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신 적 있나요? 긍정적이고 자존감이 높은, 건강하고 밝고 당당한 어른으로 자기 행복을 향해 거침없이 걸어 나갔으면 하는 마음은 모두의 바람이겠죠. 그래서 부모라면 꼭 알아 둬야 할 기본 지식인 자존감, 그리고 자존감을 만드는 성공 경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요. 자율성 지지 육아의 한 꼭지인 믿고 기다려 주기를 잘하려면 꼭 알고 가야 할 개념이거든요.

자존감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질까요

자존감은 뭘까요? 칭찬을 많이 해 주면, 친구가 많으면, 혼내지 않고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주면 높아질까요? 우리는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많이 하지만, 정작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런 지식은 심리학에서 구하는 게 좋아요. 세계적인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를 오래 연구하다 낙관적인 태도와 자존감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고 자존감도 깊이 연구했어요. 이 글의 많은 내용이 그의 책 『낙관적인 아이』에 실린 이야기예요.

자존감의 두 기둥, 잘하는 것과 좋은 기분

셀리그만에 따르면 자존감은 크게 두 축으로 이루어져요. 잘하는 것, 그리고 좋은 기분을 느끼는 것.

잘하는 것은 현실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능력에 관한 거예요.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은 이를 '살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극복할 수 있는 자기 능력에 자신감을 갖는 것'이라고 정의했어요. "이 시험은 어렵지만 열심히 하면 붙을 수 있을 거야" 같은 생각이죠.

두 번째 축인 좋은 기분은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느끼는 거예요. "나는 가치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어", "나는 사랑받아 마땅해" 같은 느낌이죠.

둘 중 어느 쪽이 그동안 들어 온 자존감 이야기와 비슷하게 느껴지시나요? 아마 두 번째일 거예요. 셀리그만은 미국 사회가 1960년대 이후 좋은 기분에만 지나치게 방점을 찍은 잘못된 자존감 높이기 운동에 빠져 있었다고 지적해요. "너는 너대로 괜찮다", "너 자신을 사랑해라" 같은 메시지가 끊임없이 재생산됐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우울하고 자존감이 낮아요.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면 이런 메시지를 만났을 때 힘이 나고 자존감이 솟아나던가요? 아마 그렇지 않을 거예요.

듣기 좋은 말만으로는 자존감이 서지 않아요

문제는 인지부조화에 있어요. 접하는 메시지나 가치가 서로 충돌할 때 느끼는 불편함을 말하는 심리학 용어죠. 자존감이 잘 서려면 잘하는 것과 좋은 기분, 두 기둥이 모두 받쳐 줘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잘하는 것은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고 좋은 기분만, 쉽게 말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거죠.

사람은 경험을 거치며 자기 자신을 계속 판단해요. 인간관계에서 계속 실패하고 사람들이 나를 안 좋아한다는 게 느껴지면 '나는 인간관계를 잘 만들어 가는 능력이 부족해'라는 생각이 자리 잡는데, 이 생각과 "너는 너대로 괜찮아"라는 메시지는 양립하기 어려워요.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는 거죠. 그래서 좋은 기분만큼이나 잘하는 것의 기둥을 바로 세워야 해요. 뭘 고쳐야 할지 고민하고 성장해서 실제로 관계가 좋아지는 성공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어요.

그러면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려고 기분 좋은 말만 해 줄 필요는 없겠죠. 물론 칭찬은 육아에 유익한 도구예요. 좋은 행동을 알아차리고 "잘했어"라고 칭찬해 주는 건 훈육만큼이나 강력하니까요. 하지만 칭찬의 목적은 거기까지예요. 아이가 뭔가를 잘 못해서 축 처져 있을 때 "엄마 눈에는 100점인데" 하고 아무리 칭찬해도 자존감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아요. 중요한 건 장기적으로 그걸 정말 잘할 수 있게, 그래서 다음번에는 성공해서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높아지도록 옆에서 돕는 거예요. 앞선 글에서 말씀드린 스캐폴딩이 여기서 중요해지죠.

자존감은 성공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예요

셀리그만이 지적하는 또 하나의 오해는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실패한다는 생각이에요. 하지만 낮은 자존감이 성공이나 실패를 초래한다는 근거는 없어요. 오히려 세상의 수많은 성공과 실패가 자존감을 형성하는 원인이죠. 자존감은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예요. 잘하는 것의 결과로 좋은 기분이 따라오고 그 결과 자존감이 굳건해지니, 출발점은 잘하는 것이에요.

셀리그만은 이렇게 말해요. 자존감은 뭔가를 잘 해냈을 때 그 부산물로 생기는 감정이다. 먼저 성공하지 않고 좋은 기분을 갖는 법만 배우려 한다면 자존감을 갖는 목적과 의미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존감이 결과라면 직접 가르치기는 매우 힘들지만, 잘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면 직접 가르칠 수 없는 좋은 기분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자존감이 탄탄한 아이를 원한다면 자존감 높이기가 아니라 아이의 성공 경험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작은 성공 경험은 눈덩이처럼 굴러가요

저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성공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게 쉽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성공 경험은 눈덩이처럼 알아서 굴러가며 커지거든요. 어릴 때 성공 경험으로 '나는 잘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갖게 된 아이는 조금 더 어려운 과제에도 기꺼이 도전해요.

많은 인지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심지어 아주 어린 아기도, 뭔가에 도전할지 결정할 때 꽤 합리적인 과정을 거친다고 해요. 내가 판단한 내 능력치가 80인데 과제의 난이도가 100으로 보이면 해 봤자 시간 낭비니까 안 하는 거예요. 도전하려면 내가 판단하는 내 능력치가 적어도 100은 넘어야 하죠. 기꺼이 도전하는 아이가 성공 경험을 쌓고, 그 결과 '나는 잘해'라는 마음이 커지고, 다음의 어려운 과제에도 도전하는 선순환이 일어나요. 반대로 '나는 잘 못해'라는 생각이 있으면 어려운 과제에 쉽사리 도전하지 않게 되고, 성공 경험을 만들 기회 자체가 사라져요.

수포자라는 말 있잖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 수학에 애를 먹다가 노력으로 잘하게 된 경우인데, 학원을 안 다녀서 제 페이스에 맞춰 쉬운 문제집으로 성공 경험을 조금씩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학원은 진도를 빨리 빼고 어려운 문제집으로 무리하게 나가는 경향이 있어서, 몰라서 숙제를 못 하면 답지를 베끼는 식으로 실패 경험만 쌓이기 쉬워요. 그래서 대학생 때 과외를 하면서도 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를 주고 조금 어려운 건 같이 해결하며 천천히 자신감을 심어 줬어요. "이제 이거 풀 줄 아네" 한마디에도 굉장히 뿌듯해하고 다음 것도 풀고 싶어 했고요.

이야기가 좀 샜지만, 어릴 때 작은 성공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러다 보면 자존감이 생기고, 아이는 저절로 더 어려운 과제에 도전해 나가면서 알아서 성공 경험을 만들고 알아서 자존감을 길러요.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 성공 경험을 만들어요

그러면 작은 성공 경험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아이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러 과제에 부모가 직접 개입하기보다 일단 혼자 해 볼 수 있게 지켜봐 주는 태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몬테소리 육아를 공부하면서 이런 태도의 중요성을 알게 됐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습관처럼 몸에 뱄어요. 흘릴 거, 손에 묻을 거, 넘어질 거, 잘 못할 게 눈에 보여도 일단 믿고 기다려 주는 거죠. 옷이 더러워지거나 다칠까 봐 걱정되실 수 있지만, 믿고 기다려 주지 않는 건 아이에게서 성공 경험의 기회를 빼앗는 거라는 생각이 있으면 예전처럼 섣불리 개입하지 않게 될 거예요.

실패했을 때는 이렇게 도와주세요

성공 경험을 강조했지만 실패 경험도 당연히 필요해요. 셀리그만은 이렇게 말해요. 취학 전 아동은 숙달된 행동으로 낙관적인 사고의 기초를 쌓는다. 부모가 적절한 도움을 주며 아이 스스로 과제를 수행하게 하면, 아이는 장애와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속 해내려는 습관을 갖게 된다. 학교에 들어가면 숙달된 행동보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낙관주의자가 될지를 결정짓는다. 현실을 부정해서 아이의 기분을 풀어 주려 하지 않고, 대신 아이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알려 주며 인내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실패를 정확하게, 하지만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법도 가르친다.

특히 만 5~6세쯤 되면 실패 경험을 다루는 방법을 함께 가르쳐 주면 좋다는 거죠. 그런데 잘못된 자존감 운동 때문에 어떤 부모는 아이가 실패하고 축 처져 있을 때 기분을 풀어 주는 데 급급해서 대처법을 가르쳐 주지 못하기도 해요.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들이 자기만 빼고 생일파티를 했다면, 기분을 좋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그 아이들 정말 나쁜 아이들이네. 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하고 반응해요. 아이가 이렇게 실패를 부정하거나 외부 탓으로만 돌린다면 자존감의 두 축 중 잘하는 것을 튼튼하게 만들 수 없어서, 실패는 계속되고 결국 자존감은 무너지겠죠.

올바른 대처는 이런 거예요. "그 친구들이 너만 빼고 놀아서 속상했겠구나. 왜 초대하고 싶지 않았는지 한 명한테 물어보면 어떨까? 깜빡했을 수도 있고, 네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을 수도 있잖아. 어떤 점을 고치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 실패를 함께 객관적으로 보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 사고방식을 가르쳐 주는 거죠.

더 어린 아이에게도 원칙은 비슷해요. 부모가 섣불리 개입하지 않으면 아이는 스스로 해 보면서 성공도 하지만 때로 작은 실패도 경험해요. 아이가 좌절감을 느낀다면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공감해 주고, 과제의 난이도를 낮춰 주면서 다시, 혹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 보도록 격려해 주세요. "잘 안돼서 좌절스러웠구나. 이런 방식으로 다시 해 볼까?" 아이가 다시 안 해 보려 해도 조급하게 강요할 필요 없어요. 소근육이 섬세해지고 몸을 다루는 능력과 주의력이 좋아지면서 언젠가는 그 과제에 성공하거든요.

그럴 때 한마디 해 주시면 더 좋아요. "예전에는 이거 잘 못했는데 연습하니까 잘하게 됐네." 저는 다미에게 이 말을 많이 해 줘요. 지금 못해도 노력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성장 마인드셋에 물을 주고, 노력해서 잘하게 됐다는 큰 그림의 성공 경험을 실감하도록 돕는 거죠. 그러면 처음에 잘 안돼도 끈기 있게 노력해 볼 의지가 생기고, 지금 혼자서 다 못해도 좌절하지 않게 돼요. 연습해서 더 잘하게 됐던 과거의 경험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거든요.

아이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실패를 겪어요. 부모가 미리 개입해서 막아 주고 보호해 줄 필요는 없어요. 실패하더라도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지나치게 타격받지 않는 능력을 길러 주는 데 집중하세요. 어릴 때부터 꾸준한 성공 경험으로 자존감을 키우고 실패를 잘 다루는 법을 부모의 도움으로 익힌다면, 아이는 내면이 튼튼한, 무너지지 않는 아이로 자랄 거예요.

정리해 보면

  • 자존감은 잘하는 것과 좋은 기분이라는 두 기둥으로 서고, 듣기 좋은 말만으로는 세워지지 않아요.
  • 자존감은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예요. 출발점은 잘하는 것이에요.
  • 어릴 때의 작은 성공 경험이 '나는 잘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만들고 다음 도전으로 이어져요.
  • 흘리고 넘어질 게 보여도 섣불리 개입하지 말고 혼자 해 보게 기다려 주세요.
  • 실패했을 때는 감정에 공감하되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함께 원인을 보고 다시 시도하게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