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2.04 · 11:59
아이가 크면 부모와 멀어지는 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아이와 멀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니라 부모의 소통 방식이 만드는 결과라는 이야기.
아이가 자라서 10대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때 나와 아이는 어떤 관계일까요? 어떤 집은 부모와 자녀가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부모를 찾는데, 어떤 집은 아이가 부모와는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속마음은 인터넷에나 털어놓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아이가 크면서 부모와 조금씩 멀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멀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건 제 착각이었어요
누구나 자기가 자란 가정을 기준으로 뭐가 정상인지 판단하게 됩니다. 다른 집 사정을 속속들이 볼 수는 없으니까요. 저도 부모님과 그렇게 돈독한 사이는 아니었고,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에는 사랑과 함께 약간의 의무감도 섞여 있었어요. 크면서는 혼자 하는 활동을 더 좋아했고, 그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부모님과 온갖 주제로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부모님을 찾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좀 놀랐어요. 그러면서도 "난 원래 독립적이야", "우리 집안이 원래 그래", "부모님하고 너무 친한 것도 좀 촌스럽지"라며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관계가 나빠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에요
육아 공부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부모와 자녀 관계가 멀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와의 관계를 인간관계로 대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더라고요. 아이를 하나의 의지를 가진 인격체가 아니라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 부모 기대에 맞춰야 하는 존재로 보는 시선 자체가 문제였던 거예요. 부모는 아이가 너무 당연한 존재라서 이 관계도 정성껏 가꿔야 한다는 걸 잊기 쉽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만 찾고 매달리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커가면서 멀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제가 직접 설문을 해봤더니 10대 때 부모님과 꼭 필요한 대화 외에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응답이 상당히 높게 나왔어요. 공부 때문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희 집은 부모님이 공부하라는 말을 별로 안 하셨는데도 이렇게 멀어졌으니 그것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아이가 대화하고 싶지 않아지는 진짜 이유
저는 이게 근본적으로 의사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고학년쯤 된 아이가 담임 선생님한테 부당한 대접을 받고 화가 나서 집에 와 "선생님 진짜 싫어, 못생겼어!"라고 말했다고 해볼게요. 부모는 보통 "선생님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사람 외모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니야", "예쁜 말만 써야지"라고 반응하기 쉬워요. 아이는 그 말을 하면서 엄마가 자기 감정을 알아주길 바랐을 텐데, 부모는 아이가 예쁜 말을 썼는지 훈계할 거리를 찾기 바쁩니다. 이렇게 매번 됨됨이를 평가받는다면 그 상대와 계속 이야기하고 싶을까요? 저를 포함해 제 또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부모님과 소통하며 자랐고, 배운 게 그것뿐이라 내 아이에게도 똑같이 하게 되기 쉬워요. 그래서 육아는 공부가 필요한 일이에요. 좋은 관계를 만드는 방법을 부모님께 배운 적도, 어디서 가르쳐준 적도 없으니까요.
통제보다 자율성에 초점을 두면 달라지는 것들
아주 어린 아이도 감정과 욕구가 있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부모가 그걸 알아주길 바랍니다. 상황상 받아줄 수 없더라도 아이 내면에 관심을 갖고 알아주려는 부모를, 아이는 더 좋아하고 더 존경하고 더 잘 따르게 돼요. 자발적으로 협조하고 반항도 덜 하고 부모의 메시지도 더 잘 받아들이죠. 관계가 나빠지는 건 대체로 부모가 아이 내면보다 자기 기준으로 아이를 통제하려 할 때 생겨요. 저는 평소에 다미와 이야기할 때 제가 "안 돼"라고 얼마나 말하는지, "그래"라고 얼마나 말하는지를 의식하는 편이에요. 부정적인 반응보다 긍정적인 반응이 훨씬 많아야 하고, 자꾸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면 그 환경 자체를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예를 들어 아이가 단 걸 너무 많이 먹고 싶어 해서 힘들다면, 집에서 단것을 아예 치워버리는 식이죠. 물론 부모가 "안 돼"라는 말을 아예 안 하고 살 수는 없지만, 그게 너무 과해져서 아이와의 관계라는 선을 자꾸 침범하지는 않는지 늘 살펴볼 필요는 있어요.
좋은 관계가 만드는 것들
저는 근본적으로 훈육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모와 아이 사이가 좋으면 그 자체로 삶의 행복이 되고, 대화도 훨씬 많아지거든요.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하긴 하지만 어른과 나누는 대화와는 다릅니다. 소설 「데미안」에서 주인공 싱클레어가 어른스러운 친구 데미안을 만나 지적으로 자극받으며 성숙해가듯이, 삶의 경험이 풍부하고 지적으로 성숙한 어른은 아이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어요. 아이에게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고, 배움이 될 만한 답을 해주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도록 도와줄 수 있는, 아이가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어른이 바로 부모예요. 최근 여러 연구에서도 부모와 아이 사이의 풍부한 대화가 지적 능력 향상에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계속 밝혀지고 있어요. 초등학생 이후에도 아이가 부모와 즐겁게 대화하고 싶어 하도록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미 이룬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해 보면
- 아이와 멀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니라 부모가 관계를 잘 가꾸지 못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 아이가 감정을 표현할 때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 감정부터 알아주세요.
- 통제보다 아이의 자율성에 초점을 맞추면 아이는 더 협조적이고 부모 말도 더 잘 받아들입니다.
- "안 돼"와 "그래"의 비율을 스스로 점검하고, 자꾸 안 된다고 말하게 되는 환경이라면 환경 자체를 바꿔보세요.
-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아이는 자라서도 부모와 즐겁게 대화하고 싶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