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3.06 · 18:06
불편하고 두려운 게 많은 아이, 부정적 정서성 기질 이야기
불편감과 두려움은 타고나는 기질이에요. 두려움은 오히려 조절과 사회성을 돕고, 훈육은 두려움 수준에 맞춰야 해요.
바람도 적당히 불고 날씨도 좋은 날, 아이와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조약돌을 줍고, 잔디밭에서 간식을 먹다가 유모차에서 낮잠에 빠진 아이 옆에서 한가롭게 책을 읽는 하루. 하지만 육아하는 부모의 주말은 결코 이렇게 흘러가지 않죠. 하루 중 어느 지점에선가 아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그걸 표현해요. 원하는 걸 제지당해 좌절해서 울고, 누군가 때문에 불편해하고, 무서운 상황에 놀라고, 그냥 졸리고 배고파서 짜증을 내기도 하죠. 울고 떼쓰고 소리 지르고 삐지는 아이를 달래고 진정시키다 보면 완벽했어야 할 하루는 금세 힘들어져요.
타고나고, 오래가는 부정적 정서성
기질의 두 번째 큰 항목은 부정적 정서성이에요. 아이가 일상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얼마나 강하게, 얼마나 자주 느끼느냐를 나타내죠. 이건 유전적으로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요. 신생아 때부터 같은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우는 아이와 무덤덤하게 넘기는 아이가 있고, 이 개인차는 자라서도,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져요. 부정적 정서성 자체는 생애 주기 동안 잘 변하지 않는 기질로 알려져 있거든요.
중요한 건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되느냐예요. 어른은 하루에 부정적 정서를 많이 느끼더라도 전두엽이 발달해 있어서 조절이 되죠. 짜증나고 불편하고 화가 나도 날뛰거나 남을 힘들게 하지는 않아요. 반면 아이들은 전두엽이 아직 미숙해서 부정적 정서가 그대로 밖으로 드러나고,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는 부모가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요. 육아가 유난히 힘들고 지친다면 아이의 부정적 정서성이 강해서인 경우가 많아요. 부정적 정서성의 하위 요인 가운데 여기서는 불편감과 두려움, 두 가지를 다룰게요.
불편감: 배고픈 것도 졸린 것도 아닌데 자꾸 우는 아이
불편감은 여러 감각 자극에 쉽게 불편함을 느끼는 기질이에요. 아직 말을 못 하는 아기가 배고픈 것도, 졸린 것도, 기저귀가 젖은 것도 아닌데 자꾸 운다면 일상 속 어떤 자극이 아이를 불편하게 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번쩍거리는 시각 자극이 부담스러운 아이도 있고, 너무 크거나 높은 소리가 괴로운 아이도 있고, 거친 촉감이나 낯선 냄새를 견디기 힘든 아이도 있거든요. 특히 부모가 불편감 기질이 높지 않다면 이런 불편함을 아예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별거 아닌 걸로 치부하고 그냥 유난스럽다고만 생각하기 쉬워요.
한 연구에서는 두통을 자주 호소하는 유치원생 아이들이 기질적으로 불편감 수준이 높았고, 이 두통과 불편감이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문제행동도 조금 더 많이 나타났다고 보고했어요. 지나친 감각 자극이 스트레스가 되어 두통을 일으키는 게 아닐까 싶어요. 문제행동이 늘어나는 데는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기질 탓에 절제력이 부족해지는 면도 있겠지만, 아이가 고통이나 불편감을 호소할 때 어른이 가볍게 넘겨서 공감받지 못하고 수용받지 못한 경험도 한몫할 거예요. 아이의 반항적이고 투쟁적인 행동 뒤에는 종종 연결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자리 잡고 있거든요.
돌이켜 보면 어릴 때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며 자주 호소하는 아이들이 있었죠. 잘 반응해 주는 부모님도 있었지만 꾀병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님도 많았던 것 같아요. 까슬까슬한 옷을 불편해하면 사 주면서도 "유난 떤다"고 말해 버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떤 감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선천적인 정도가 사람마다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좋은 대응은 아니에요. 그렇게 반응한다고 불편감이 근본적으로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아이는 불편함을 숨기게 되고 부모와의 관계만 나빠질 뿐이죠.
불편감이 높은 아이를 키울 때
가급적 그 기질을 존중하고, 일상에서 불편감이 지나쳐지지 않도록 아이 입장에서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면 좋겠어요. 소리에 민감한 아이라면 소리가 큰 영화관, 사람이 몰리는 축제나 주말 마트 같은 곳은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있어요.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간 놀이동산에서 아이가 한구석 풀밭에서만 놀고 싶어 하더라도 그 기질과 선호를 존중해 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좋겠죠. '애들이 보통 좋아하는 곳'보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곳을 우선순위에 두고, 일정 사이사이에 자극이 적은 시간을 넣고, 자극이 심한 곳에 가게 되면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스케줄을 짜는 것도 방법이에요.
물론 그런 환경에 아예 데려가지 말라는 말은 아니에요. 다만 아이가 어릴수록 자기 환경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적으니 부모가 고려해서 골라 줄 필요가 있다는 거죠. 아이는 자라면서 불편감을 포함한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힘이 자연스럽게 커지고, 불편감을 조금 감수하면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점차 깨달아요. 사람이 많아 불편할 수 있는 친구 생일 파티에 '그래도 나도 끼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가겠다고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죠.
그렇게 자발적으로 선택하려면 불편감이 과도해질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부모와 미리 많이 이야기하고 연습해 볼 기회가 있어야 해요. 파티에 가더라도 사람이 적은 구석을 찾아 잠시 조용한 음악을 듣는다거나, 바깥에 나가 산책을 하고 돌아온다거나 하는 자기만의 대응 방법을 찾고 실행하려면, 비슷한 전략을 부모와 둘이 어딘가 다닐 때부터 자주 써 봤어야 하거든요. 이런 대응 기제마저 없으면 불편한 장소는 애초에 무조건 꺼리게 되고, 점점 더 불편함을 다루기 어려운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가게 돼요.
두려움은 '나를 해칠 수도 있다'는 예측이에요
앞선 글에서 외향성은 접근 성향이고 그 반대는 회피 성향이라고 말씀드렸죠. 부정적 정서성 중 두려움 수준이 높은 아이들은 회피 성향이 강해요. 무언가가 나를 해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들보다 조금 더 높게 예측하는 거예요. 두려움은 생애 아주 초반보다 6~12개월 사이, 돌이 가까워지면서 더 발달하기 시작한다고 해요. 이 무렵 분리불안도 나타나고, 뭐든 거침없이 손을 뻗던 아기가 낯설거나 잘 모르는 물건 앞에서 주춤하며 천천히 손을 뻗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죠.
이 예측은 경험으로 바뀌어요. 뱀이 무서운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오랫동안 같이 있어도 나를 해치려는 움직임이 없다면 결국 '별로 위협적이지 않네'라고 생각하게 되겠죠. 그런데 어린아이는 세상 경험의 누적치가 부족해서, 타고난 두려움 수준이 높다면 어른이 보기에 별것 아닌 세상 모든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남자 어른이 위험하지 않다는 데이터를 아직 충분히 모으지 못했으니, 남자 어른이 다가오면 기본 장착된 '위험해' 모드가 발동해서 울어 버리는 거예요.
두려움이 있는 아이가 사회성이 더 좋은 이유
아이가 두려움이 높으면 이렇게 여리고 겁이 많아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걱정이 되실 거예요. 그런데 두려운 기질은 사회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어요. 두려움이 전혀 없는 아이보다 어느 정도 있는 아이가 장기적으로 더 높은 사회성을 보인다고 보고되고 있거든요.
아동의 사회성이 가정에서 어떻게 발달하는지 수십 년간 연구해 온 발달심리학자 그라지나 코찬스카 교수는 여러 연구를 거쳐 이런 통찰을 내놓았어요. 아이가 충동을 억제하고 규칙대로, 즉 사회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동력원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가 두려움이고 두 번째가 의도적 통제라는 거예요. 새 장난감을 보여 주면 바로 만지고 싶어서 손을 뻗는 아이와, 안전한지 확신이 없어 주저하다 천천히 만지는 아이가 있죠. 두 번째 아이는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두려움이라는 조절 기제를 가지고 태어난 셈이에요. 욕구가 올라와도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 덕분에 자연스럽게 행동을 조절하게 되는 거죠. 영아기에 두려움 수준이 높았던 아이들은 7살 때 충동성·활동성·공격성이 더 낮았고 충동 억제 같은 조절 능력은 더 높았다는 보고가 있어요. 그 결과 사회성도 좋았고, 커닝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하지 않는 등 도덕성도 더 발휘했고요.
두려움이 높은 아이들은 처벌의 영향을 받는 정도, 즉 처벌 민감도도 높은 편이에요. 학생 때 대장 노릇하는 아이가 혼날 만한 행동을 하자고 선동하면 꼭 옆에서 "그러다 들키면 큰일 나, 선생님한테 혼나"라고 말리는 친구가 있었죠. 같은 상황에서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더 많이 느끼는 아이예요. 혼자였다면 그런 행동은 애초에 하지 않았을 거고요.
물론 두려움만이 유일한 조절 기제는 아니에요. 두 번째 기제인 의도적 통제는 의도적으로 주의를 조절해서 충동이나 행동을 목표와 규칙에 맞게 다스리는 능력이에요. 두려움 수준이 낮은 아이는 의도적 통제가 유일한 조절 기제라서 이게 잘 발달하는 게 아주 중요해지죠. 그런데 의도적 통제는 천천히 발달하는 능력이에요. 그래서 어린 나이에 조절을 잘하느냐 못하느냐는 욕구 수준을 결정하는 외향성과 두려움 수준, 이 두 가지로 주로 정해지고, 나이가 들면 의도적 통제가 조절 능력의 중심을 맡게 돼요.
두려움이 높은 아이에게는 부드러운 훈육을
두려움이 높은 아이는 자기조절에 강점이 있지만 부모가 주의할 점도 있어요. 어릴 때 두려움 수준이 높았던 아이들은 7살 때 죄책감과 수치심을 더 느끼기 쉬운 경향을 보였다고 해요. 이 두 감정은 사회화에 아주 중요한 감정이에요. 유치원생이 가게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해 볼게요. 죄책감과 수치심을 별로 느끼지 않는 아이는 혼나도 별생각이 없고, 다음엔 안 들켜야지 할 수도 있죠.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낄 수 있어야 유혹에 흔들려 훔쳤더라도 스스로 돌려놓거나,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다음번 충동을 참아 낼 수 있어요.
문제는 이 감정이 과도해지는 것도 좋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한 게 아닌데도 죄책감과 수치심을 쉽게 느껴 스스로를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너무 높은 기대를 자신에게 들이대며 스트레스를 받고, 그 결과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을 놓치기도 하죠. 그래서 코찬스카 교수와 로스바트 교수는 두려움이 높은 아이에게 자기 통제를 너무 심하게 가르치거나 훈육과 규칙을 과도하게 강요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경고해요. 부모가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들려주는 목소리는 자라면서 아이 내면의 목소리로 자리 잡는데, 두려움이 높은 아이는 그 목소리가 너무 커질 수 있거든요.
이 아이들은 애초에 자기조절에 타고난 이점이 있고 죄책감과 수치심에는 더 취약하니, 조금 더 부드럽게 훈육하고,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자극하는 말은 삼가고, 규칙이 왜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게 좋아요. "네가 그렇게 하니까 엄마가 너무 슬퍼", "그러면 친구들이 싫어해", "그렇게 하면 나쁜 아이야" 같은 말은 좋지 않아요. 뭔가를 하기도 전에 엄마가 싫어하면, 슬퍼하면, 미움받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며 사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으니까요. 이유를 논리적으로 알려 주기 어려운 더 어린 아이라면 무섭거나 화난 표정, 감정을 자극하는 말 없이 "안 돼, 대신 이렇게 하자" 정도로 한계 설정을 반복해 주세요.
두려움이 낮은 아이에게는 관계가 먼저예요
두려움은 처벌 민감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요. 처벌 민감도가 많이 낮은 아이는 어릴 때, 그리고 커서도 의도적 통제가 잘 발달하지 않으면 문제행동이 나타나기 쉽고 부모도 힘들어요. 보통 아이들은 부모가 그만하라고 하면 100%는 아니어도 네 번 중 세 번은 그만두는데, 처벌 민감도가 아주 낮고 거기에 보상 민감도까지 높아서 그 행동의 결과에서 큰 만족을 얻는 아이는 계속해요. 혼나는 게 별 의미가 없죠. 부모는 자괴감이 들고 화도 많이 나겠지만, 이건 육아 스킬의 문제라기보다 기질이 크게 결정하는 문제라는 점을 먼저 아셔야 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코찬스카 교수는 두려움과 처벌 민감도가 낮은 아이에게 부드러운 훈육은 내면에 불편감을 만들지 않아서 효과가 적지만, 그렇다고 힘으로 강하게 훈육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했어요. 한 행동에 비해 더 강하게 처벌받으면 억울함과 분노가 생기고, 훈육 상황에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끼어들면 효과가 많이 떨어지거든요. 아이는 자기 행동을 방어하려고 외부 요인을 끌어다 변명을 늘어놓게 되고요.
이런 아이에게는 훈육의 강도보다 부모와의 관계를 잘 가져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코찬스카 교수는 말해요. 데이터를 보니 이 아이들에게는 반응육아와 안정 애착이 규칙을 내면화하고 바람직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게 하는 데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중요한 변수였다고 해요. 긍정적인 관계가 먼저 있으면, 이 아이들은 혼날까 봐 두려워서 행동하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부모의 말을 더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부모의 칭찬 같은 보상이 개인적으로 더 값지게 느껴져서 더 바람직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게 돼요. 뻔하게 들리겠지만 관계 기반의 긍정 훈육, 가장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이 훈육 방식이 이런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거죠.
정리해 보면
- 부정적 정서성은 타고나고 오래가는 기질이라, 관건은 없애는 게 아니라 다스리는 힘을 기르는 거예요.
- 이유 없이 자주 우는 아기라면 빛·소리·촉감·냄새 같은 감각 자극이 불편하지 않은지 살펴보세요.
- 불편감이 높은 아이는 유난스럽다고 넘기지 말고 환경을 골라 주고, 불편할 때 쓸 대응 방법을 함께 연습하세요.
- 두려움은 충동을 억눌러 주는 타고난 조절 기제라 사회성에 오히려 도움이 돼요.
- 두려움이 높은 아이는 죄책감·수치심을 자극하지 않는 부드러운 훈육으로, 두려움이 낮은 아이는 강한 처벌보다 좋은 관계로 이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