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3.01 · 17:41
스스로 하게 두면, 알아서 할까
안 해주면 는다는 말, 왜 우리 아이한텐 안 통할까요. 동기와 능력을 나눠 보면 답이 보여요.
아이가 "나 못해, 해줘"라고 할 때 부모는 보통 세 갈래 중 하나를 택하게 돼요. 그런데 가장 흔히 쓰는 방법도, 요즘 많이 회자되는 방법도 사실 생각만큼 잘 통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앞서 거부하는 아이의 협조를 어떻게 이끌어낼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오늘은 그보다 조금 더 큰 그림에서 아이가 못한다고 말하는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도와야 하는지 이야기해 볼게요.
"해봐"는 왜 안 통할까
아이가 "나 못해, 해줘" 하고 말하면 많은 부모님이 1차원적으로 "해봐, 해봐, 할 수 있어"라고 반응해요. 그런데 이 말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냥 부모가 아이 혼자 해냈으면 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에 가깝거든요. 아이가 처음에 못하겠다고 말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텐데, "해봐"라는 말 한마디로 그 이유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당연히 아이는 다시 "싫어, 못해, 해줘"라고 말하게 됩니다.
해주기·안 해주기·도와주기, 세 갈래 길
이런 상황을 반복해서 겪으면 부모님들은 크게 세 방향으로 대처하게 돼요. 첫째는 해주는 것. 떠먹여 주고, 놀아 주고, 안아 주는 식으로 요청을 그대로 들어주는 거죠. 둘째는 안 해주는 것. 혼자 먹게 두거나, 바쁘다고 하고 혼자 놀게 두는 방법이에요. 셋째는 도와주는 것인데, 저는 이 세 번째 방향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도와주기는 상대적으로 어렵고, 우리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하다 보니 대부분 해주기 아니면 안 해주기, 둘 중 하나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안 해주기"가 쉬워 보이지만 진짜 쉬운 건 아니에요
주변에서 "그냥 안 해주니까 하던데"라는 말을 들으면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지죠. 그런데 이 방법이 나에게는 잘 안 통할 때, 많은 부모님이 두 가지 결론 중 하나로 갑니다. 내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거다, 혹은 우리 아이가 자기주도성이 부족한 아이인가 보다. 저는 둘 다 그렇게 결론 내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부모님이 요구한 그 과제에 대한 아이의 능력 수준과 동기 수준이, 조언을 준 그 아이와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안 해주기"는 말로 들으면 굉장히 쉬워 보이는 해법이에요. 그런데 막상 해보면 잘 안 되고, 그러면 '이렇게 쉬운 방법도 못 하나' 하면서 오히려 육아 효능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쉬웠다고 해서 나에게도 쉬울 이유는 없는데 말이죠.
못한다는 말 뒤에는 동기 부족과 능력 부족이 있어요
"못한다고 해도 도와주지 마, 그러면 하게 돼 있어"라는 말 뒤에는 아이를 기본적으로 믿지 않는 시선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할 줄 아는데 그냥 못한다고 말하는 것뿐이니, 도와주지 않고 기회를 주면 알아서 하게 될 거라는 전제죠. 맞을 때도 있지만, 저는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봐요. 조금 더 들여다보면 아이가 "못해"라고 말할 때는 동기가 부족하거나 능력이 부족하거나, 둘 중 하나예요. 그런데 저는 동기가 부족해서 못 하는 것도 결국은 능력의 문제라고 봐요. 꾸준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동기는 정신적인 능력으로, 능력은 방법을 모르거나 신체 능력이 부족해서 수단 자체가 없는 경우로 나눠서 볼게요.
숟가락질과 혼자 놀기로 보는 동기와 능력의 차이
숟가락질을 예로 들면, 이건 대체로 동기의 문제일 때가 많아요. 어린이집에서는 잘하다가 집에서만 못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흔하거든요. 집에서는 간식이나 식사 시간이 불규칙해서 배고프지 않은 상태로 식탁에 앉을 가능성이 크고, 그러면 먹으려는 동기 자체가 떨어져요. 안 하면 엄마가 대신 해 준다는 걸 뻔히 아는 것도, 흘렸을 때 부모가 눈살을 찌푸리거나 부산스럽게 치워 주는 경험이 쌓이는 것도 동기를 떨어뜨리는 이유가 될 수 있어요. 이 중 원인이 "엄마가 도와줄 걸 아니까"뿐이라면 안 도와주는 것만으로 쉽게 풀리지만, 다른 이유들이 함께 있다면 배고픈 환경을 만들어 주고, 흘려도 괜찮다는 느낌을 주고, 혼자 떠먹을 때 구체적으로 칭찬해 주는 노력을 같이 해야 풀립니다. 반면 혼자 놀기는 능력의 문제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놀이도 스킬이라서, 어떤 주제의 놀이를 혼자 이끌어 갈 만큼 레퍼토리가 쌓이려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거든요. 다미는 역할을 바꿔 가며 이어가는 상상 놀이를 좋아하는데, 이건 혼자서 여러 역할을 오가야 해서 실행 기능이 요구되는 놀이예요. 42개월이 되어 실행 기능이 자라고 상상 놀이에 익숙해지면서, 밀어붙이지 않아도 제가 설거지나 샤워를 하는 동안 다미는 혼자서 잘 놀게 됐어요. 반대로 블록이나 자동차처럼 원래 혼자 놀기 쉬운 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더 일찍부터 혼자 놀 수 있었겠죠.
거절당한 경험이 쌓이면 아이는 도움을 청하지 않게 돼요
능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는데 "안 도와줄 거야, 너 혼자 할 수 있어"라는 반응만 반복하면 효과가 없을뿐더러, 아이가 정말 느끼는 "나는 이거 못해"라는 감정을 부정하는 셈이 돼요. 학교에서 어려운 문제를 못 풀겠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반 애들 80%는 푸는데 너도 풀 줄 알아야지, 혼자 해봐"라고만 한다면 부당하고 거절당한 기분이 들겠죠. 이런 경험이 쌓이면 아이는 점점 도움을 요청하지 않게 됩니다. 저부터도 도움을 잘 요청하지 않는 편이라, 콜센터에 전화하기보다 혼자 찾아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런 성향이 어릴 때 도움을 요청했다가 "스스로 해야지"라는 말로 거절당한 경험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부모가 집안일을 하거나 잠깐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짧게 "지금은 안 돼, 혼자 놀아"라고 하는 정도는 괜찮다고 봐요. 다만 그게 아이와의 대부분의 상호작용에서 기본값이 되는 건 다른 문제예요. 결국 중요한 건 아이가 못한다고 할 때 동기가 부족한지 능력이 부족한지를 살펴보고, 거기에 맞는 도움을 주는 스캐폴딩이에요. 그렇게 필요한 만큼 도와주면 아이는 능력과 동기가 자라는 만큼 스스로 해내게 되고, 부모도 매번 요청을 거절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정리해 보면
- "해봐, 할 수 있어" 한마디보다 아이가 왜 못하겠다고 하는지부터 살핀다.
- 안 해주기가 통하지 않을 때는 내 탓도 아이 탓도 하지 말고, 그 과제에 대한 동기와 능력 수준을 먼저 따져 본다.
- 동기가 부족한 상황이라면 그 행동을 하고 싶어질 환경과 이유를 만들어 준다.
- 능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면 경험과 연습을 통해 실력이 쌓이도록 곁에서 도와준다.
- 도움 요청을 반복해서 거절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도와주면서 스스로 해내는 경험을 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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