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1.11 · 15:47
예민한 아이, 리스크가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예민함은 타고난 리스크가 아니라 수신 기능이 뛰어난 것이고, 좋은 육아를 만나면 오히려 큰 강점이 될 수 있어요.
예민한 기질은 오랫동안 아동 발달 분야에서 일종의 리스크처럼 다뤄져 왔어요. 예민한 아이가 순한 아이보다 나중에 공격성이나 불안 같은 정서 문제를 겪거나, 사회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도 꽤 있었고요. 그런데 예민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로 리스크일까요? 유전적으로 타고난 거라 부모가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걸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민하다"는 말에 담긴 오해
"순하다", "예민하다"라는 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영어로는 키우기 쉽다, 어렵다는 뜻의 표현을 쓰는데, 한국어든 영어든 이 말에는 좋다, 나쁘다는 평가가 은근히 섞여 있거든요. 특히 한국에서 "예민하다"는 말에는 이 정도로 반응하는 게 정상인데 그보다 더 크게 반응해서 비정상이라는, 그러면 안 된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어요.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정상이라는 우리 사회와 부모의 기대치가 반영된 말인 셈이죠. 그래서 이 단어에서 느껴지는 고정관념과 이미지를 걷어내고, 예민하다는 게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예민함의 진짜 정체, 수신 기능
한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책 『예민한 아이 잘 키우는 법』에서 아이의 예민함을 "수신 기능이 뛰어난 것"이라고 정리했어요. 주변 환경에서 오는 정보를 더 크게 받아들인다는 뜻이에요. 남들은 이만큼만 느낄 자극을 예민한 아이는 훨씬 크게 느끼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커진 불안을 울음이나 떼쓰기처럼 가감 없이 표현하기 때문에 더 문제로 여겨지는 거고요. 반대로 수신 기능이 약해서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 아이는 낯선 상황에서도 불안을 훨씬 적게 느끼고, 뭘 뺏겨도 크게 슬퍼하지 않고, 감정 기복도 적은 편이에요. 저도 다미를 키우면서 예민한 편이라고 느꼈던 지점이 이거였어요. 다미는 낯선 상황에서 유독 많이 울었거든요.
이런 차별적 민감성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부분이 크고 생물학적인 기반도 있어요. 같은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더 크게 느끼는 아이들은 심장 박동의 변이 폭, 즉 심박변이도가 평소에 더 크게 나타나고, 특정 형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그런데 신생아 때부터 심박 패턴이 다르고 유전자가 다르다고 하면, 예민함은 정말 타고나서 바꿀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유전자는 정해진 대로 바뀌지 않지만, 그 유전자가 어떻게 표현되는지, 즉 기질은 경험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어요. 신경계와 뇌가 활발히 발달하는 생애 초기에는 더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라도 예민하게 태어나 안 예민하게 자랄 수도, 안 예민하게 태어나 예민하게 자랄 수도 있습니다. 여러 장기 추적 연구를 종합해 봐도, 기질은 예전에 학자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고정된 특성이라기보다는 여러 해에 걸쳐 계속 만들어져 가는 특성이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예민한 아이가 빠지기 쉬운 악순환
기질이 고정된 게 아니라면, 예민한 아이들이 통계적으로 문제 행동이나 사회 부적응을 더 많이 보인다는 연구 결과는 왜 나왔을까요? 기질 자체가 안 바뀌어서가 아니라, 예민한 기질로 인한 행동이 부정적인 환경을 만들 가능성을 높이고, 그로 인해 악순환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에요.
예민한 아이의 가장 큰 특성은 짜증, 불안, 슬픔,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잘 표출한다는 거예요. 잘 울고, 잠도 잘 못 자고, 식사도 잘 안 먹으니 부모는 당연히 육아 중에 스트레스를 받겠죠.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는 아이에게 따뜻하게 반응해 주기가 어려워요. 부모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원래 그런 경향이 있는 거예요. 놀이터에서 집에 가자고 하면 우는 아이, 기저귀를 갈려고 하면 떼쓰는 아이를 상대하다 보면 부모도 다소 강압적으로 상황을 해결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요.
문제는 예민한 아이일수록 환경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부모의 부정적인 양육 태도에도 더 크게 영향을 받죠. 따뜻하지 않거나 강압적인 양육은 어떤 기질이든 나쁜 결과로 이어지지만, 예민한 아이일수록 그 경향이 더 강해져요. 그러면 부모는 더 스트레스를 받고 더 강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되고,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아이는 예민한 기질을 계속 유지하고 문제 행동이나 정서적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예요.
악순환을 끊는 건 부모의 시선부터
그러면 예민한 아이를 키울 때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먼저 기질 자체가 고정된 게 아니라 천천히 만들어져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게 도움이 돼요. 아이의 기질에 대한 부모의 인식은 실제 육아 행동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한 연구에서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 많이 울고 보채면 오히려 부모에게 더 반응적인 육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해요. 실제로 어렸을 때 심박변이도가 높고 많이 울었던 아기들이 나중에 감정 조절 능력, 사회성, 주의 조절 같은 정서·사회적 발달 결과가 더 좋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생각해 보면 아기가 생후 5, 6개월처럼 어릴 때는 기질이 어떻고 따지기보다 일단 울면 달래 주고, 안아 주고, 공감해 주는 게 일상이잖아요. 많이 우는 아이일수록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부모의 도움을 받아 함께 조절해 가는 연습을 더 많이 하게 되니, 오히려 감정 조절 능력과 사회성을 기를 기회가 될 수 있는 거예요.
반대로 부모가 어릴 때부터 아이를 "예민하다"고 강하게 인식하면, 일상에서 아이의 감정에 덜 반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도 있어요. 아이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예민하다"는 그 인식 자체 때문에 부모가 아이에게 덜 반응하게 되는 거죠. "우리 아이가 힘들구나, 불편하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우리 아이 예민해서 또 울어" 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대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물론 이런 인식은 아이의 반복적인 행동에 부모가 지치면서 생기는 결과이기도 해요. 하지만 악순환을 끊는 건 부모가 먼저 시작해야겠죠. 아이가 시작할 수는 없으니까요. 예민함은 수신 기능이 발달했다는 뜻이라, 부모가 보기엔 별거 아닌 자극도 아이에게는 정말로 힘든 거예요. 개가 무서워서 우는 아이도, 개한테 물려서 우는 아이와 똑같이 공감받고 위로받아야 해요.
저는 다미가 타고난 기질이 좀 예민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도 고양이가 자기 의자에 올라갔다고 울어 버린 적이 있는데요, 그럴 때 저는 "다미가 의자에 올라가서 속상했구나. '이건 내 의자야, 이제 내려가' 하고 한번 말해 볼까?" 하고 다미의 감정을 읽어 주고, 다미가 그 말을 듣고 스스로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가져요. 이런 시간들이 다미에게는 감정을 조절하는 훈련이 되는 것 같아요.
육아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도 좋은 육아의 필수 조건이에요. 힘든 상태로 방치하면 앞서 말한 악순환에 쉽게 빠지니,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아이 하나를 쉽게 키우고 누군가는 힘들어한다면, 그건 원래 다 똑같이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질에 따라 혼자 키우기 더 힘든 아이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에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더 크게 받아들이는 아이
예민함이 바뀌든 안 바뀌든, 그 자체가 걱정거리일 이유는 없어요. 오히려 특별한 강점이 될 수도 있거든요. 앞서 소개한 책에는 예민함이 예술적 감수성 같은 강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와요. 저는 성격이 안 예민한 편인데 예술적 감수성도 좀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저보다 예민한 다미는 예술적 감수성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됐어요.
한 가지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요. 환경에 영향을 잘 받는 아이는 나쁜 것만 잘 받아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것도 더 잘 받아들여요. 이걸 차별적 민감성 이론이라고 하는데, 예민한 아이는 나쁜 환경에 더 크게 영향받아 나쁜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지만, 반대로 좋은 양육을 만나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똑같이 높다는 거예요. 이걸 "더 좋게도, 더 나쁘게도"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해요. 부모가 아이에게 따뜻하게 반응해 주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주고, 감정 조절의 모범을 보여주면서 좋은 육아를 꾸준히 제공하면, 예민한 아이는 오히려 훨씬 더 사회적으로 뛰어난 아이로 자랄 수 있어요. 제가 처음에 예민함이 절대 리스크가 아니라고 말씀드린 이유가 바로 이거예요. 예민한 아이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아이입니다.
정리해 보면
- 예민함은 나쁜 기질이 아니라 주변 자극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수신 기능이에요.
- 예민한 아이의 부정적 감정 표현은 부모의 스트레스로, 다시 강압적 육아로 이어지며 악순환을 만들 수 있어요.
- 기질은 태어날 때 고정되지 않고 경험과 환경에 따라 여러 해에 걸쳐 계속 만들어져요.
- 아이가 울 때는 예민함을 탓하기보다 힘든 마음 자체에 공감하고 함께 조절하는 연습을 해 보세요.
- 육아 스트레스는 혼자 견디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 좋은 양육을 꾸준히 만나면 예민한 아이일수록 오히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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