 집 아기들에게서 당뇨와 비만을 유발한다고 알려진 세균이 더 많이 발견됐고, 이 아이들이 세 살이 됐을 때 다시 조사해보니 살균제를 쓰던 집 아이들의 체질량지수가 더 높았다고 해요. 좋은 세균까지 함께 죽이는 살균제 때문에 나쁜 세균을 견제할 좋은 세균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것으로 보여요.

다른 연구는 제왕절개와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2만 2천 명의 아이들을 몇 년간 추적한 것인데요.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들의 비만 확률이 더 높게 나타났어요. 자연분만 과정에서는 산도에 있던 다양한 미생물에 그대로 노출되는데,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는 그런 노출이 적어서 장내 좋은 세균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해요. 실제로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의 알레르기성 질환 발생 가능성은 자연분만보다 다섯 배나 높다고 합니다.

피부와 장내 미생물

밀가루를 끊으면 피부가 좋아진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정제된 밀이나 쌀은 껍질 부분을 깎아내는데, 이 껍질에 장 속 좋은 세균의 먹이가 되는 섬유질, 즉 프리바이오틱스가 많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정제된 밀가루 식단은 통밀 식단보다 장내 미생물 환경에 좋지 않다고 해요. 한 논문에 따르면 장내 미생물 환경은 피부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건선이나 아토피뿐 아니라 흔히 피부가 뒤집어졌다고 표현하는 트러블도 장내 나쁜 세균과 관련이 있었고요. 피지 분비량, 피부가 수분을 붙잡는 능력, 외부 자극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힘, 각질이 생성되는 주기처럼 피부를 좋아 보이게 만드는 여러 요소가 장내 세균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밝혀졌어요. 진짜 이너뷰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 셈이죠.

정리해 보면

  • 좋은 세균과 나쁜 세균의 균형이 깨지면 체질, 피로, 피부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장내 미생물은 생후 3년 사이에 자리 잡으니, 이 시기에 항생제와 과도한 소독을 줄여줍니다.
  • 살균제 과다 사용이나 제왕절개 등으로 좋은 세균 노출이 줄면 비만 위험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 정제 밀가루를 줄이고 섬유질을 챙기면 장내 미생물뿐 아니라 피부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