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프님들, 육아가 쉬우신가요? 저희 엄마는 저한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어요. 저는 잘 울지도 않고 얌전하고 말도 잘 들었고,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고, 나중엔 방에서 혼자 책만 읽어서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요. 그런데 저희 언니를 키울 때는 육아가 그렇게 쉽지 않았대요. 막내를 키울 때는 언니만큼 어렵진 않았지만 저만큼 쉽지도 않았고요. 삼 남매의 육아 난이도가 이렇게 달랐던 이유는, 100%는 아니어도 한 80% 정도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키웠어요?"라는 오해

우리 사회에는 아이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바로 부모 탓으로 돌리는 문화가 있어요. 낯가림이 심한 아이를 키우는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어른이 친근하게 말을 걸었을 때 반기지 않고 숨어 버리면 "엄마가 애를 끼고 살아서 그렇다"는 말을 듣죠.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감정 조절을 못하고 드러누우면 "가정교육을 잘못해서 버릇이 없다"는 말도 듣고요. 아이를 키워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건 그러려니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말은 사실 아이를 키워 본 부모들이 더 많이 해요. "우리 아이는 안 그랬는데 쟤는 왜 저러지, 대체 어떻게 키웠길래" 하고요.

사람은 무언가를 설명하고 싶어 하는 존재라 늘 이유를 찾으려고 해요. 그런데 아이가 어떤 모습을 보일 때 가장 쉽게 내릴 수 있는 설명이 바로 부모 탓이에요. 유전을 탓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유전적으로 어떤 행동 특성이 나타날 수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요. 지능이나 키는 유전 영향이라고들 하면서, 성격이나 행동까지 유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죠. 이걸 제대로 알아야 함께 육아하는 다른 부모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좀 더 정당하게 대우해 줄 수 있어요.

기질이란 무엇인가

기질은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타고난 행동 특성을 말해요. 아기들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특히 유용해서 많은 아동 관련 학자들이 수십 년째 연구해 왔고, 근거도 탄탄합니다. 사람은 엄마와 아빠에게서 유전자를 반씩 물려받는데, 어떤 유전자를 받을지는 랜덤이고 그 조합 방식도 다양해서 형제들끼리도 기질이 다 달라요. 생애 초기 아이들의 행동 특성은 특히 기질에 많은 영향을 받아요. 많이 우는 아기도, 잘 못 자는 아기도, 가만히 둬도 방긋방긋 웃고 등 대고 잘 자는 아기도 다 기질적으로 타고난 거예요. 그러니 100일에 통잠 잤다는 아기 부모의 수면 노하우를 배우려고 줄 설 필요는 없어요. 타고난 부분이 큰 거니까요.

유전이냐 환경이냐, 답은 이미 나왔다

옛날에는 유전이 중요하냐 환경이 중요하냐 하는 논쟁이 뜨거웠어요. 유전학자들은 유전이라고, 아동학자들은 환경이라고 주장했죠. 하지만 이제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는 없어요. 답이 나왔거든요. 사람의 행동이나 성격은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난다는 게 정설입니다.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생애 초기의 경험에 따라 그 유전자가 발현되는지 아닌지가 달라질 수 있고, 어떤 유전자는 특정 환경이나 육아 방식에 더 크게 영향을 받기도 해요.

이걸 설명하는 개념 중에 반응 범위라는 게 있어요. 유전자가 도달 가능한 범위를 정하고, 환경이 그 범위 안에서 어디로 갈지를 정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부모 모두 키가 큰 남자아이는 178~185센티미터 사이에서 키가 유전적으로 결정되는데, 수면이나 영양, 운동 같은 환경 요소에 따라 178이 될 수도, 185가 될 수도 있는 거죠. 내향적인 유전자를 타고났어도 극도로 내향적인 사람이 될지, 사회생활을 적당히 즐기는 내향형이 될지는 환경에 달렸고요. 결국 유전과 환경 모두 중요합니다. 그러면 아이의 행동이나 성격에는 유전 탓도, 부모 탓도 있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왜 "부모 탓하지 마라"고 할까

부모 탓도 분명 있는데 왜 부모 탓하지 말라고 했을까요. 첫째, 아이가 어릴 때는 아직 환경의 영향력이 누적되기 전이라 기질, 즉 유전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더 클 수 있어요. 둘째, 유전은 아이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부모 탓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뿌리가 사실은 유전 탓인 경우가 많아요.

이걸 두 가지 방향에서 볼 수 있어요. 하나는, 유전자가 환경에 영향을 준다는 거예요. 다른 가정에 입양된 쌍둥이를 연구해 보면,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도 성격이나 인생의 성취도가 꽤 비슷한 경우가 많아요. 아이가 타고난 유전이 부모라는 환경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공격성을 유발하는 유전자 조합을 타고난 아이가 삶에서 자꾸 공격성을 표출하면, 부모는 아이가 공격적인 어른으로 자랄까 불안해져서 여유 있게 한계를 설정하기보다 엄격하게 행동을 제한하는 쪽으로 육아하기 쉬워져요. 부모가 육아를 못해서가 아니라, 보통의 부모가 좀 어려운 아이를 만나서 육아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예요. 순하고 손이 안 가는 아이를 만났다면 같은 부모도 좋은 육아를 했을 수 있는 거고요.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은 대체로 종형으로 분포하는데, 보통 수준의 육아를 하는 다수의 부모는 아이의 기질에 따라 육아 방향이 크게 흔들리고, 원래도 육아를 잘 못 했을 소수는 더 나빠지고, 원래도 잘하는 소수는 아이가 어렵든 아니든 좋은 육아를 유지해요. 그래서 통계적으로 보면 어려운 기질을 만난 부모 쪽에서 나쁜 육아가 더 많이 나타나는 거죠.

다른 하나는, 부모가 아이와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아이의 유전 성향이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육아하게 될 가능성이에요. 예를 들어 주의력을 다루는 의도적 통제라는 기질이 낮은 유전자 조합을 아이가 타고났다면, 부모도 비슷한 성향일 가능성이 더 높아요. 아이가 주의 조절을 잘 못해서 감정 통제가 안 되고 생떼를 쓸 때, 부모 역시 의도적 통제가 약해서 그 상황에서 감정 조절을 잘 못할 가능성이 높은 거죠. 그러면 부정적 육아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런 환경에서 아이의 감정 조절 능력은 더 개선되기 어려워지면서 악순환이 반복돼요. 반대로 아이가 순하고 부정적 정서성이 낮게 타고났다면 부모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서, 아이가 부정적 정서를 잘 안 보이니 부모도 화낼 일이 적고, 가끔 아이가 힘들게 해도 부모 본인이 원래 차분한 성격이라 잘 대처하죠.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육아 난이도는 양극화되기 쉬워요. 육아가 쉬운 부모는 유전도 환경도 계속 쉬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육아가 어려운 부모는 유전도 환경도 계속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그 출발점이 유전자인 거고요.

기질을 알면 육아가 달라진다

물론 이건 확률 이야기라, 쌍둥이 연구에서도 100% 같은 성격으로 자라지는 않아요. 그러니 기질을 이해했다고 해서 부모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함정에 빠지지는 않으시길 바라요. 만약 우리 아이에게 공격성 기질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나는 육아를 더 잘하면 아이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차분하게 한계를 설정해야지" 하고 더 의식적으로 노력할 수 있어요. 분노나 공격성 같은 기질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환경에 따라 그 볼륨은 얼마든지 낮아질 수 있고, 볼륨이 낮아진 기질은 축구 경기나 취미로 하는 운동처럼 건강한 방식으로 드러나거나 특정 분야에서는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해요. 실제로 부모 교육을 통해 부모가 바뀌면 아이의 문제 행동이나 성격, 삶의 성취도까지 긍정적으로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많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육아를 유독 어려워하거나 길에서 아이를 잘 다루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보시더라도, 한 번 더 연민의 시선으로 봐 주세요. 어려운 아이를 힘들게 키우고 계신 분이라면 "육아를 쉽게 못하는 건 부모 탓"이라는 말은 그냥 흘려들으세요. 아이마다, 가정마다 육아는 정말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요.

순한 기질과 어려운 기질, 그 사이

기질 하면 보통 순함과 예민함, 쉬움과 어려움부터 떠올리실 거예요. 그런데 사실 아이를 순한 아이, 예민한 아이 이렇게 둘로만 나눌 수는 없어요. 기질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육아를 쉽게 만드는 기질 요소들은 함께 나타나는 편이라 이를 묶어 순한 기질이라 부르고, 반대의 경우를 어려운 기질이라 부르는데, 이렇게 딱 나뉘지 않고 두 성질을 동시에 타고난 아이들도 많아요.

영유아 기질 연구에서 주로 참고하는 구분으로 보면, 크게 세 가지 하위 요소가 있어요. 외향성은 사교적이고 밝고 활발하고, 선뜻 나서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성향이에요. 부정적 정서성은 부정적인 감정을 잘 느끼는 기질이에요. 표현하는 것과는 다른, 느끼는지 아닌지에 대한 부분이죠. 신생아 때부터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울음이나 떼, 짜증처럼 겉으로 잘 드러나기 때문에 육아의 어려움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기질이에요. 의도적 통제는 유전 영향을 받긴 하지만 좀 더 천천히 나타나는 기질이에요. 실행 주의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만 2세 이후에 더 두드러지고, 본인의 의도대로 주의력을 조절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에요. 차분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퍼즐을 하는 아이를 떠올리시면 됩니다.

정리해 보면

  • 삼 남매의 육아 난이도가 다른 이유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들의 기질에 있었어요.
  • 기질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행동 특성이고, 근거가 탄탄한 개념이에요.
  • 아이의 행동은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며, 유전은 도달 가능한 범위를, 환경은 그 안의 위치를 정해요.
  • 부모 탓처럼 보이는 것도 실은 부모와 아이가 유전자를 공유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걸 기억하세요.
  • 아이가 어려운 기질을 타고났다면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의식적으로 차분하게 한계를 설정해 보세요.
  • 육아가 유독 힘든 부모를 만나면 탓하기보다 연민의 시선으로 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