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아이와 놀아 주는 모습이 너무 거칠어서 마음에 안 드는 엄마도, 반대로 엄마랑 똑같이 차분해서 마음에 안 드는 엄마도 계실 거예요. 아빠 중에는 특히 딸과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나름 열심히 놀아 주는데 배우자한테 자꾸 지적만 당해 속상한 분도 계실 거고요. 아빠들이 아이와 주로 하는 거친 몸놀이가 왜 아이의 주의력 발달에 좋은지, 의외로 많은 분이 모르고 계신 이야기를 해 볼게요.

거친 몸놀이라는 놀이 장르

거친 몸놀이는 낯설게 들리겠지만 학계에서 따로 연구되는 하나의 놀이 장르예요. 영어로는 플레이 파이팅, 러프하우징이라고도 하고 학자들은 주로 '러프 앤 텀블 플레이'라고 불러요. 저는 내과 의사와 놀이치료사이자 심리학자인 로렌스 코헨 박사가 함께 쓴 『아이와 몸으로 놀아 주세요』라는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됐어요. 거친 몸놀이의 이점과 연령별 추천 놀이가 그림과 함께 친절하게 나와 있는 책이에요.

거친 몸놀이는 상상놀이나 소근육·대근육 놀이, 미술 놀이에 비해 아동 발달과 놀이 분야에서 소외되어 온 영역이에요. 엄마보다 아빠와 주로 하는 놀이인데, 가정에서는 엄마가, 기관에서는 여성 선생님이 양육의 주체인 경우가 많아서가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최근 아빠 육아의 효과가 주목받으면서 이 놀이의 이점도 많이 연구되고 있어요. 여러 연구가 거친 몸놀이가 아이의 자기조절력과 공격성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짚었죠. 아빠와 거친 몸놀이를 주로 하는 걸음마기부터 초등 저학년까지는 아이가 신체 움직임을 조절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이 가장 크게 발달하는 시기인데, 이때 흥분되고 신체적으로 도전적이고 경쟁적인 놀이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해석하고 스스로의 강한 충동을 다스리며 실패와 좌절에 대처하는 법을 연습하는 귀중한 기회가 된다는 거예요.

저는 딸 하나를 키우다 보니 서로 공격하는 싸움 놀이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가끔 칼싸움처럼 흘러갈 때가 있어요. 잘 보면 이 놀이가 아이 입장에서 상당한 자기조절을 요구해요. 싸움 놀이라고 모든 수준의 공격이 용인되는 게 아니거든요. 칼을 너무 세게 휘두르면 안 되고, 얼굴 쪽으로 휘두르면 안 되고, 깨물기 같은 공격은 금지죠. 아이는 감정적으로 굉장히 흥분한 상태에서도 놀이가 중단되지 않도록 공격성을 참고 흥분을 다스리는 기회를 얻는 거예요.

폴, 업, 양말 레슬링

그런데 제가 말하는 거친 몸놀이는 역할놀이 속 칼싸움과는 조금 달라요. 아이가 진심으로 몸을 써서 어떻게든 아빠를 이기려고 난리를 쳐야 하는 놀이예요. 연구에서 아빠들의 거친 몸놀이 질을 측정하려고 시키는 놀이는 주로 세 가지인데, 이것만 거친 몸놀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예시로 봐 주세요.

  • 폴: 둘이 한 다리로 깽깽이 뛰면서 서로 팔을 잡고, 줄다리기하듯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기는 사람이 이겨요.
  • 업: 아빠는 등을 대고 누웠다가 완전히 일어서려 하고, 아이는 아빠가 못 일어나게 막아요.
  • 양말 레슬링: 둘이 손과 무릎으로 엎드려 마주 보고, 자기 양말은 뺏기지 않으면서 상대 양말을 벗기는 게 목표예요. 다미와 해 봤는데 상당히 재밌어요.

학자에 따라 잡기 놀이를 넣기도 해요. 전반적으로 몸을 많이 쓰고 스킨십이 많이 일어나고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는, 레슬링 같은 형태의 놀이를 거친 몸놀이라고 해요.

이 놀이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욕구를 건드려요. 쥐나 원숭이 같은 포유류에게서도 많이 관찰되죠. 경쟁 구도가 형성되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이기고 하나는 지고, 설렁설렁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신체 능력을 써야 하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생존이 위협받거나 사냥해야 하는 상황처럼 온몸이 긴장돼요. 그러면서도 즐거움은 끝까지 유지해야 하죠. 적어도 동물 수준에서는 개체 간의 거친 몸놀이가 발달에 꼭 필요하다는 게 밝혀져 왔어요. 한 동물 실험에서 쥐들 사이의 놀이 싸움을 못 하게 했더니, 인간으로 치면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 발달에 결함이 생겼거든요.

작업기억력 편차의 35%

거친 몸놀이는 주로 인지보다 정서·사회성 분야에서 연구됐어요. 감정조절이나 사회적 유능감에 긍정적이라는 결과가 꽤 있죠. 인지 능력이나 주의력과의 인과관계는 직관적으로 떠올리기 쉽지 않은 분야라 연구가 잘 안 됐는데, 최근에 조금씩 되고 있어요. 한 연구에서는 질 높은 거친 몸놀이를 더 자주 경험한 만 2~4세 아이들이 또래를 향한 공격성이 더 낮고 주의 조절력은 더 높았다고 보고했어요. 또 다른 연구는 아빠와 하는 거친 몸놀이의 질과 빈도가 높을수록 아이의 작업기억력이 높았다고 보고했고요. 이 연구는 아까 말한 쥐 연구에서 영감을 얻어, 사람도 거친 몸놀이를 많이 하면 전전두엽 기능이 강화되지 않을까 하는 가설에서 출발했어요.

작업기억력은 전전두엽이 담당하는 실행기능이자 지능을 재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예요. 연구 저자들은 작업기억력이 아이의 인지 발달을 가장 강하게 예측하는 능력으로 나타났기에 거친 몸놀이와의 관계를 연구하게 됐다고 적었어요. 데이터를 분석하니 연구자들도 놀랄 만큼 높은 상관관계가 나타났는데, 만 4~7세 아이들의 작업기억력 편차 중 무려 35%가 거친 몸놀이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어요. 물론 샘플 수가 적고 연구 하나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건 감안해야 하지만, 앞으로 더 연구되어야 할 분야인 건 확실해 보여요.

메커니즘이 다 밝혀진 건 아니지만 생각해 볼 수 있는 연결 고리는 많아요. 격렬한 신체활동을 주기적으로 하니 뇌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볼 수도 있고, 흥분한 상황에서 공격이나 신체활동의 수위를 스스로 조절하며 놀아야 하니 충동 억제 능력이 좋아지고 그에 따라 전전두엽이 더 잘 발달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만 2세부터 가능, 4~7세에 가장 활발해요

거친 몸놀이 속에서 아이는 '아빠는 나보다 힘이 세다'는 현실과 '나는 아빠를 이길 수 있다'는 놀이 속 비현실을 머릿속에 함께 두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7세 이후에는 참여 빈도가 점점 줄어든다고 해요. 또 상대의 감정이나 행동의 의도를 어느 정도 해석할 수 있는 인지 단계가 되어야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어요. 만 2세부터 가능은 하지만 그 정도로 어릴 때는 아빠가 진심으로 공격하는 건지 놀이로 공격하는 건지, 정말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는 건지 놀이 차원인지 파악하기 어렵고, 아빠의 큰 흥분에 당황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가장 자주, 즐겁게 하는 시기는 만 4~7세, 딱 유치원생 시기예요. 마침 주의력과 전전두엽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와 맞물리죠.

아이가 유치원생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아빠가 거친 몸놀이 시간을 자주 가지시면 좋겠어요. 아직 그보다 어리다면 너무 경쟁적이거나 강도 높은 놀이는 하지 말고, 가볍고 즐겁게 적당한 도전을 주면서 아빠와의 몸놀이는 재미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꾸준히 심어 주세요.

질 높은 거친 몸놀이의 다섯 가지 조건

계속 '질 높은' 거친 몸놀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건 정확히 뭘까요. 호주에서 오랫동안 거친 몸놀이를 연구한 리처드 플레처 박사는 그 질을 측정하는 도구를 개발하면서 크게 다섯 가지 항목을 제시했어요.

첫째, 따뜻함이에요. 경쟁이 되더라도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정서가 바탕이어야 해요. 아이와 아빠 모두 웃음을 터뜨리는 일이 많고, 부정적인 감정이 잠깐 생겨도 금방 해소되고, 아빠가 적대적으로 대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거부하지 않고, 가끔은 그럴 수 있어도 아이가 울거나 화를 내며 놀이가 끝나는 일이 너무 잦지 않아야 해요.

둘째, 민감함이에요. 이건 거친 몸놀이만이 아니라 놀이와 양육의 질을 잴 때 전반적으로 보는 기준이죠. 아이의 필요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반응하고 조절하는 능력이에요. 아이가 너무 어려워하면 난이도를 낮춰 주고, 싫어하는 행동은 수정하고, 흥분이 지나치다 싶으면 진정할 기회를 주고, 놀이가 너무 늘어지면 규칙을 하나 넣어 긴장감을 만드는 식으로 끝까지 재미있게 끌고 가는 거예요.

셋째, 통제예요. 번역이 좀 어색한데 강함, 자기주장, 지시를 나타내는 말로 보시면 돼요. 일반적으로 좋은 양육자의 태도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죠. 거친 몸놀이에서는 어른이 아이 뜻대로 너무 따라가거나 맞춰 주는 것이 오히려 낮은 점수로 이어져요. 기본적으로 동물적이고 경쟁적인 놀이라, "네가 아빠를 쉽게 이길 수 있게 이렇게 해 줄게" 식으로는 도전 의식과 경쟁 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없거든요. "뛰어와서 아빠 넘어뜨려 봐. 못 하겠어? 그럼 지는 거지" 하는 약간 지배적인 말투와 신체 행위가 허용되는 놀이예요. 아이도 놀이 속에서 지배 욕구나 통제 욕구를 보이더라도 선을 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허용해 주는 게 좋아요. 서로 우위를 점하려는 둘이 경쟁하는 놀이니까요.

넷째, 승리와 패배예요. 아이에게 다 맞춰 줘서 아빠가 지기만 해서도, 지배적으로 이기기만 해서도 안 돼요. 아이가 신체 능력이 떨어지니 아빠는 적당한 핸디캡을 안고 전력을 다하지는 않되 너무 쉽지도 않게 조절해야 해요.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지면서 아이가 진심으로 이기고 싶어지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졌을 때의 좌절감을 다스리는 법을 연습하게 해 주는 것이 좋은 몸놀이 상대의 자질이에요.

다섯째, 즐거움이에요. 놀이가 모두에게 얼마나 즐거운지, 너무 심각하거나 진지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지를 봐요. 진짜 싸움이 되어 버리면 안 되겠죠. 경쟁하더라도 즐거운 정서가 유지되어야 하고, 그게 잘 안 된다면 놀이를 중단하면 돼요.

아빠와의 애착은 엄마와의 애착과 달라요

플레처 박사는 엄마와 아이의 애착 관계와 아빠와 아이의 애착 관계가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고, 이 다름이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한다고 했어요. 엄마가 나를 돌봐 주고 보호해 주는 사람이라면, 아빠는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세계를 탐색하도록 장려하는 사람으로 애착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봤죠. 아빠와의 거친 몸놀이 시간은 엄마가 평소에 해 주기 어려운 특별한 발달의 기회인지도 몰라요.

특히 딸만 있는 집이라면 아이와 거친 몸놀이를 하는 게 아직 어색한 아빠도 계실 텐데요. 양말 레슬링부터, 저녁에 침대나 매트 하나 깔아 놓고 한번 해 보세요. 아이와 관계가 더 돈독해지고 아이의 머리도 좋아지는 기회가 될 거예요. 더 크면 하기 어렵습니다.

정리해 보면

  • 거친 몸놀이는 온 힘을 다해 아빠와 겨루는, 승패가 있는 레슬링 같은 놀이예요.
  • 흥분 속에서 공격 수위를 스스로 조절하는 경험이 충동 억제와 전전두엽 발달로 이어져요.
  • 아빠와의 거친 몸놀이 질과 빈도가 높을수록 아이의 작업기억력이 높았다는 연구가 있어요.
  • 만 2세부터 가볍게 시작하고, 만 4~7세에 자주 하세요.
  • 따뜻하게, 아이 반응에 맞춰 조절하고, 도전을 걸고,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지며, 즐거움을 유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