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소리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AMI 몬테소리 지도사인 시모네 데이비스의 Montessori Retreat 강의를 들으면서 자주 언급되었던 개념이 있다.

"filling my own cup",
즉 "내 컵 채우기"라는 것이다.
몬테소리 지도사, 혹은 한 아이의 부모가

갖춰야 할 자질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재료들을 어떤 식으로 제시하고,
아이의 흥미를 어떻게 유발하고,
어떻게 아이의 집중력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아이의 활동을 도와주는지 등.

이런 것들은 지도사 트레이닝을 통해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것들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이다.

아이가 보내는 모든 신호와 행동에 얼마나 섬세하고 민감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반응해줄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진지하고 단호하게 사회생활의 룰을 가르쳐줄 수 있는지.

기본적으로 아이를 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춰야 할 자질이기도 하다. 당연히, 몬테소리에서도 훌륭한 지도사(교사)를 키워내기 위해 많이 강조하는 부분이다.

많은 부모들이 놓치는 것은,

이렇게 아이에게 이상적인 방식으로 잘 반응해주기 위해서는, 부모 스스로가 에너지로 충만한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집안일과 육아로 인해 굉장히 몸이 고단한 상태라면,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인해 내 에너지의 일정 부분이 항상 어딘가에 빨려들어가고 있다면,

부부관계가 좋지 않고 나 혼자서만 육아하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하거나 불만이 가득하다면,

부모는 항상 '반응육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를 갖추지 못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모네 데이비스는

"fill my own cup"이 중요하다고 했다.

부모가 스스로의 컵을 채운 후에야,

아이에게 질적으로 풍부한 인풋을 따라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의 컵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육아를 아무리 잘 하려고 노력해 봤자, 아이에게 따라줄 수 있는 질좋은 인풋이 나올 리 없다는 것이다.

핵가족화된 사회에서, 엄마나 아빠 혼자 아이와 집에 갇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은 요즘 시대에, 이 "컵 채우기'의 중요성은 더더욱 높아지는 것 같다.

옛날처럼 여러 명이 아이를 함께 돌보는 공동육아가 가능한 시절이었다면, 돌아가면서 좀 쉬기도 하고, 서로 육아도 좀 돕고, 아이들끼리 서로 어느정도 케어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힘듦을 나누며 공감받기도 하고, 적당히 에너지를 채워가며 육아하기가 더욱 용이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컵이 금방 바닥나기 쉽다. 그래서 부모는 더더욱 스스로의 컵을 채우는 데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내 배우자가 주로 육아하고 있다면, 배우자의 컵을 채워주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다미가 돌 정도 되기 전까지 내 컵을 채우는 방식은 외출이었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인데, 항상 하루 두세시간 정도는 아기띠에 다미를 메고 여기저기 다녔다. 원래 여기저기 새로운 곳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다미가 이 세상을 열심히 구경하고 다양한 소리들을 듣는 동안 나도 잠시 내 생각도 하고 좋아하는 음료도 마시고 햇빛과 구름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그러고 나면 집에 와서 다미와 또 열심히 상호작용해줄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던 것 같다.

돌 이후부터는 유튜브 운영을 좀더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고 시터님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컵을 채워 나갔다. (그리고 이제 돌아다니는 재미를 느끼게 된 다미가 얌전히 매달려 있지 않았다..)

유튜브 운영을 통해 뭔가 성장하고 키워 나가는 정신적인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고, 시터님이 아이를 봐주시는 동안 육아에서도 잠시 벗어나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유튜브 운영을 하면서 좀 바빠지긴 했지만, 일부러 너무 번아웃되지 않으려고 시터님이 계신 시간, 다미가 낮잠자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내 휴식 시간도 가지려고 노력했다. 좋아하는 미드나 책도 간간히 봤다.

누구나 컵을 채우는 방식은 제각각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아이와 떨어진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필요한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아이에게 계속 주기만 해야 하니까, 잠시 주는 것을 멈추고 채우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잘 반응해주는 것은 아이의 기본 발달에 정말로 중요하다. 나중에 아이가 중고등학교 때 쓰게 될 몇십만원의 학원비, 과외비보다, 수십만원짜리 장난감이나 유모차 등 물건에 지출하는 비용보다, 지금, 아이가 어릴 때 나의, 혹은 배우자의 컵을 채우기 위해 쓰는 이런저런 비용들, 시터님 고용비, 조부모님 용돈,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장기적으로 아이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쓰다 보니 시터 앱 홍보 같네..... )

내가 컵을 충분히 채워 항상 에너지 넘치게 육아하고 있다고 느끼기보다, 항상 부족한 에너지에 허덕이면서 겨우겨우 육아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내 육아의 질은 그리 높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행복한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키운다.

내 컵도 좀더 충만히 채워보자. 경제적인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조부모님이 멀리 사시더라도, '나'를 우선순위에서 조금 더 높이고 다시 한번 잘 고민해 본다면, 분명 더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육아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