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있는 우리 아이를 상상해 볼게요. 블록으로 뭔가를 만들고 있는데, 완성에 꼭 필요한 조각 하나가 친구 엉덩이 밑에 깔려 있어요. 친구를 밀치거나 비키라고 할 수도 있고, 포기하고 다른 걸 만들거나 친구가 일어나기만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있죠. 아니면 "나 이거 만들어야 되는데 네가 깔고 앉은 블록이 필요해. 너 필요한 거 아니면 내가 가져가도 될까?" 하고 물어볼 수도 있고요. 부모라면 누구나 세 번째를 바랄 거예요. 사회적으로 성숙하면서도 자기 욕구를 희생하지 않고 잘 표현하는, 사회성 높은 모습이니까요.

이 글은 미국 시애틀에서 초등 교사로 사회정서 학습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쳐 온 김소연 님의 책 『결국 해내는 아이는 정서지능이 다릅니다』를 바탕으로 해요.

사회적 고통은 왜 있을까요

책에는 '사회적 고통(social pain)'이라는 말이 나와요. 친한 사람이 별로 없다고 느끼거나 어떤 무리에 소속되지 못했을 때 느끼는 단절의 고통이죠. 잘 알려진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고통을 느낄 때는 실제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와 비슷한 뇌 부위가 반응한다고 해요. 아이가 사회적으로 고립된다면, 그 고통은 맞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경험일 수 있다는 거예요.

호모 사피엔스는 공동체 생활로 번영한 종족이에요.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사는 것이 생존에 아주 중요했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고통을 느끼도록 진화했다고 해요. 사회성을 발휘하게 하는 동기부여인 셈이죠. 책에 따르면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유치원생쯤 되면 사회적 고통을 경험해요. 좋아하는 친구가 다른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거나, 그룹 활동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식으로요.

한편 사회적 고통은 고립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미숙하게 행동한 결과로 "너랑 안 놀아" 같은 고통도 느껴 보고, '친구들에게 이렇게 행동해야 나를 싫어하지 않는구나' 하면서 행동을 조절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회성이 자라요. 만 3~4세는 되어야 또래 관계가 사회성에 의미 있게 기여하는 이유가 이거예요. 그 나이가 되어야 동기가 있을 때 행동을 실제로 조절하고 수정할 수 있거든요.

부모의 역할은 완충제를 둘러 주는 것

그러면 만 3~4세까지 기다렸다가 사회적 고통을 알아서 겪고 극복하게 두면 되는 걸까요.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준비시키는 거예요. 사회적 고통이 아이에게 충격을 주더라도, 그 경험에서 배우되 너무 많이 다치지는 않도록 몸에 완충제를 둘러 주는 거죠.

이 완충제가 없으면 사회생활 첫걸음에서 겪는 어려움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부정적인 경험이 자꾸 쌓이고, 사람을 사귀는 데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어요. 불편한 존재인 또래보다 편한 존재인 부모에게서 쉽게 떨어지지 못하게 되니 독립성에도 영향을 주고,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은 학업에도 영향을 미치죠.

더 큰 문제는 또래 관계에서 겪는 소외감이 아이의 문제 행동을 키울 수 있다는 거예요. 사회성이 부족해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는 당연히 또래에게 거절당하는 경험이 많아지는데, 그 거절 경험이 거꾸로 문제 행동을 더 심하게 만들어요. 한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 때 또래에게 거절을 더 많이 경험한 아이일수록 2, 3학년이 됐을 때 분노 수준과 문제 행동 빈도가 더 높았다고 해요. 소속감의 부재와 사회적 고통은 분노 같은 감정을 불러오거든요.

가정이라는 단단한 뿌리

저자가 말하는 준비는 크게 두 방향이에요. 첫 번째는 가정이라는 단단한 뿌리를 만들어 주는 것. 부모와 관계가 좋고, 부모는 내 편이라고 느끼고, 가정에 소속감을 느끼는 아이는 이런저런 사회적 고통을 겪더라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어요. 세상에 내 편이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단절감과,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단절감을 느끼더라도 무조건 내 편인 부모님이 있다고 느끼는 부분적인 단절감은 다르거든요. 그래서 부모는 늘 아이 편이라는 걸 말과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해요.

아이가 잘못했을 때도 아이 편이 되어 줘야 하느냐고 헷갈려 하시는데, 행동에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한계를 설정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항상 아이 편이 될 수 있어요. "이렇게 하고 싶은 네 마음은 잘 알겠어. 하지만 이런 이유로 네 행동을 허용할 수는 없어. 대신 네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같이 고민해 보자." 이렇게요. 행동에 한계를 정해 준다고 해서 아이의 반대편에 설 필요는 없어요.

사회적 스킬, 그중에서도 유연성

두 번째는 아이의 사회적 스킬을 키워 주는 거예요. 사회적 스킬이 있으면 아이는 사회적 고통을 느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더 나은 방향으로 행동을 수정하면서 고통을 점차 줄여 나갈 수 있어요. 살면서 고통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보다 그걸 줄여 나갈 스킬을 갖췄느냐가 더 중요해요. 저자는 공감 능력, 책임감, 유연성 등을 강조하는데, 여기서는 유연성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게요.

융통성이라고도 하는 유연성은 관계를 맺을 때 아주 중요한 덕목이에요. 내가 원하는 게 있고 내 고집이 있지만, 상대의 니즈와 조율하기 위해 내 목표를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면 유연성이 있는 거죠. 우리말로는 고집이 세다, 고집이 없다는 말이 더 빨리 와닿을 거예요.

책은 캘리포니아 대학 토마스 보이스 교수의 비유를 빌려 민들레과 아이와 난초과 아이를 설명해요. 민들레는 아무 환경에서나 잘 자라고, 난초는 잘 가꾸어진 특정한 환경에서만 잘 자라는 예민한 식물이죠. 민들레과 아이의 대표적인 특성이 바로 유연성이에요. 큰 고집이나 자기주장이 없어서 어떤 환경에서든 적당히 맞춰 주면서 적응해 나가요. 반면 난초과 아이는 유연성이 부족하고 고집이 세며,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으면 유난히 힘들어해요. 어린아이일수록 대체로 유연성이 부족하지만, 또래와 비교해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유독 부족한 아이들이 있죠.

민들레과 아이에게는 자기 옹호력을

유연성이 높은 민들레과 아이가 무조건 좋기만 할까요. 부모 입장에서 고집은 너무 세도, 너무 없어도 걱정이죠. 또래 관계에서 민들레과 아이가 대체로 더 잘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사회성 측면에서 마이너스도 있어요. 또래 관계를 유지하려는 동기는 긍정적인 경험을 계속해야 높아지는데, 맞춰 주기만 하다 보면 그 경험이 그렇게 즐겁지 않거든요.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는 시작도 못 하다가 놀이 시간이 끝나 버릴 수도 있고요. 그러다 보면 또래 관계를 넓히는 데 큰 흥미가 생기지 않고, 편하게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엄마랑만 놀거나 혼자 노는 걸 선호하게 될 수도 있어요.

책은 이런 아이에게 자기 옹호력을 길러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해요. 원하는 바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요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능력, 즉 사회적 상황에서 스스로를 챙기는 능력이에요. 책이 제시하는 방법은 세 가지예요.

자기 확언. "난 할 수 있어", "난 친절해" 같은 긍정적인 자기 확신의 말을 소리 내어 하게 도와주는 거예요. 유치해 보이지만 뇌과학적으로 자기 존중감을 키우는 데 효과가 있다는 보고들이 있어요. 자기 옹호의 밑바탕에는 '내 의사도 내 욕구도 내 감정도 중요해'라는 자기 존중감이 있거든요. 다만 실제로 부족한 부분을 아닌 척 반대로 확언하게 하면 거짓말처럼 느껴져 인지부조화가 올 수 있어요. 아이의 실제 장점을 발견해서 진실된 확언을 매일 외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스스로를 챙기는 경험. 아이가 운다고 부모가 다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고, 불편함을 인식하고 표현하고 요청할 기회를 주는 거예요. 넘어져서 운다면 "여기 까졌어요, 호 해 주세요"나 "밴드 붙여 주세요"처럼 스스로를 챙기는 행동을 할 수 있게 기다려 주시면 돼요.

처음의 블록 예시에서 민들레과 아이는 친구에게 달라고 표현하지 않고 자기 계획을 수정하는 쪽을 택하기 쉬워요. 그런데 비슷한 상황을 더 편한 상대인 부모와 충분히 연습했다면 친구에게도 더 적절히 이야기할 수 있어요. 부모에게는 블록 달라는 정도는 쉽게 요구할 테니, 그보다 조금 더 어려운 상황, 부모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보세요. 같이 놀 때 부모도 아이 것과 별개로 뭔가를 만들면서 또래처럼 놀다가, 아이가 어떤 조각을 달라고 하면 무조건 넘겨주기보다 "엄마도 이거 하고 싶은데, 그러면 네가 갖고 있는 저거랑 바꿔 줄 수 있어?" 하고 제안해 보는 거예요. 아이들은 이런 타협과 협상의 스킬을 생각보다 금방 배워서 자기 전략으로 쓰고, 그 경험이 쌓이면 친구에게도 해 볼 수 있게 돼요.

거절할 기회. 아이가 거절을 할 수 있으려면 일상에서 아이의 동의를 구하는 상황이 있어야겠죠. 물론 양치나 식사 같은 루틴에서 거절할 수 있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그것 말고도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얻지 않고 넘어가는 상황이 생각보다 많아요. 대표적인 게 "할머니한테 가서 뽀뽀해 드려", "가서 친구 안아 줘" 같은 스킨십이에요. 아이는 자기 몸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하고, 뽀뽀나 안아 주기는 동의를 구해야 해요. "할머니가 뽀뽀 받고 싶으신가 봐", "엄마 좀 안아 줬으면 좋겠다" 하고 말한 뒤 아이가 싫다고 하면 그 의사도 존중해 주는 거죠. 아이 음식을 덥석 먹지 않고 "먹어도 돼?" 하고 물어서 소유권을 존중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반대로 아이가 친구에게 스킨십을 하려 하거나 친구 물건을 만지거나 먹고 싶어 할 때도 먼저 물어볼 수 있게 지도해야 해요. 자기 권리를 존중받지 못한 아이는 타인의 권리도 존중하기 어려워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라는 가르침을 전혀 받지 않으면 자기 권리만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거든요. 둘 중 하나가 아니라 꼭 둘 다 지도해 주세요.

난초과 아이에게는 '괜찮은 결과'의 경험을

자기 뜻대로 안 됐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해 또래 관계가 어려운 난초과 아이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이런 아이는 애초에 원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괜찮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오랜 시간에 걸쳐 수없이 경험해야 해요. 그러다 보면 'A가 아니면 큰일 난다'는 고정관념이 서서히 약해지거든요.

책에 나오는 바나나 비유를 들어 볼게요. 바나나를 통째로 먹고 싶었는데 잘라 줬다고 울고불고하더라도, 아이가 원하는 대로 바나나를 다시 대접하지 않는 거예요. 대신 감정을 진정하도록 도와주면서 잘린 바나나를 먹는 것도 괜찮다는 걸 느끼게 해 줘요. 혹은 얼마든지 다른 대안이 있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해 잘린 바나나를 아예 갈아서 스무디로 만들어 줄 수도 있겠죠. 원하는 건 A였는데 B라는 상황이 됐을 때 결국 B를 수용하는 경험, 혹은 C라는 새로운 대안을 선택했더니 그 결과도 괜찮았다는 경험이 유연성이 자라는 바탕이 돼요. 이런 경험이 쌓이면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도 다른 선택지를 택할 수 있다, 지금 상황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지나친 좌절이나 분노, 슬픔 없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게 돼요.

이런 경험을 더 잘 활용하려면 그 순간을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아이와 함께 이야기해 보는 게 도움이 돼요. 저는 그림으로 그려서 보관하는 걸 추천하고 싶어요. 바나나가 잘려서 우는 모습, 하지만 잘린 바나나도 맛있어서 결국 웃는 모습을 그려 두고 나중에 이야기해 보는 거죠. 이성이 완전히 돌아온 상태에서 되돌아보면 '그때는 되게 큰일이었는데 지금 보니 별거 아니네' 하는 또 다른 깨달음의 순간이 되거든요. 아이들은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을 오가는 걸 잘 못하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지금의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부모가 대화를 이끌어 주면 좋아요.

저자가 제안하는 또 다른 연습은 즐거운 서프라이즈예요. 난초과 아이는 예측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으면 불편해하는데, 예측하지 못한 상황의 결말이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려 주는 거예요. 즐거운 변수를 포용하는 경험은 불편한 변수를 포용하는 연습이 되거든요. 저자의 학교에서는 서프라이즈 팝콘데이나 자리 바꾸기 같은 행사를 연다고 해요. 집에서라면 가끔 하원을 평소보다 일찍 하고, 평소에는 잘 사 주지 않는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고 들어가는 식으로 해 볼 수 있겠죠.

정리해 보면

  • 사회적 고통은 고립되지 않으려 노력하게 만드는 동기라서 그 자체로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 부모의 역할은 고통을 막는 게 아니라, 아이가 그 경험에서 배우되 너무 다치지 않도록 준비시키는 거예요.
  • 행동에 한계를 정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늘 아이 편이라는 걸 말과 행동으로 보여 주세요.
  • 맞춰 주기만 하는 민들레과 아이에게는 자기 확언, 스스로 챙기는 경험, 거절할 기회로 자기 옹호력을 길러 주세요.
  • 고집 센 난초과 아이에게는 원하던 대로 안 돼도 괜찮았다는 경험과 즐거운 서프라이즈를 자주 만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