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2.11 · 19:25
놀이를 소비하는 아이 vs 창조하는 아이, 무엇이 다를까요
아이가 놀이를 그저 소비하지 않고 스스로 창조하도록, 심심할 틈과 반응해 주는 태도가 필요해요.
최근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어요. 그중 한두 명이 "이러면 죽는 걸로 하자" 하면서 규칙을 만들고 놀이를 주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리더십 있고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놀이를 잘하는 능력'을 이야기해 볼게요.
놀이성이란 무엇일까요
유아교육 논문에는 '놀이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질 높은 놀이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해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녹화해서 관찰해 보면 놀이성이 높은 아이와 낮은 아이가 뚜렷이 나뉩니다. 놀이성이 높은 아이는 규칙을 만들고 놀이를 주도하며, 주어진 환경에서 필요한 도구를 스스로 조합하고 계획해서 재미를 만들어내고, 함께 노는 아이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이끌어냅니다. 아이의 일은 놀이이기 때문에, 저는 놀이를 잘하는 아이가 능력 있는 아이라고 생각해요. 취학 전 아이들의 진짜 능력이 발휘되고 길러지는 영역은 공부가 아니라 놀이거든요. 공부 잘하는 아이만큼 놀이 잘하는 아이도 주목받아야 하고, 그런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놀이도 언어처럼, 창조는 원래 어려운 일이에요
저는 다미가 어떻게 하면 놀이를 잘할지 자주 고민해요. 열린 놀이는 정해진 게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만들어가는 창조 행위인데, 창조는 원래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에요. 언어를 예로 들면, 아이가 처음 단어를 말하기까지 1년 가까이 엄청난 언어 데이터를 입력받고 옹알이로 연습한 뒤에야 언어를 창조할 수 있게 되고, 그 뒤로도 몇 년은 지나야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언어에는 배고프면 엄마에게 말해야 하고 안기고 싶으면 안아달라고 해야 하는, 확실한 소통의 동기가 있죠. 놀이도 마찬가지로 창조를 연습할 기회가 많이 주어져야 잘할 수 있게 되는데, 그 동기가 되는 건 바로 심심함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이 심심할 틈이 없는 이유
저는 어릴 때 엄마에게 심심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럴 때마다 밖에 나가 동네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좋은 환경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밖에 나가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많이 줄었고, 부모가 아이의 심심함을 해소해 주는 게 부모 역할이라고 여기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엄마표 놀이나 짜인 프로그램을 아이가 그저 소비하게만 하면, 아이가 스스로 놀이를 창조할 기회를 빼앗는 셈이 될 수 있어요.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새로운 경험 자체는 나쁘지 않고, 오히려 동물원에 다녀온 경험이 놀이의 테마가 되어 놀이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다만 방점은 자유롭고 비구조화된 놀이에 있어야 하고, 다양한 경험은 가끔 곁들이는 정도가 좋다고 생각해요.
다 해주기보다 반응해 주세요
아이가 놀이를 창조할 수 있는 영역을 열어두려면, 부모가 다 해주기보다 반응해 주는 편이 좋아요. 테니스에서 서브에 리턴을 하듯, 환경을 느슨하게 만들어두고 아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반응만 해주는 방식이죠. 모든 순서가 정해진 놀이 키트가 너무 많아지는 것도 좋지 않고, 디지털 미디어 소비도 놀이성을 방해하는 요인이에요. 어른이 다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그저 받아먹기만 하는 건 누구나 좋아하지만, 스스로 창조하면서만 늘어나는 능력도 분명 있으니까요. 가정에서 아이가 놀이를 주도하는 작은 창조의 경험을 많이 쌓아야, 나중에 더 크고 의미 있는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기본 능력이 됩니다.
책 읽기도 소비라는 걸 기억해 주세요
책 읽기도 이런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 볼 만해요. 저는 어릴 때 장난감이 많지 않았고 한글을 일찍 뗀 덕에 책을 정말 많이 읽었는데, 책 읽기가 지금 제 능력치를 만든 중요한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때는 밖에 나가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환경도 함께 갖춰져 있었어요. 만약 지금 시대에 자랐다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 책을 더 많이 읽었겠지만, 책에서 얻는 것 말고 다른 능력은 덜 길렀을 것 같아요. 책 읽기는 창조의 수고가 따르지 않는, 비교적 쉬운 소비 활동이라 아이가 쉽게 빠져들 수 있거든요. 자유놀이 시간이 먼저 확보된 다음에 책 읽기가 더해지는 순서가 좋다고 생각하고, 한글 떼기도 서두르지 않고 있어요. 조기 한글 교육이 창의성이나 사회성을 해친다는 근거는 못 봤지만, 아이가 한글을 일찍 떼서 책에만 지나치게 몰두하게 될 가능성도 함께 생각해 볼 만합니다.
반복해서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아이가 자유놀이에서 창조를 잘하려면 반복이 많이 필요해요. 다미도 상상놀이 같은 주된 놀이 테마를 지겹도록 반복하면서 조금씩 놀이를 확장해 갑니다. 그런데 아이 옆에서 반복되는 놀이를 지켜보는 게 부모 입장에서는 지루할 수 있어서, 주말이면 새로운 경험을 찾아 밖으로 많이 나가게 되죠.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특히 평일에 자유놀이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아이라면 안정적인 환경에서 놀이를 반복하고 창조를 연습할 기회를 주는 게 더 중요할 수 있어요. '오늘은 어디 가지' 하며 새로운 외출에 집착하기보다, 가끔의 프로그램이나 나들이는 곁들이는 정도로 두는 게 놀이성을 키우는 데는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 놀이를 잘하는 능력, 즉 놀이성은 공부만큼 주목하고 길러줄 만한 능력입니다.
- 아이의 심심함을 부모가 서둘러 해결해 주기보다,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낼 기회로 남겨둡니다.
- 다 해주기보다 아이가 이끄는 대로 반응해 주는 방식으로 놀아줍니다.
- 책 읽기나 프로그램 같은 소비 활동은 자유놀이를 대체하지 않도록 비중을 조절합니다.
- 같은 놀이를 반복할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아이가 창조를 연습하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