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에게 보여주는 영상, 음식만큼 까다롭게 고르시나요? 앞선 글에서 영유아가 영상을 볼 때 뇌에 직접 가해지는 부작용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서 학계에서는 이제 영상 시청 자체를 단죄하기보다, 어떤 영상을 어떤 맥락에서 보여줘야 아이에게 좋은지를 더 깊이 살펴보고 있죠. 여기서는 어떤 영상이 좋은 영상인지 조금 자세히 이야기해 볼게요.

결론부터 말하면, 잘 만들어진 영유아용 영상은 자극적이지 않은 이유식과 비슷해요.

아기가 이해할 수 있는 영상이어야 해요

영유아의 뇌는 어른과 달라요. 이제야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아기에게, 현실과는 또 다른 영상 속 요소들은 뇌가 제대로 처리하기에 버거울 수 있어요. 그래서 영유아의 발달 단계를 고려해 심사숙고해서 만든 영상을 골라야 해요.

기본 원칙은 어린 아기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영상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영상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아기는 자극적인 요소에만 수동적으로 집중하는 게 아니라, 영상에서 실제로 뭔가를 배우고 그 배움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떤 영상이 아기가 이해하기 좋은 영상일까요.

전개가 느리고 장면 전환이 적은 영상

한 논문에 따르면 전개가 빠르고 장면 전환이 잦은 영상은 영유아는 물론 더 큰 아이에게도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해요. 물 흐르듯 흘러가는 현실 세계와 달리 갑작스럽게 화면이 확확 넘어가기 때문이에요.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대화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 '이 사람 앞에 저 사람이 서서 이야기하는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지만, 컷이 자주 바뀌면 이미 갖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화면과 화면 사이의 관계를 추리해 내야 하죠. 어른은 이런 방식에 익숙하고 생략된 장면을 스스로 채울 인지 능력이 있지만, 어린아이는 생략된 장면을 추리하는 게 어렵거나 뇌에 인지적 부담이 돼요. 그래서 어린이용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잦은 장면 전환을 쓰지 않는 전략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미국의 유명한 아동용 교육 프로그램 '블루스 클루스'는 10분 동안 컷 전환을 평균 세 번만 쓴다고 해요. 반면 영유아용 상업 비디오들은 1분에 평균 여섯 번 이상 컷을 바꿔서 장면 전환이 지나친 경향이 있고요. 이와 관련해 8개월에서 16개월 사이에 상업용 비디오를 본 아이들은 두 살 때 언어 발달이 더딘 경향이 있었지만, 교육 프로그램을 본 아이들은 더디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장면 전환이 빠른 영상을 볼 때 아기의 뇌에 과부하가 걸리고 영상을 잘 이해하지 못해 학습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일 수 있겠죠.

스폰지밥을 본 아이들은 실행기능이 떨어졌어요

빠른 전개와 잦은 장면 전환이 영유아의 인지 능력에 직접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연구로 밝혀지지 않았어요. 다만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연구들은 있어요. 한 연구에서는 1세 때 주로 아동용 TV 프로그램에 노출된 아이들과 어른용 TV 프로그램에 노출된 아이들의 실행기능을 몇 년 뒤에 비교했어요. 아동용 프로그램에 노출된 아이들은 실행기능이 저하되지 않았지만, 어른용 프로그램에 노출된 아이들은 저하되었다고 해요. 물론 아동용과 어른용의 차이는 빠른 속도와 잦은 장면 전환만이 아니어서 그게 문제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 가운데 하나로 제시되고 있어요.

또 다른 연구에서는 아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눴어요. 9분 동안 첫 번째 그룹은 빠른 속도와 잦은 장면 전환이 특징인 '네모네모 스폰지밥'을, 두 번째 그룹은 느리고 장면 전환도 적은 '까이유'를 보게 했고, 세 번째 그룹은 그림을 그리게 했어요. 그 직후 실행기능 검사를 했더니 스폰지밥을 본 아이들의 실행기능은 현저히 떨어졌지만, 까이유를 본 아이들과 그림을 그린 아이들은 떨어지지 않았어요. 저자들은 잦은 장면 전환으로 어린아이의 뇌에 일종의 과부하가 걸리면서, 직후의 실행기능 검사에서 뇌의 자원을 충분히 쓰지 못했을 거라고 설명해요.

이 실험은 단기적인 효과만 살펴봤다는 점이 가장 큰 한계예요. 그래도 시사점은 있어요. 빠른 속도의 영상을 보고 나면 영상을 끈 뒤에도 아이의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질 수 있고, 이는 학습 능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거죠. 두 번째 한계는 스폰지밥과 까이유의 차이가 단순히 속도만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에요. 실제로 저자들도 스폰지밥이 까이유에 비해 인물과 배경이 굉장히 비현실적이라는 점이 실행기능에 영향을 주는 요소일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어요.

현실을 잘 반영한 영상

앞선 글에서 영유아는 영상에서 배운 내용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죠. 영상 속 사과가 현실의 사과를 상징한다는 걸 아는 능력은 보통 돌이 지난 뒤에야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다고 해요. 그 정도 나이는 되어야 영상과 현실이 별개가 아니라는 걸 서서히 인지하고, 영상으로 배우는 것도 가능해져요. 영상과 현실이 별개의 세계가 아님을 더 쉽게 알게 하는 방법은 영상이 현실 세계를 잘 반영하는 거예요.

앞서 스폰지밥과 까이유 실험을 진행한 저자들은, 스폰지밥은 기본적으로 현실 세계를 잘 반영하지 못해 아기가 이해하기 어렵고, 이런 비현실적인 요소를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이 아기에게 부담을 줘 뇌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해요. 다른 논문에서는 어린 아기가 보는 영상에서 사람이나 캐릭터 없이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는 장면이 사회적·인지적 학습에 방해가 된다고 해요.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는 건 비현실적이니까요. 아기들은 영상 속에서 물체가 스스로 조합될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람이 그 물체를 조작할 때는 잘 이해했다고 해요. 또 다른 논문에 따르면 영상이나 그림책이 실제를 잘 반영할수록 어린 아기들은 매체로 더 잘 배울 수 있다고 하고요.

어른은 허구적인 요소가 많은 영상이나 책을 보더라도 어떤 부분이 실제고 어떤 부분이 허구인지 분리해서 인식할 수 있죠. 해리 포터를 읽었다고 실제로 킹스크로스 역에서 벽으로 카트를 밀고 돌진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나 영유아는 아직 이런 능력이 부족해요. 어떤 게 실제라서 살리고 어떤 게 허구라서 버릴지 구분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그래서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현실에 없는 허구적인 요소가 너무 많지 않은 영상을 고르는 게 좋겠죠.

정보 나열보다 스토리가 있는 영상

영상의 포맷도 중요해요. 3세 미만 아이는 스토리가 있는 영상으로 더 잘 배운다고 해요. 잘 생각해 보면 현실 세계는 스토리거든요. 미국에서 한때 크게 히트했던 영유아용 교육 비디오 '베이비 아인슈타인'은 여러 연구에서 영유아에게 교육 효과가 없다고 밝혀졌는데요. 이런 형태로 정보를 보여주는 비디오는 영상 자체가 현실과 떨어져 있어요. 너무 많은 정보가 산발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에 어린 아기가 이해하기 어렵죠. 실제 현실에서 눈앞의 세상이 갑자기 다른 장면으로 바뀌면서 많은 정보가 쏟아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른에게도 상당히 혼란스러울 거예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으로 보면, 아직 어린 아기에게는 너무 빠른 속도감의 비현실적인 영상보다 좀 더 느린 속도감의 현실감 있는 영상이 더 적합할 것 같아요. 빠른 속도감에 비현실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영상은 신기하고 새롭기 때문에 아기가 수동적으로 집중하게 되고, 많은 부모가 아기의 집중을 붙잡는 도구로 영상을 쓰기 때문에 유튜브를 비롯한 많은 상업용 영상이 이런 형태를 띠고 있어요. 그러나 이런 영상은 영유아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려워요. 아이가 그걸 보며 잘 받아들이고 좋아하고 있다기보다,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해요. 전자 장난감이 아기에게 나쁠 수 있다고 이야기한 앞선 글에서, 전자 장난감은 아이가 배움이 아닌 자극에 집중하게 만들어서 나쁠 수 있다고 했는데요. 영상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정리해 보면

  • 좋은 영유아 영상은 자극적이지 않은 이유식처럼, 아기가 이해할 수 있는 영상이에요.
  • 전개가 느리고 장면 전환이 적은 영상을 고르세요. 빠른 영상은 뇌에 과부하를 주고, 보고 난 뒤에도 실행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어요.
  • 물체가 저절로 움직이거나 허구적 요소가 많은 영상보다 현실 세계를 잘 반영한 영상을 고르세요.
  • 정보를 산발적으로 나열하는 영상보다 스토리가 있는 영상이 좋아요.
  • 아기가 화면에 빠져든다면 좋아서가 아니라 이해하려 애쓰는 걸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