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3.12 · 20:18
아이에게 선택지를 제대로 주는 기술
선택지를 잘못 주는 흔한 실수와, 주의력·실행 기능을 키우는 선택지 주기의 기술을 정리했어요.
선택지를 주면 아이의 주의력과 실행 기능이 자란다는 이야기, 앞선 글에서 전해드렸죠. 그런데 막상 선택지를 줘 봐도 별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아이가 A도 B도 아닌 엉뚱한 C를 고르겠다고 떼를 쓰는 순간을 겪어보신 분들 많으실 거예요. 오늘은 흔히 저지르는 잘못된 선택지 주기와, 실행 기능 발달 효과를 제대로 끌어내는 선택지 주기의 기술을 정리해 볼게요.
가짜 선택지를 주고 있지는 않나요
선택지를 준다는 말의 형식만 갖추고, 정작 아이에게 진짜 권한을 넘길 마음이 없다면 효과는 없습니다. 아이도 결국엔 알거든요. 부모가 그냥 정해진 말만 할 뿐, 진짜 자신에게 고를 힘을 준 게 아니라는 걸요.
대표적인 가짜 선택지가 하나는 부정적인 것, 하나는 긍정적인 것을 묶어서 주는 방식이에요. "집에 같이 갈래, 혼자 놀이터에서 놀래" 같은 말은 선택지가 아닙니다. 부모 머릿속에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고, 그걸 고르게 하려고 나쁜 선택지를 같이 붙인 것뿐이니까요. 선택지를 줄 때는 모든 항목이 아이 입장에서 받아들일 만한 것이어야 해요.
또 하나는 실제로는 거부를 받아줄 마음이 없으면서 선택지인 척 묻는 경우예요. "양치 할래 안 할래", "어린이집 갈래 안 갈래" 같은 질문이 그렇죠. 아이가 안 한다고 답했을 때 부모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그래" 할 수 없다면, 이건 선택지가 아니에요. 이런 질문이 반복되면 아이는 "내가 정말 마음대로 골라도 되는 건가"를 헷갈리기 시작하고, 그건 실행 기능 발달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올바른 방법은 큰 틀에서는 한계를 분명히 정해 두고, 그 안의 방법이나 순서, 시기에서만 선택지를 주는 거예요. "우리는 양치를 할 거야. 옷을 벗고 할까, 목에 수건을 두를까?" "지금 후딱 하고 놀러 갈까, 5분 있다 할까?" 이런 식으로요. 이때 선택지가 아이에게 매력적으로 들리게 표현을 조금 다듬어 주면, 동기까지 함께 끌어올릴 수 있어요.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아이가 겪게 해주세요
아이가 선택을 잘못했을 때 그 결과를 부모가 매번 대신 수습해 주면, 아이는 열심히 고민해서 골라야 할 이유를 점점 못 느끼게 됩니다. 뇌과학자 윌리엄 스틱스러드 교수는 《놓아주는 엄마, 주도하는 아이》에서, 아이가 잘못된 선택으로 스트레스를 겪으며 회복에 필요한 회로를 만들고 책임감을 배운다고 말합니다.
마트에서 초콜릿과 장난감 중 하나를 고르게 했더니 초콜릿을 선택했다고 해볼게요. 초콜릿을 다 먹고 나서 장난감 생각이 나 울음을 터트릴 수 있어요. 이때 안쓰러운 마음에 장난감을 사 주면, 아이는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는 경험을 놓치고 "충분히 조르면 누군가 수습해 준다"는 인식만 쌓게 됩니다. 그럴 땐 "그건 네 선택이었어. 초콜릿은 먹으면 사라지니까 아쉽다, 그치" 정도로 공감하며 마무리해 주세요.
아이가 힘들어할 땐 부모가 대신 정해줘도 괜찮아요
아이가 불안하거나 당황하거나 초조한 순간에도 무조건 선택을 시키는 것 역시 잘못된 사례예요. 누구나 자기 삶의 리더가 되고 싶어 하지만, 심리적으로 힘든 순간에는 누군가의 이끎을 받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아이가 그런 이유로 선택을 거부한다면, 부모가 리더 역할을 넘겨받아 대신 정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다 아이가 편안해지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그때 다시 선택지를 많이 제공해 주시면 돼요.
기준을 알려주면 실행 기능이 더 자라요
아이가 아무렇게나 고른다고 해서 실행 기능이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아요. 선택할 때 활용할 수 있는 기준을 옆에서 스캐폴딩 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신발을 고를 때 "오늘 많이 걸을 거야. 그러니까 편한 신발로 고르면 어떨까?" 하고 말해 주면, 아이는 '편함'이라는 자를 대고 여러 신발을 비교해 고르게 되죠. 이 과정에서 전전두엽이 쓰이고 발달합니다.
아이가 커 갈수록 하나의 기준뿐 아니라 여러 기준을 동시에 고려하는 법도 알려주면 좋아요. 연구에 따르면 만 3세 정도부터는 두 개의 기준을 번갈아 적용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이 생긴다고 해요. 간식을 고를 때 "얼마나 달콤한지"와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지"라는 두 기준을 함께 따져 보게 하면, 아이는 어떤 기준이 더 중요한지 고민하며 딜레마를 해결하게 되고, 이 과정이 실행 기능을 한층 더 강하게 훈련시켜 줍니다.
선택을 말로 짚어 주고, 필요한 정보도 함께 건네세요
특히 어린 아이일수록 선택을 하고 나서 "이걸 골랐구나" 하고 한마디 덧붙여 주는 게 좋아요. 아동 심리학자 베키 베일리는 부모가 아이의 선택을 말로 짚어 줄 때 아이가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하게 되고, 이것이 전두엽을 강화한다고 말합니다. 앞선 글에서 다룬 행위자 감각, 그러니까 "내가 선택하고 통제한다"는 감각이 이렇게 쌓이면, 반항이 부쩍 심해지는 18~36개월 시기에도 아이는 덜 반항하고 더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어요.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미리 건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옷을 고를 때 "오늘 날씨가 어제보다 춥대. 어제 입은 옷은 좀 춥지 않았어?"처럼, 아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정보를 알려주는 거죠. 그러면 아이는 그 정보로 자기만의 기준을 세워 더 자신 있게 고를 수 있고, 부모의 바람도 아이의 선택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슬쩍 반영할 수 있습니다.
선택을 거부하는 아이, 이렇게 도와주세요
선택을 거부하는 데도 여러 이유가 있어요. 아직 어리고 독립성이 부족하거나 불안이 많은 아이라면, "이걸 골랐구나" 하는 언급을 계속해 주면서 "나는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단단해질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왼손 잡을지 오른손 잡을지, 걷기 시합을 할지 뛰기 시합을 할지처럼 따뜻하고 가벼운 선택지를 자주 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큰 아이라면, 부모가 아이의 실수에 과하게 반응하지 않고 격려해 주세요. 부모 스스로도 자신의 실수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소리 내어 보여주면 좋아요. "아, 잘못 골랐네. 이건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로 줘야겠다" 하는 식으로요.
부모가 준 선택지 대신 자기만의 것을 고집하는 아이도 있어요. 대개 18~36개월 무렵, 통제당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입니다. 이건 자아와 독립성을 찾으려는 발달적으로 자연스러운 노력이니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요. 중요한 건 부모가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거예요. 처음 준 선택지를 담담하게 반복해서 제시하시면 됩니다. 다만 너무 기계적이거나 위협적으로 반복하면 아이가 오히려 위축되어 더 크게 울 수 있으니, "싫은 마음 알겠어. 지금은 이거랑 저거 중에 하나를 선택해 줘"처럼 마음을 먼저 알아주면서 반복해 주세요. 아이가 결국 둘 중 하나를 고르면 그 협조적인 태도를 크게 칭찬해 주시고요.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부모가 둘 중 하나를 정해서 그냥 실행하시면 됩니다.
골랐다가 바꿨다가 갈팡질팡하는 아이도 있어요. 대개 부모의 선택지를 거절하고는 싶은데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아이들이 보이는 소극적인 반응이에요. 최근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일이 있었다면 당분간 부모가 대신 선택해 주면서 아이가 안정감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평소에도 이런 모습이 계속된다면 "이번에 고르면 못 바꿔"라고 부드럽게 미리 알려준 다음, 마지막으로 고르고 나서는 더 이상 바꿀 수 없다는 걸 확실히 해주시면 됩니다. 어렵게 하나를 선택한 것 자체를 칭찬해 주세요.
정리해 보면
- 선택지는 모두 아이 입장에서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준비하고, 진짜 거부를 받아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선택지를 주세요.
-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아이가 직접 겪게 하고, 부모는 공감으로만 마무리하세요.
- 아이가 불안하거나 힘들어할 때는 부모가 대신 결정해 주세요.
- 선택 기준을 알려주고 선택한 사실을 말로 짚어주면서, 필요한 정보를 함께 건네세요.
- 아이가 선택을 거부하거나 갈팡질팡할 때는 이유를 살펴 각각 다르게 대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