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4.01 · 18:49
부당하게 저평가된 한국 부모의 육아력, 데이터로 보면
한국 부모를 싸잡아 비난하는 콘텐츠, 실제 통계로 보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부모들이 아이를 망치고 있다"는 말, 온라인에서 심심찮게 보셨을 거예요. 오은영 박사님 때문에 요즘 아이들이 이상해졌다는 주장까지 나오죠. 저는 분명히 한국 부모인데도 이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소속되고 싶지 않은 집단처럼 느껴졌어요. 이 부당한 비난이 어디서 왔고, 실제 데이터는 뭐라고 말하는지 오늘 짚어 보려고 합니다.
한 집단을 싸잡아 비난하는 익숙한 패턴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된장녀'라는 말이 유행했어요. 원래는 돈을 벌지 않으면서 남자친구나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여성을 가리키던 말인데, 점차 변질되면서 여성의 소비 전반을 비하하는 말로 번졌죠. 스타벅스 커피 한 잔만 사도 놀림을 받았고, 그걸 증명하려고 일부러 싼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은 분위기까지 있었습니다. 한남, 맘충, 급식충도 비슷한 패턴이에요. 특정 계층을 하나의 특징으로 일반화해서 공격하다가, 그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거죠.
요즘 육아 콘텐츠도 이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아요. 전문가가 나와서 부모의 육아 태도를 비판하고 아이의 문제 행동을 진단하는데, 그 원인은 거의 예외 없이 부모입니다. 요즘 부모가 아이에게 너무 맞춰 줘서 아이들이 나약하고 자기 조절력이 약하다는 식이죠. 댓글 창에는 "한국 부모들이 아이를 망치고 있다", "나는 해외에 사는데 여기는 안 그렇다" 같은 말이 쉽게 달립니다. 영상 속 전문가의 진단이 일반화됐든 안 됐든, 결국 한국 부모 전체로 확장되는 거예요.
부정 편향과 확증 편향이 만드는 왜곡
사람은 부정적인 것을 더 오래 기억하는 부정 편향과, 내 생각이 맞다는 증거만 눈에 들어오는 확증 편향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어요. 이 두 가지 때문에 한번 자리 잡은 부정적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제가 20대 때 여자들끼리 자주 하던 "좋은 남자는 드물다"는 이야기도 같은 원리예요. 나쁜 남자 이야기가 더 널리 퍼지고 기억에 남다 보니, 실제로 남자를 만날 때도 나쁜 점만 눈에 들어오게 되는 거죠.
육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세세히 들여다볼 기회는 별로 없어요. 부모가 잘 훈육해서 아이가 협조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눈에 띄지 않죠. 우리가 보는 건 길에서 드러누워 떼쓰는 아이, 뉴스에 나오는 비상식적인 부모, 전문가가 병원에서 만나는 문제 사례뿐입니다. 프랑스 육아, 핀란드 육아, 네덜란드 육아가 유독 다르게 포장되는 것도, 옛날 육아가 지금보다 나았다는 생각도 같은 편향에서 비롯된 거예요.
통계로 보는 한국 부모의 실제 모습
주관적인 인상에서 한 걸음 떨어지려면 객관적인 데이터를 봐야 합니다. 긍정적 육아와 부정적 육아는 오랫동안 바움린드라는 심리학자가 만든 척도로 측정해 왔어요. 부모의 애정, 한계를 설정하는 통제, 그리고 최근 들어 중요하게 다뤄지는 자율성 지지, 이 세 가지 축으로요.
한 아동청소년패널 데이터 연구에서는 이 세 가지 항목으로 부모를 유형별로 나눴는데, 세 가지를 보통 수준으로 하는 평균적인 부모가 50%, 세 가지를 다 잘하는 긍정적 양육 부모가 33.7%, 세 가지를 다 못하는 부모는 9%였습니다. 같은 데이터를 다른 기준으로 나눈 연구에서도 평균적인 부모 31.68%, 긍정적인 부모 6.92%, 부정적인 부모는 4.4%로 나타났어요. 그리고 애정과 통제는 대체로 같이 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애정은 높은데 통제는 안 하는, 육아 담론에서 자주 비난받는 '허용적 부모'는 생각보다 드물었고, 오히려 애정도 통제도 다 잘하는 권위적인 부모가 많았어요.
못하는 육아는 인성이 아니라 여력의 문제
잘하는 부모는 다 잘하고, 못하는 부모는 다 못한다는 이 결과는 무엇을 뜻할까요. 긍정적인 육아 태도가 인성보다는 육아 스트레스, 정신 건강, 아이의 기질처럼 부모의 여력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뜻입니다. ADHD 성향이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따뜻하고 일관되게 대하기는 훨씬 어렵죠. 아이를 둘 이상 키우거나, 우울감을 느끼거나, 도와줄 사람 없이 독박 육아를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힘드니까 윽박지르다가, 끝까지 단호하게 버틸 힘이 없어서 결국 포기하고 허용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육아가 왜 어렵다는 건지 모르겠다,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하고 예뻐할 땐 예뻐하면 된다"는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럴 수도 있죠. 다만 그분의 육아 환경이 더 풍요롭거나, 아이 기질이 더 수월하거나, 본인 성격이 예민함이나 불안과 거리가 멀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런 조건이 긍정적 육아를 더 쉽게 만든다는 건 이미 많은 연구로 밝혀진 사실이거든요.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 힘들어하는 부모를 비난하는 건, 구구단을 못 외우는 1학년에게 6학년이 "그게 뭐가 어렵냐"고 핀잔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정신 건강 지표는 나빠지지 않았다
그러면 아이들은 정말 예전보다 이상해졌을까요.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초등학생의 총 문제 행동, 위축, 우울, 사회적 미성숙, 주의 집중 문제, 반항 행동, 인지 속도 부진 같은 지표를 추적한 아동패널 데이터를 보면, 6년 동안 오히려 개선되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치료가 필요한 임상 수준의 극단적인 데이터를 빼고 봐도 마찬가지였어요. 소아정신과나 발달 센터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더 쉽게 받을 수 있게 된 사회 분위기도 영향을 줬겠지만, 부모들이 좋은 육아 지식에 더 잘 접근하고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방향으로 다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아이 중심 육아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에요. 1990년대 기사에도 자녀 교육을 잘못해서 공주병 왕자병 아이가 늘었다거나, 핵가족화로 가정 교육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른 말에 무조건 순종하던 유교적 위계질서에서, 아이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문화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세대 간 충돌인 거죠.
프레임 하나로 내 육아를 재단하지 않기
전문가들은 흔히 하나의 프레임을 반복해서 전달합니다. 허용적 육아가 아이를 망친다, 너무 많이 해 줘서 가정이 망가진다, 부모가 감정 조절을 못 해서 아이를 망친다는 식이죠. 명확하고 자신 있어 보이니 인기도 많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자기 조절이나 충동 억제가 안 되는 아이를 예로 들면, 허용적 양육의 설명력은 3.4%에 그친 반면 권위주의적 양육의 설명력은 10.6%로 훨씬 높았어요. 오히려 지나치게 통제하는 쪽이 더 큰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공격적인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부모의 애정과 반응성 부족이었고,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도 마찬가지로 부모의 애정이 가장 큰 변수였습니다. 아이의 문제 행동이 부모 탓이 아닐 수도 있어요. 영유아기의 미숙한 자기 조절력, 부정적 정서성이 높은 기질, 동생이 생기거나 이사를 하는 등 눈에 띄지 않는 일상의 스트레스도 얼마든지 원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특정 프레임 하나에 내 육아와 남의 육아를 끼워 맞추다 보면, 잘하고 있는 부분까지 스스로 깎아내리게 됩니다. 권위적으로 이미 잘하고 있는데 "통제를 더 해야 하나" 애쓰다가 애정이 줄어들 수도 있고, 반대로 "욱하면 아이 정서에 나쁘다"는 말에 너무 조심하다가 통제가 아예 안 되기도 하고요.
정리해 보면
- "한국 부모가 아이를 망친다"는 비난은 부정 편향과 확증 편향이 만든 왜곡일 가능성이 큽니다.
- 통계로 보면 애정과 통제를 골고루 갖춘 부모가 다수이고, 극단적으로 못하는 부모는 소수입니다.
- 육아를 힘들어하는 건 인성이 아니라 아이의 기질, 스트레스, 도움받을 여력의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 아동의 정신 건강 지표는 최근 몇 년간 오히려 개선되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 특정 전문가의 프레임 하나에 내 육아를 끼워 맞추지 말고, 다양한 관점을 참고해 내 아이와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