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마트에 갔는데 갖고 싶은 물건 앞에 서서 꼼짝을 안 해요. "우리 그거 안 살 거야, 이제 가자"고 아무리 말해도 따라와 주지 않아서, "엄마 간다"는 협박과 "이리 와"라는 지시, "젤리 줄게, 가자"라는 보상을 총동원해 힘들게 데려왔죠. 유아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비일비재한 일이에요. 아이가 순순히 협조해 주지 않는 에피소드가 늘어날수록 육아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곤해져요.

아이의 협조를 부드럽게 이끌어내는 것은 자율성 지지 육아의 중요한 꼭지예요. 앞선 글에서 자율성 지지 육아란 부모가 무조건 이기기만 하는 것도, 지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 윈윈 상황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영아기에는 말이 안 통해서 윈윈이 쉽지 않으니 부모가 좀 더 져 주고 탐색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고, 소통이 되기 시작하는 유아기부터는 아이와 윈윈하며 협조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가시면 좋아요.

협조 이끌어내기의 반대는 지시예요

어떤 개념은 반대 개념을 보면 더 잘 이해돼요. 자율성 지지 육아의 반대가 통제하는 육아이듯, 협조 이끌어내기의 반대편에 있는 대표적인 것이 지시예요. 협조를 이끌어낸다는 건 아이가 어느 정도 마음이 움직이고 납득해서 "내가 선택해서 하는 거야"라고 느끼며 자발적으로 협조하도록 돕는 거예요. 지시는 그런 자율성의 여지 없이 부모의 권위로 따르게 통제하는 거고요.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한국 부모는 아이에 대한 애정은 높지만 통제도 많이 하는 육아 방식이 가장 흔하다고 해요. 문화적인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말 잘 듣고 얌전하고 고분고분한, 쉽게 통제되는 아이를 우리는 늘 착한 아이라고 불러 왔죠. 학교 가서 선생님 말 잘 듣고 오라는 얘기도 하고요. 또 아주 어린 아기는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정신적 능력이 없다고 믿기도 해요. 몇 살 전에는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니 부모가 다 결정하고 지시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자율성을 주지 않고 키우다가 몇 살이 되어 풀어 주면 아이가 갑자기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까요? 아니에요. 지시받는 데 익숙하게 자란 아이는 커서도 누가 옆에서 지시해 줘야 해요. 부모가 평생 수발을 다 들어 주다가 19살에 그만둔다고 아이가 갑자기 독립적인 개체가 되지는 않잖아요.

지시받는 뇌는 발달하지 않아요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두 권의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뇌과학자 윌리엄 스틱스러드 박사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율적으로 결정할 기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요. 그 과정에서 뇌가 발달에 필요한 적절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에요. 스트레스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에요. 극복 가능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성장을 돕는 방향으로 작용하거든요. 부모가 "추우니까 오늘 이거 입어"라고 지시하면 아이의 뇌에서는 어떤 발달도 일어나지 않아요. 하지만 스스로 고르게 하면 내가 입고 싶은 것, 어제 날씨, 지난번 추울 때 외투를 안 입었던 기억 같은 머릿속 정보를 조합해 선택하는 과정에서 전두엽이 발달하고, 선택에 따른 책임도 느끼게 돼요. 팔 근육을 키우려면 그 근육을 계속 써야 하듯,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어른으로 자라려면 어릴 때부터 그 뇌 부위를 쓸 수 있게 부모가 환경을 계속 만들어 줘야 해요.

두 번째는 데이나 서스킨드 교수의 『부모의 말, 아이의 뇌』예요. 요지를 옮기면 이래요. 아이에게 "이제 장난감 치워"라고 말하는 것과 "장난감 다 가지고 놀았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묻는 것은 달라요. 첫 번째는 의문 없이 이행해야 하는 윗사람의 명령이고, 두 번째는 아이의 싹트는 자주성을 키워 주며 자기조절과 실행기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과학으로 증명됐어요. 지시하기보다 차분하게 제한하는 엄마가 키운 돌쟁이 아기는 세 살이 됐을 때 다른 아이들보다 눈에 띄게 강한 실행기능과 자기조절 능력을 보였고, 부모가 자율성을 보장하고 규칙을 왜 지켜야 하는지 설명하고 훈육할 때 감정 섞이지 않은 이유를 제시하면 아이의 자기조절 능력이 강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여럿이에요. 이런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문제를 찬찬히 생각할 확률이 높았어요. 지시와 짧은 명령은 두뇌 발달을 촉진하는 데 가장 효과 없는 방법이에요. 말로 대답할 필요가 전혀 없으니까요. 그 순간에는 통하는 것처럼 보여요. "그만해" 하고 위엄 있게 말하면 아이는 실제로 멈추고, "모자 써" 하면 정말 모자를 쓰죠. 하지만 그 말로 제지되거나 성취된 것은 그 순간의 행동일 뿐, 지속되는 습관은 아니에요.

고분고분하고 지시에 잘 따르는 사람이 성공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잖아요. 우리 아이를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그 결과도 책임지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주 어릴 때부터 자율성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답이 정해진 지시를 내리는 건 아이를 돕는 게 아니라 자율성을 발휘하고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거예요.

지시가 만드는 협조는 그 순간뿐이에요

학생 때 엄마가 "그만 놀고 숙제해" 하면 그 순간에는 방에 들어가 숙제를 하죠. 그런데 부모가 말을 안 하거나, 말만 해 놓고 방까지 따라 들어오지 않으면 어떤가요. 숙제를 안 해요. 이게 지시의 문제예요. 부모가 말하고 지켜보는 순간에만 억지로 하고, 그 행동이 내면화되어 스스로 계속하는 습관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습관이 됐다면 "숙제해, 공부해" 하는 집 아이들은 다 공부를 열심히 했겠죠.

이걸 이해하려면 두 종류의 협조를 알아야 해요. 아동발달 문헌에서는 아이가 타인의 말에 따르는 협조를 둘로 나눠요. 자발적인 협조는 부모의 말을 듣기는 하는데 스스로 선택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는 거예요. 상황적인 협조는 부모가 하라고 하니까 그 상황에서 그냥 따르는 거고요.

아동 발달 학술지에 실린 한 연구에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장난감을 정리하라고 시키는 상황처럼 협조를 이끌어내야 하는 여러 상황을 녹화해 분석한 뒤, 자발적인 협조를 주로 하는 아이들과 상황적인 협조를 주로 하는 아이들을 비교했어요.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아이들은 부모가 도중에 반복해서 지시하지 않아도 끝까지 스스로 정리했고, 과정이 긍정적이고 순조로웠으며 거부하는 빈도가 적었어요. 반면 상황적으로 협조하는 아이들은 하기는 하는데 도중에 계속 딴짓을 해서 부모가 반복해서 지시해야 했고, 거부 같은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동반됐으며, 결국 부모가 보상이나 협박 같은 좋지 않은 도구에 기대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이 연구는 장기 추적 연구였는데, 유아기에 자발적인 협조를 잘했던 아이들이 유치원생이 됐을 때 규칙 내재화가 더 잘 되어 있었어요. 장난감을 왜 정리해야 하는지 스스로 더 잘 이해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지고 놀던 것을 정리하게 됐다는 거죠. 상황적인 협조를 주로 했던 아이들은 어른이 시키면 하지만 내재화까지는 나타나지 않았고요.

또 몬트리올 대학의 한 심리학자는 만 2세에서 3.5세 사이 아이들의 자발적 협조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했어요. 자율성을 지지하는 부모의 아이들은 자발적인 협조를 점점 더 많이 하고 규칙 내재화도 잘 된 반면, 주로 아이를 통제하는 부모의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협조하는 에피소드가 점점 줄었어요.

아이는 누군가의 통제나 명령을 받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기꺼이 행동할 때 그 행동 뒤에 있는 규칙과 규범을 진정으로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요. 부모가 지시해서 숙제하는 아이는 그 순간에만 하고, 지시가 너무 많아지면 억압된 자율성의 욕망이 터져 나와 머리가 좀 커지면 반항과 거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돼요. 반면 부모가 설득했든, 이유를 잘 설명했든,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든, 칭찬받고 싶어서든, 자기가 선택해서 숙제를 한 아이에게는 내재화가 일어나요. "이제 숙제할 시간이네, 자기 전에 해야지" 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거죠. 물론 이런 이상적인 모습이 쉽고 간단하게, 마법같이 나타나는 건 절대 아니에요. 하기 싫어하는 것에 내적 동기를 만들어 주는 건 길고 긴 프로젝트예요. 하지만 조금 힘들더라도 아이를 납득시켜 가며 자발적인 협조를 얻으면서 가면 아이는 천천히 규칙을 내면화하고 자기조절력을 키우며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요. 상황적인 협조만 얻어내는 데 그치면 성장은 일어나지 않고 매일 아이와 부딪히며 지시해야 하는 빈도만 높아질 뿐이에요.

협조를 잘하는 아이의 두 가지 조건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드실 수 있어요. 한발 물러서고, 설득하고, 이유를 설명해서 자발적인 협조의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하는데도 아이가 너무 안 따라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어떤 아이들이 협조를 잘하는지 연구한 논문들을 살펴봤더니, 크게 두 가지 요소를 뽑아낼 수 있었어요.

첫째, 부모와의 관계가 좋아야 해요. 여러 논문이 아이가 부모에게 협조를 잘하려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좋은 관계가 먼저라고 밝히고 있었어요. 부모가 좋으니까, 부모도 내 말을 기꺼이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나도 부모의 말을 기꺼이 들어주고 싶은 거예요. 앞선 글에서 말씀드린, 아이와 투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협력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그러니 아이의 협조성이 너무 떨어진다 싶을 때 반항하고 협조하지 않는 행동을 어떻게 수정할지만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 쪽에서 접근하는 게 좋을 수 있어요. 훈육보다 관계가 먼저예요.

둘째, 자기조절력이 갖춰져야 해요. 부모의 말에 기꺼이 따르며 자기 욕구를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건 자기 욕구를 조절할 능력이 된다는 뜻이에요. 좋은 관계가 협조의 동기라면 자기조절력은 협조의 도구예요. 부모가 좋아서 아무리 말을 듣고 싶어도 내 욕구를 누를 수 없다면 실제 협조까지 이어지기는 어렵죠. 애리조나 주립대의 저명한 아동심리학자 낸시 아이젠버그 교수는 협조성은 자기조절력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하면서, 여기에는 기질적인 요소도 상당히 크다고 지적해요. 자기조절 능력을 결정하는 의도적 통제는 타고나는 부분이 상당하거든요. 하지만 동시에 생애 첫 4년간 크게 발전하는 능력이고, 특히 만 2세 이후에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아이가 아직 어리다면 섣부르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러니 아이가 협조가 잘 안 된다면 관계를 좋게 가져가는 방향으로 꾸준히 노력하는 게 한 축이에요. 자기조절력은 어느 정도 올라와야 하는데, 우리 아이가 아직 너무 어리거나 기질적으로 그 부분이 부족해서 힘들 수 있겠다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어요. 좋은 관계와 자기조절력은 협조를 잘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부모가 협조를 잘 이끌어내는 경험이 많을수록 관계도 좋아지고 자기조절력도 길러져요. 양방향 관계인 거죠. 협조를 잘 이끌어내는 자율성 지지 육아를 하면 할수록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육아가 점점 수월해져요. 실제로 41개 연구를 메타분석한 한 논문은 통제하지 않고 아이의 협조를 부드럽게 이끌어내는 자율성 지지 육아가 높은 자기조절력과 협조성으로 이어진다고 결론 내리고 있었어요. 잠깐은 쉽지만 결국 어려워지는 통제하는 육아의 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선순환을 그리며 부모도 아이도 행복해지는 길을 걸으셨으면 좋겠어요.

정리해 보면

  • 지시로 얻는 협조는 부모가 지켜보는 순간뿐이고, 규칙이 아이 것이 되지 않아요.
  • 스스로 선택하는 경험이 쌓여야 전두엽이 발달하고 규칙을 내면화해요.
  • 협조가 안 될 때는 행동을 고칠 방법보다 관계를 좋게 만들 방법을 먼저 찾으세요.
  • 자기조절력은 타고나는 부분이 크지만 만 2세 이후 눈에 띄게 자라니 어린아이라면 섣불리 걱정하지 마세요.
  • 협조를 잘 이끌어낼수록 관계와 자기조절력이 함께 자라는 선순환이 시작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