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육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교육이라는 것은 특히 어린 아이일수록,

'전체론적(holistic)' 접근을 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육아에 교육의 어떤 이슈들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하면서,
해결책과 방향성을 찾기 위해,

아동 발달에 대한 논문들과 책을 읽다 보면

결국에는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다 연결되어 있는 거구나.
A를 바꾼다고
B가 해결되는 게 아니구나.
육아를 하다 보면,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가 왜 언어 발달이, 소근육 발달이, 사회성 발달이 느릴까?

왜 우리 아이는 퍼즐 맞추기에 관심이 없을까?

왜 우리 아이는 자신감이 부족할까?
왜 부모님과 대화하려 하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며 부딪히는 문제는 수없이 많고,

그 때마다 해결책을 제시해 줄 조언들이나, 책을 찾아 헤매야 한다.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는 법"
"말이 느린 아이 육아하는 법"
"공부 잘하는 아이 만드는 비법"

서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책의 제목들이다.

그렇지만 육아를 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이래서 이렇다! 이렇게 하면 해결된다!'고

딱 맞는 처방전을 내리기는 사실 쉽지 않다.

어떤 부모가 공부 지지리도 싫어하는 아이 셋을

어떤 식으로 교육시켜서 하버드에 보냈다 한들,

그 부모의 '비법'은 다른 부모와 아이들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뇌가, 그리고 하나의 '사람'이 완성되어가는

20세 이전의 시기에,
특히 태아기를 포함한 영유아기에,

복합적이고 근본적인, 어떤 '씨앗'이 만들어지고,

이 '씨앗'이 향후 어떤 형태의 '열매'가

열릴 수 있는지를 어느 정도 결정하는 것 같다.

이 씨앗 속에는, 향후 타인과의 관계의 모습을

어느 정도 결정하게 될 부모님과의 관계라던가,

정서적인 안정성이라던가, 외부 세계에 대한 신뢰 정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능력,

이런 다양한 '마음의 기반'들이 포함된다.

즉, '씨앗'을 만드는 전체론적인 요인들,

부모님이 하루하루 아이를 어떻게 대했는지,

아이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였는지,
어떤 환경을 만들어 주었는지,
이런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접근해야지,

"A에 대한 원인은 B, 그러므로 해결책은 C"

이런 식으로 '열매' 하나하나를 보면서
국지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남들에게는 통했던 원인이나 해결책이 우리 아이에게는 별 의미 없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부모님은 넘쳐나는 '이랬다더라' 속에

뚜렷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특정한 교육 방식이나 훈육 방식의 효과에 대해

통계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연구 결과 역시

항상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부모님이 아이를 많이 혼내면,
아이는 학업 성취도가 더 낮았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표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공부 잘하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를 절대 혼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대신에, 좀더 전체론적인 접근법을 택해,

아이를 많이 혼내지 않는 부모들은 어떤 부모들일까?

아이의 실수에 대해 너그러울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고 평소 아이를 대하는 부모님일까?

혼이 난 아이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고, 이를 배려해주는 부모님일까?

아이에게 커뮤니케이션할 때 부정적인 감정을 빼려고 노력하는 부모님일까?

이런 식으로 깊이있게 고민해 보고, 나의 부모로서의 부족한 부분을 돌아보고 육아 방향성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들 중에서도,

이렇게 부모님의 다양한 부분들을 아우를 수 있는 전제를 원인으로 택하는 가설을 세울 때,

그 효과성이 가장 잘 입증되는 것 같다.

'부모의 육아 스타일', '부모의 교육 수준', '부모의 육아효능감' 등, 원인이 그 부모의 전반적인 아이에 대한 태도를 아우를 수 있는 원인이어야 결과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집에 책이 몇 권 있는지'와 같은 국지적인 원인은 결과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예외는 이런 것이다. '아이에게 TV를 얼마나 보여주는가'.

이러한 전제는 국지적이긴 하나, 아이를 TV에 맡겨놓는 부모님과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부모님 사이에는 아이가 TV에 노출되는 시간 외에도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유의미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제3의 변인들을 통제하려고 연구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사람에 대한 연구인지라 완벽히 통제하기는 어렵다. 성공적으로 통제하는 경우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는 최초의 결론이 기각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육아할 때, 해답 하나하나를 찾아 헤매지 말고,

방향성을 만들라는 것이다.

물론 해답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 해답들을 아는 데서 그치면 안 된다. 해답들을 통해서 어떤 큰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수학 문제를 100개 풀 줄 아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100개의 수학 문제를 풀면서 올바른 수학 개념을 머리에 심고, 101번째 수학 문제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해답들을 모으고, 이 해답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떤 방향성이 생겼다.

아이는 이런 존재이구나. 아이는 부모의 행동이나 말에 이런 식으로 영향을 받는구나. 아이가 어릴 때 하는 경험들은 이런 측면에서 정말 중요하구나.

이런 것들을 조금씩 더 깊이있게 이해하게 되고, 부모(Parenthood)라는 나만의 씨앗을 만들어가고, 그것이 나의 행동과 말이라는 열매로 나타나게 되고, 더욱 확신을 가지고 육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이러한 경험을 다른 부모님들과 공유하고 싶다. 다른 부모님들이 "~~하는 아이를 키우는 법"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부모 씨앗'을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열매를 먹고 자란 아이는, 분명 누구보다 단단한 씨앗을 가지고 자신만의 멋진 열매를 피워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