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하지 않기.
이건 사람에 따라, 아주 쉬운 목표가 될 수도, 어려운 목표가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원래 어떤 전문가이든, 자료이든 간에 100% 믿는 편은 아니다. 베싸TV 컨텐츠를 만들 때에도, 이런 성격 탓에 내 리서치는 20시간, 30시간씩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누가 A라고 하면, A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료도 찾아봐야 하기 때문.
내가 왜 이렇게 비판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잘은 모르겠다. 원래도 어느 정도 그런 성격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중고등학생 시절 읽었던 이런저런 책들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하고, 사회과학 전공의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맹신할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경향이 있다. 정답을 말해 주는 누군가가 없으면 뭔가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한 이런 느낌은, 5개중에 정답 1개를 찾는 것을 아이들에게 목표로 주는 한국 교육제도의 부작용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학교를 다닐 때 우리는, '자, 너의 생각을 말해 봐, 무엇이든 정답이 될 수 있어'. 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던가. 적어도 내 기억엔 없다. 대학 시절 교환학생을 갔을 때, 프랑스에서 온 아이와 룸메이트가 되었었는데, 어느 날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대학 진학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아마 이 이야기가 내게 아주 인상적이었나 보다. 프랑스는 '바칼로레아'라고 하는 논술 시험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데, 물론 지식을 테스트하는 과목도 있지만, 철학 등 자신의 생각을 펼쳐야 하는 답이 없는 과목도 있으며 이 비중이 상당하다.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너의 생각을 기술해 봐, 라고 했을 때, 얼마나 잘 써내려갈 수 있을까. 감히 예상해 보면, 철학 시험에 나올만한 주제 리스트를 제공하는 논술 학원이 성행할 것이고, 거기서 각 주제별로 어떤 식으로 작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을 배우지 않을까. 한국의 교육 시스템 자체가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말이다.
몬테소리 교육은 이런 한국식 교육과 정반대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6세 이후의 초등, 중등 몬테소리 과정은 유아들을 위한 몬테소리와 당연히 크게 다르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주도적인 사고를 핵심에 놓고 있다.
내가 몬테소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책인 'Montessori : The science behind the genius'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몬테소리 학교에 다니는 초등학생들은, 어떤 큰 주제에 대해 각자 관심 있는 질문을 만들고, 이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 현장 학습을 자주 나간다고 한다. 다같이 어딘가로 현장 학습을 가는 게 아니다. 교사 동행 없이, 각자 현장학습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생물학을 배울 때, 어떤 아이는 발효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제빵사를 찾아가 빵이 발효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어떻게 하면 빵이 잘 부풀어 오르는지 질문하며, 그 원리는 무엇인지 조사할 수 있다.
즉, 몬테소리는 아이에게 정답을 추구하고 배우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몬테소리 철학을 배워서 아이에게 교육시키라는 부모라면, 마찬가지로 맹신할 수 있는 누군가, 정답을 내려주는 누군가를 찾아 헤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누군가'에는, 물론, 몬테소리 박사 자신도 포함된다.
(나는 몬테소리를 여사라고 부르는 게 싫다. 존중하는 단어이긴 하지만, 그냥 다른 학자들처럼 박사라고 불렀으면..)
몬테소리 박사는 의심 많은 내가 보기에도 정말 훌륭하신 분이다. 과학적인 마인드를 기반으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갖고 철저히 아이들을 관찰해서 훌륭한 인사이트들을 내놓았다. 몬테소리의 이론들의 많은 부분이 현대 심리학과 뇌과학들로 반복적으로 입증되었고, 100년이 넘은 이론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학자들이 아직도 연구하고 따르고 토론한다.
그렇지만, 100년이 넘은 이론이다. 유아 교육에 혁명적이라고 부를 만한 영향을 끼친 몬테소리 박사 이후로, 어린 아이들에 대해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고급 인재 양성에 관심이 많은 국가들에서 어린 아기들을 연구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뇌과학을 비롯하여 많은 분야에서, 더 나은 기술로 인해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연구 방법들을 채택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결과를 도출할 때 객관성과 과학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방법론도 훨씬 더 세련되어졌다.
나는 큰 틀에서 몬테소리의 이론은 맞다고 생각한다. 뭐든 정답은 없다지만, 어느 정도 큰 틀에서 보편적인 원리는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몬테소리가 주장하는 그것이나 현대 과학이 주장하는 그것이나 큰 틀에서는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몬테소리 박사가 현대에 다시 태어난다면, 몬테소리 생전에는 없었던 수많은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분명히 자신이 주장했던 부분들 중 일부는 철회하거나 수정할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위대한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때에도, 항상 비판적인 눈을 유지해야 한다. 그 위대한 사람에게, '현대 연구 결과에 이런 것들이 있는데 당신의 주장과 어긋나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보지 못하는 경우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모두, '몬테소리가 이렇게 말했어!'라고 맹신하고 있는데, 어쩌면 몬테소리 박사에게,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이런 대답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제가 잘못 생각했네요. 제가 살았을 때에는 이런 연구들이 없었거든요. 저는 면밀한 관찰의 결과를 A라고 해석하였지만, 해석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며 사전 지식들에 의해 영향받게 마련이죠. 새로운 지식들을 가지고 보니 B라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게 더 적합해 보이네요.'
몬테소리의 '흡수하는 정신'과 다른 이런저런 책들을 읽으면서, 대체로는 공감하지만 자잘자잘하게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공부했던 과학적 지식과 다른데? 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몬테소리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건 아니다. 그분의 위대한 업적 중,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더 나은 것이 있다면 다른 부분을 취해 나만의 방향성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어떤 제자이든 스승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유가 이것이 아닐까? 다양한 스승으로부터, 자료들로부터 배우고, 스승 그 자체가 되는 게 아니라 스승의 어깨 위에 서서 더 멀리 볼 수 있게 되는 것 말이다.
몬테소리는 부모에게는 특히, 정말로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요즘에는 많은 부모님들이 실제로 관심과 열의를 가지고 공부하시는 것 같다. 그렇지만 공부하실 때, '몬테소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이며 우리 아이에게도 100% 적용되는 정답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몬테소리가 말하고 행한 것들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고, 경향성과 가능성을 이해하고, 우리 아이를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주도적으로 방향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육아 전문가'의 조언을 들을 때에도 마찬가지. 어려운 육아의 길을 걸어 나가면서, 정답 같은 조언, 어떻게 해라, 말아라, 하는 조언을 듣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굴뚝같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에 100% 맞는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어떤 전문가더라도 각자의 전문 영역은 다 다르고, 육아는 총체적인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에 육아에 대해 다 맞는 말을 할 수 있는 조언자는 아무도 없다. 그 어떤 과학적인 근거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는 대체로 어떤 원리를 가지고 움직이는구나, 부모의 행동이 아이에게 이런 영향을 줄 수 있구나, 이런 것들에 대해 이런저런 공부를 통해 일단 깨달음과 힌트를 얻고,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법과 방향을 찾아 나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잘 해 냈을 때 흔들리지 않고 육아를 해 낼 수 있는 '육아 효능감'을 비로소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