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4.05 · 15:40
아이와 짧고 굵게 놀아도 놀이 지능은 자랍니다
몰입해서 짧게 노는 시간이 아이의 놀이 지능을 키우고, 부모도 숨 돌릴 틈을 만들어줍니다.
주말마다 아이와 놀아주다 보면 부모도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저도 얼마 전 근로자의 날, 모처럼 다미를 유치원에 보내고 남편과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가 놀아 달라 하지 않을 때까지는 주말을 어느 정도 놀이에 내어줘야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의 주말을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이 고민을 오래 하면서 찾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아이의 놀이 실력을 키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잘 노는 아이가 되면, 부모도 자연스럽게 숨 돌릴 틈이 생기거든요.
잘 노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습니다
어릴 때는 놀이를 잘한다 못한다는 개념 자체가 낯설죠. 그냥 노는 거지 놀이 실력이라는 게 있나 싶고요. 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공부를 더 잘하는 아이가 있듯 놀이를 더 잘하는 아이도 있다고 해요. 학술적으로는 이를 놀이성이라고 부릅니다.
연세대학교 어린이생활지도연구원에서 14년간 놀이 전문가로 일해온 장서현 작가님의 책 『변화에 강한 아이는 놀이 지능이 다릅니다』에서는, 현장에서 아이들을 보면 자신이 뭘 할 때 즐거운지 정확히 알고 그 방향으로 주도적으로 놀이를 끌어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누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이제 뭐 해요?"라며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도 있다고 말합니다.
짧고 굵게 몰입해서 노는 시간이 다릅니다
저는 다미와 주말 내내 놀고 싶지는 않지만, 부모와 아이가 함께 노는 시간이 발달에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최근 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부모와 아이가 노는 시간이 아이의 뇌를 얼마나 활성화하는지 다룬 적이 있죠.
아이 혼자 놀게 두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부모가 매번 놀아 달라는 요청에 응해주지 못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기대치를 낮추고 혼자 노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아예 안 노는 것보다는 그게 더 재밌으니까요. 다만 이렇게 단순히 혼자 놀게 둘 때는 놀이성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냥 적당히 재밌게 노는 데서 그치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더 좋은 방향은, 한두 시간이라도 부모와 아이가 정말 몰입해서 즐겁게 노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걸 해보니 재밌네", "이걸로 이렇게도 놀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을 부모와 함께 쌓으면서 아이는 혼자서도, 다른 아이와도 더 잘 놀 수 있게 됩니다. 적당히만 재밌게 논 것과는 놀이의 수준도, 즐거움도, 발달에 도움이 되는 정도도 달라져요.
놀이 지능, 일곱 가지로 나뉩니다
책에서는 아이가 잘 논다는 것을 "놀이 지능"이라 이름 붙이고, 이를 크게 일곱 가지로 나눕니다. 이 능력들이 잘 자라고 발휘되면 아이는 잘 놀 수 있고, 반대로 잘 놀면서 이 능력들이 자라기도 해요. 예를 들어 창의력이 좋은 아이는 놀이감 하나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각해내고, 그런 시도를 격려받는 환경 속에서 창의력이 또 자랍니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인 거죠.
이 능력들은 놀이에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며 마주할 여러 과제를 더 잘해낼 수 있게 돕는 핵심 역량이 됩니다. 특히 미래 사회에서 중요해질 이런 능력들을 21세기 역량이라 부르는데, 유아교육에서 놀이를 통해 잘 길러낼 수 있다는 연구가 많이 나오면서 학계와 교육계에서 주목받고 있어요. 책 제목이 "변화에 강한 아이"로 시작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오늘은 일곱 가지 영역 중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력, 두 가지만 소개해드릴게요.
미술 놀이가 창의력을 키우는 이유
다미가 요즘 미술 놀이를 아주 좋아해서 자기 전에 "한 장만 더 그리고 자자"고 조를 정도예요. 사실 두세 살 무렵에는 끼적이기나 색칠에 별 관심이 없어 보여서 미술이 다미 취향이 아닌가 싶었던 적도 있어요. 집과 유치원에서 미술 놀이 환경을 계속 갖춰주다 보니 조금씩 재미를 붙이게 된 것 같아요. 어떤 놀이가 재밌다고 느끼는 건 한순간에 되는 게 아니라, 잘 갖춰진 환경과 경험, 그리고 심심함을 나름대로 극복해보려는 순간들을 거치며 천천히 깨달아가는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미술 놀이가 창의력 발달에 좋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요. 아직 어린아이들은 머릿속 생각이나 경험한 것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한데, 미술 놀이가 이 표현의 한계를 어느 정도 넘게 해주는 도구가 된다는 거예요. 게다가 미술 놀이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사과를 사과처럼 그리지 않고 마음대로 그린 다음 왜 그게 사과인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책이 말하는 미술 놀이는, 정답이나 결과물이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일부 활동과는 결이 다릅니다. 주제나 표현 방법 정도만 가이드하고, 그 안에서는 아이가 자유롭게 표현하는 과정 중심 놀이가 되어야 해요.
창의력은 이성적 사고와 반대되는 영역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해요. 한 연구에 따르면 그림을 그릴 때뿐 아니라 어른 눈에는 의미 없어 보이는 낙서를 끼적일 때도, 글쓰기 같은 창의적 활동을 할 때 활성화되는 내측 전두엽 피질이 상당히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내측 전두엽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과 밀접한 부위인데요. 높은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지식에 접속해 지금 눈앞의 상황과 연결 고리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거예요. 이 과정에서 전두엽을 포함한 뇌의 여러 영역이 함께 네트워크를 이룹니다. 그림을 그릴 때도 비슷하게 뇌의 다양한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되는 것으로 밝혀졌고요. 그래서 미술 놀이는 예술을 담당하는 뇌뿐 아니라 지적 능력을 담당하는 뇌 영역까지 전체적으로 쓰는 연습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공부하고 나니 제가 다미와 처음 미술 놀이를 할 때 왜 그렇게 막막했는지 이해가 됐어요. 학부 시절 졸업 논문을 써야 하는데 빈 워드 파일 앞에서 한 시간 넘게 아무것도 못 쓰고 막막했던 적이 있는데, 딱 그때 느낌이었더라고요. 빈 종이를 뭔가로 채운다는 건 뇌를 복합적으로 써야 하는 꽤 어려운 창조 활동이었던 거죠. 그래도 조금씩 그려나가면서 저도 다미도 뇌의 여러 영역을 함께 써보는 연습을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요즘은 다미가 다양한 것들을 그려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합니다. 이 책에 나온 여러 놀이 중에서도 미술 놀이는 특히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어요.
질문하는 힘,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놀이
비판적 사고력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1 더하기 1은 2지" 하고 당연하게 넘기는 게 아니라,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면 어떨까", "아까는 하나였는데 왜 두 개가 됐을까" 같은 질문을 떠올리고 나름의 답을 찾으려는 마음을 길러주는 거예요.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려면 질문을 잘 던져야 한다는 이야기, 다들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각광받는 능력 중 하나가 바로 이 비판적 사고력입니다.
비판적 사고력은 특정 놀이 장르보다 그 놀이 안에서 오가는 대화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가 사소한 것에도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태도를 모델링해주고, 아이가 질문했을 때 너무 섣불리 답을 주거나 "그런 거 묻지 마"라고 차단하기보다 질문으로 되묻거나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힌트를 주면서 함께 답을 찾아가는 거죠. 다만 모든 부모가 훈련된 교육자는 아니니까, 이런 질문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놀이를 아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됩니다.
작가님이 추천하는 놀이는 수 놀이와 과학 놀이, 이른바 스템(STEM) 활동입니다. 과학·기술·공학·수학의 앞글자를 딴 말인데, 미국에서도 오래전부터 교육적으로 화두가 됐고 한국에서도 많이 주목받고 있어요. 스템 활동이 유치원생 정도의 아이에게도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길러준다는 연구가 최근 많이 나오고 있고, 맥킨지도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위협의 해법으로 스템 교육을 제시한 적이 있다고 해요. 요즘은 스템에 예술(Art)을 더해 스팀(STEAM)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책에는 특별한 교구 없이도 아이와 즐길 수 있는 수 놀이, 과학 놀이가 예시로 나와 있고, 그 놀이를 하면서 부모가 아이와 구체적으로 어떤 질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유용해요. 무너지기 쉬운 블록을 쌓으면서 "이건 왜 잘 무너질까", "어떻게 하면 안 무너질까"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정리해 보면
- 놀이도 실력입니다. 짧더라도 부모와 몰입해서 논 아이가 놀이성을 더 키웁니다.
- 미술 놀이는 결과물보다 과정 중심으로, 아이가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지켜봐 주세요.
- 비판적 사고력은 놀이 장르보다 그 안에서 나누는 질문과 대화에서 자랍니다.
- 아이가 질문하면 바로 답을 주기보다 되묻거나 힌트를 주며 함께 찾아가세요.
- 스템(STEM) 놀이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좋은 도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