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2.08 · 12:16
아이가 상상놀이를 반복할 때 실제로 경험하는 것들
상상놀이를 반복하며 아이는 두려운 감정을 다루고, 충동과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을 해요.
오늘은 두 돌 이상 장난감 추천 마지막 편, 상상놀이 편입니다. 상상놀이는 두 돌 이후 아이들의 놀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중요해서, 오늘은 상상놀이 자체의 이점을 주로 말씀드리고 장난감 추천은 짧게 곁들여볼게요.
상상놀이란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역할놀이나 소꿉놀이라고 많이 불렀는데, 요즘은 프리텐드 플레이, 드라마틱 플레이 같은 표현도 많이 써요. 어떤 상황이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그 속에서 역할을 맡아 노는 걸 말합니다. 자는 척 놀이, 먹는 척 놀이, 엄마놀이, 공주놀이, 해적놀이가 다 상상놀이예요. 아이의 표현언어가 조금 더 세련되지는 두 돌 무렵부터 아이들은 상상놀이를 열심히 하기 시작해요. 제가 자주 언급하는 몬테소리 철학에서는 다소 소외된 영역이지만, 오랫동안 여러 연구로 아이 발달에 중요하다는 점이 밝혀져 왔어요. 언어발달과도 밀접하지만, 특히 정서·사회성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아이의 사회성이나 정서적 안정감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발달센터에서 상상놀이나 역할놀이를 많이 해보라고 권하는 것도, 상상놀이를 활용한 놀이치료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두려운 감정을 안전하게 다뤄보는 시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아동의 놀이와 심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상상놀이와 정서·사회성 발달의 관계를 크게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상상놀이는 아이가 더 안전한 환경에서 감정을 다뤄볼 기회가 됩니다. 아이는 평소 경험한 다양한 감정을 놀이 속에서 반복해서 재현하면서,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도 놀이로 더 쉽게 다뤄볼 수 있어요.
한 심리학자는 두 가지 연구로 이를 확인했어요. 첫 연구에서는 유치원생을 둘로 나눠 한 그룹에는 개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영상을, 다른 그룹에는 같은 영상이지만 개가 구조되는 해피엔딩 영상을 보여줬습니다. 영상을 본 뒤 첫 번째 그룹 아이들이 더 불안하고 슬픈 반응을 보였는데, 이후 자유놀이 시간을 주자 이 그룹 아이들은 개 인형을 더 오래 가지고 놀면서 영상처럼 떨어지거나 위험해지는 주제로 놀이를 이어갔어요. 두 번째 연구에서는 새 유치원에 적응 중인 아이들을 아침 이별 뒤 불안 수준에 따라 나누고, 각각 자유놀이 그룹과 이야기를 듣는 그룹으로 다시 나눴습니다. 불안 수준이 높았던 아이들은 자유놀이 중 상상놀이를 더 많이 했고,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보다 불안 수준이 더 크게 낮아졌어요. 반면 애초에 불안 수준이 낮았던 아이들은 상상놀이를 한 경우와 이야기를 들은 경우에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려고 상상놀이라는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뜻이죠.
다미도 어린이집을 옮기고 적응하는 시기에, 엄마가 아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일하다가 다시 데리러 오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를 놀이로 매일같이 반복했어요. 제가 일부러 시킨 게 아니라 다미가 스스로 그렇게 놀더라고요. 이런 놀이 속에서 아이는 애착 대상과의 이별처럼 감정적으로 힘든 일을 반복 경험하면서, 그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연습하게 됩니다.
충동과 감정을 조절하는 연습이 되기도 해요
상상놀이는 부정적인 감정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다루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유명한 아동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아이들이 상상놀이 속에서 자신의 몸과 사회적 역할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자아의 욕구를 충족한다고 했어요. 평소 여러 제약 속에 사는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는 원하는 대로 해보면서 억눌린 욕구를 해소하고, 그만큼 정서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거죠.
또 상상놀이를 할 때 아이는 스스로 새로운 규칙을 부여합니다. "나는 선생님이야"라고 하면 평소처럼 행동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서 거기에 맞게 행동해야 하죠. 이 과정에서 충동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실행기능이 길러집니다. 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아이가 즉각적인 충동을 거스르며 행동할 때, 놀이 안에서 최고의 자기조절을 발휘한다고 말했어요.
감정 조절도 마찬가지예요. 한 연구에서 우울감을 느끼는 유치원생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게 각각 행복한 시나리오와 슬픈 시나리오를 주고 상상놀이를 하게 했더니, 우울하지 않은 아이들은 시나리오와 상관없이 비슷하게 놀이를 즐겼지만 우울한 아이들은 슬픈 시나리오에서 놀이를 훨씬 덜 즐겼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상태가 우울감으로 이어진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예요. 상상놀이를 하다가 우는 아이들도 있는데, 아직 감정 조절이 미숙해서 자연스러운 일이고 시간이 지나면 빈도가 줄어듭니다. 슬픈 상황에 감정이 이입됐지만 울지 않고 넘겼을 때, 아이는 "이건 놀이야"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적당한 수준으로 누르는 연습을 해낸 거예요. 실제로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상상놀이 비중을 늘린 아이들의 정서지능과 감정 조절 능력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상상놀이 장난감, 이렇게 골라보세요
예전에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장난감보다 큰 박스 하나처럼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는 장난감이 상징 능력이나 확산적 사고를 더 키워주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찾아보니 서울여대 아동학과 조은진 교수님의 연구가 있었는데, 결론은 이랬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는 박스를 조리대라고 가정하는 표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상상놀이를 잘하려면 오히려 사실적인 디테일이 있는 장난감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상징 능력이 생기면 그때는 박스 하나로도 다양하게 놀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위해서는 적당히 사실적인 상상놀이 장난감을, 그 외에는 아이의 흥미나 자주 접하는 장면 위주로 고르시면 좋아요. 다미는 병원에 몇 번 다녀온 뒤로 병원놀이에 열광해서 병원놀이 장난감을 잘 가지고 놀았고, 차로 이동하는 일이 많아 자동차와 인형 가족을 사줬더니 어린이집 등하원 놀이 같은 상상놀이에 잘 활용했어요.
정리해 보면
- 상상놀이는 아이가 두려운 감정을 안전하게 반복 경험하며 다루는 연습이 됩니다.
- 상상놀이 속 역할극은 충동과 감정을 조절하는 실행기능을 길러줍니다.
- 놀이 중 우는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조절 능력이 늘어납니다.
- 어린아이에게는 사실적인 디테일이 있는 장난감이, 그 이후에는 아이의 관심사에 맞는 장난감이 상상놀이에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