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남편이 "오늘 엄마가 착해서 고맙다, 다미는 좀 나빴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다미는 울음을 터뜨리더니 "엄마가 1등이고 아빠가 2등이고 다미가 꼴등이야"라고 했어요. 그 일을 겪으며 아이가, 그리고 부모가 '가끔은 나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다미의 반응, 그리고 그냥 놔둔 이유

다미는 평소 1등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자기가 꼴등이라고 하니 몹시 슬퍼했어요. 저희는 "다미가 잘하고 싶은데 꼴등을 해서 슬펐구나. 어제는 잘했는데 방금은 좀 못했나 봐, 내일은 또 잘할 수 있겠다"라고 말해 줬지만 다미는 계속 시무룩한 채로 "아니야, 다미가 꼴등이야, 다미는 1등 아니야"라고 했어요. 그 자리에서 생각을 바로잡으려 하거나 지나치게 설득하지 않고 "아, 그랬구나, 그렇게 느꼈구나" 하고 그냥 놔뒀어요. 며칠이 지나자 다미는 다시 1등을 좋아하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왔고, 그때 일을 다시 꺼내지도 않더라고요.

좋은 부모도 나쁜 부모도, 결국 한 사람이에요

최근 책 <초등심리사전>을 읽다가 이 일화가 떠오른 챕터가 있었어요. '통합'이라는 개념인데, 아이가 상냥하게 대해 주는 부모도 화를 내는 부모도, 즉 좋은 부모도 나쁜 부모도 한 사람의 부모로 통합해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어요. 100% 화내지 않고 좋은 부모이기만 한 것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거죠. 화 한 번 내지 않고 완벽하게 감정을 조절하는, 마냥 따뜻하고 이상적인 부모 밑에서는 아이가 건강한 타인상을 만들기 어려울 수 있어요. 아이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으니까요.

부모의 화도 아이가 경험해야 할 감정이에요

제가 보통 전하는 연구 기반 육아 조언은 큰 방향성만 제시할 뿐,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알려 주지는 않아요. 부모가 아이에게 화를 많이 내는 가정일수록 아이의 정서 발달에 좋지 않다는 큰 경향성은 있지만, 그 안에서 1%도 화내면 안 되는지 약간의 화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지처럼 세밀한 부분까지 밝혀진 근거는 없거든요. 그러니 큰 방향성 안에서 세밀한 균형점과 실행 전략은 각자의 육아관과 현실적인 감정을 반영해서 찾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현실에서는 부모나 타인의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겪으며 헤쳐 나가야 하니, 부모의 화 역시 어느 정도는 아이가 경험해야 할 대상이에요. 물론 일상에서 빈도가 너무 높거나 트라우마를 유발할 정도로 강도가 세거나 표현 방식이 폭력적이라면 당연히 안 되겠지만요. 부모가 대부분의 경우 따뜻하다면 아이는 부모를 여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고, 가끔 화를 내는 부모를 반복해서 겪으면서 '우리 부모는 좋지만 가끔은 나쁘기도 하다, 그게 사람이다, 화를 내도 나를 사랑한다'는 건강한 인식을 만들어 갈 수 있어요. 이게 바로 통합이에요.

아이도 좋은 나와 나쁜 나를 통합해 가는 중이에요

다미의 일화에서 이 단어가 떠오른 건, 아이가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도 좋은 나와 나쁜 나를 통합해 가는 과정 중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아이들은 대체로 어릴 때 반대되는 성질을 하나로 담아내는 걸 어려워해요. '나는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쁠 때도 있다'는 생각이 아직 낯선 거죠. 그래서 "너 나빠"라는 말을 들으면 자기가 통째로 나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 몹시 슬퍼져요. 다미가 "엄마는 오늘 착했는데 다미는 좀 나빴다"는 말을 일시적인 상황이 아니라 "엄마 1등, 다미 꼴등"처럼 일반화해서 받아들인 것도 같은 이유였을 거예요. 칭찬받고 사랑받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싶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짜증을 참기 어려웠던 자신에게 좌절감을 느꼈던 거겠죠.

아이가 이렇게 슬퍼하고 통합을 어려워할 때 부모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어요. 통합은 부모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지거든요. 에피소드 하나하나에서 깨달음을 끝까지 주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요. 조금 더 돕고 싶다면 "다미가 못할 때도 있네"처럼, "넌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인격 전체에 대한 프레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만 잘 못했어"라는 상황적인 프레임으로 말을 건네는 정도면 충분해요. 나이가 있는 아이라면 그 감정을 스스로 다뤄 보게 지켜봐 주고, 아직 어려서 많이 힘들어한다면 공감하며 감정이 가라앉도록 옆에서 도와주면 됩니다.

부모가 화를 내고 잘못을 지적하더라도 큰 그림에서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칭찬을 많이 한다면, 아이는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을 한 번의 에피소드로 규정하지 않게 돼요. '방금은 못했지만 지금까지 데이터를 보면 난 잘할 때가 더 많다'는 식으로요. 반대로 평생 100% 좋은 모습만 보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나는 가끔 화나는데 왜 엄마는 항상 저렇게 평온하지, 나는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고, 10년 동안 화를 안 내던 부모가 어느 날 갑자기 화를 낸다면 그 상황을 견디기 극도로 어려워할 수도 있어요.

정리해 보면

  • 부모가 100% 화내지 않는 완벽한 존재일 필요는 없으며, 가끔의 화도 아이가 경험해야 할 감정입니다.
  • 큰 그림에서 대체로 따뜻하다면, 가끔 화를 내더라도 아이는 '좋은 부모지만 가끔 나쁘기도 하다'는 통합된 인식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갑니다.
  • 아이가 "난 꼴등이야, 난 못해" 같은 부정적인 말을 해도 당황하지 말고, 통합해 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세요.
  • 아이를 도와주고 싶다면 인격 전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상황적인 말로 건네 보세요.
  • 아이가 슬퍼할 때는 억지로 생각을 바로잡으려 하지 말고, 그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