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기를 낳은 지인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부모로서 아이 발달에 최적의 도움을 주고 있는지 늘 걱정이 되고, 그래서 남들은 지금 뭘 하는지,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 찾아보게 된다고요. 아마 많은 분이 공감하실 거예요.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생애 초기가 뇌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는 콘텐츠가 쏟아지니까, 우물쭈물하다 이 중요한 시기가 훅 지나갈 것 같아 조급해지죠.

땡땡육아보다 중요한 '이름 없는 육아'

그 조급함의 결과가 책육아, 몬테소리 육아 같은 '땡땡육아'가 아닐까 싶어요. 본질을 들여다보면 이름을 붙였을 뿐 별것 아닌 경우가 많지만, "나는 책육아를 하는 부모야, 이 시기를 허투루 보내는 게 아니야" 하고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거든요.

어떤 땡땡육아를 하시든, 그런 거 안 한다고 생각하시든, 하나만은 기본으로 알고 가셨으면 해요. 몬테소리 활동이나 책 읽기처럼 이름이 붙지 않은 나머지 일상의 순간들 역시 발달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우리는 아이를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만나는 학원 선생님이 아니라 하루 종일 함께하면서 아이의 하루 모양을 만들어 가는 부모잖아요. 북클럽 선생님이라면 그 한 시간 동안 책 읽기에만 집중하면 되죠. 하지만 부모가 하루 종일 집에서 책 50권, 100권 읽는 데만 열중하고 뿌듯해한다면, 큰 그림에서는 최적의 방향이 아닐 수 있어요.

책 읽기만큼이나 시답잖아 보이는 상황극을 반복하는 시간, 흙바닥에 앉아 끼적이며 노는 시간, 뛰어다니고 기어오르는 시간, 그리고 잘 자고 잘 먹는 기본 환경이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아야 균형을 잡을 수 있어요. 이런 것들에는 이름이 없죠. 너무 당연하고 사소해 보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걸 '이름 없는 육아'라고 불러 보려고 해요.

이름 없는 육아를 알면 좋은 점 두 가지

첫째, 어떤 육아를 하든 걱정할 일이 별로 없어져요. 책육아를 하는데 아이가 책에는 관심이 없고 뛰어다니기만 한다? 뛰어다니는 것도 발달에 중요하니 괜찮아요. 이중언어 육아를 하는데 아이가 영어 그림책은 거부하고 한국어 그림책만 좋아한다? 한국어 그림책을 읽는 이점이 너무나 분명한데 그게 뭐 대수인가요. 이름 없는 육아의 가치를 모르면 그런 시간의 가치가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 조급하고 불안해지는 거예요.

둘째, 아이와의 하루하루를 '오늘 참 알찼다'는 기분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요. 책육아를 했든 안 했든, 문화센터에 갔든 안 갔든,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뭔가 더 해 줘야 할 것 같아 불안해하는 대신 "나는 우리 아이에게 가장 좋은 걸 주고 있어, 오늘도 알찬 하루였어" 하고 확신하는 마음. 그게 행복한 육아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어요.

이 이름 없는 육아의 가치를 뇌과학 근거로 친절하게 풀어 주는 책이 있어요. 스탠퍼드에서 뇌과학을 공부한 김보경 박사의 《골든브레인 육아법》인데요. 여섯 파트 모두 유익하지만 베싸에게는 특히 운동과 놀이 파트가 와닿았어요.

다미와 지하철로 하원하는 이유

저는 운전면허가 없어요. 다미의 유치원은 차나 대중교통으로 20분쯤 걸리는데, 주로 제가 하원을 맡아 다미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와요. 힘들지 않냐는 말을 자주 들어요. 물론 제 속도로 가기는 어렵죠. 혼자면 20분 걸릴 길이 다미와 함께면 두 배 넘게 걸려요. 다미가 힘들다고 매달리고 안아 달라고 하면 앉아서 쉬었다 가고, 가는 길에 거미줄도 구경하고 길바닥에서 이상한 것도 줍고, 특정 색깔 벽돌만 밟으면서 걷고, 계단을 거꾸로 갔다가 두 칸씩 갔다가 하면서 정말 천천히 갑니다.

그래도 저는 이 시간이 참 좋아요. 무엇보다 걷는 시간이 확보되거든요. 다미네 유치원에는 하루 한 시간 바깥놀이 시간이 있고 주말에는 공원에도 가지만, 일주일 평균으로 보면 다미의 신체활동 시간은 하루 한두 시간 정도로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 비가 와서, 미세먼지가 심해서, 너무 춥거나 더워서 실내에 머무는 날까지 넣어 1년 평균을 내면 더 줄어요.

책에서는 세계보건기구의 신체활동 가이드라인을 소개해요. 만 3~4세 아이는 하루 180분 이상 다양한 신체활동을 하고, 그중 60분 이상은 중간 강도에서 격렬한 강도의 활동을 하되 많을수록 좋다고요. 앉아서 소근육을 쓰는 활동이 아니라 걷고 뛰고 움직이는 대근육 활동 이야기예요. 이 기준으로 보면 저희 집도 부족해요. 하원길에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집에 가는 미션도 해결하면서 매일 자연스럽게 운동 시간을 확보하는 완벽한 기회인 거죠.

걷기만 해도 뇌가 자라요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만으로 발달에 의미가 있을까 싶으실 텐데, 있습니다. 책에 따르면 BDNF는 한마디로 뇌의 성장을 돕는 단백질인데, 코트먼 교수 연구팀이 운동이 BDNF를 높인다는 걸 밝혀냈어요. 운동으로 심장 기능이 좋아지고 뇌에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면 뇌 기능이 향상되는 거죠. 산소 공급에 영향을 주는 건 심장만이 아니에요. 뉴멕시코 하이랜즈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땅에 부딪히며 생기는 울림이 몸에 압력 파동을 만들고, 그 결과 뇌로 가는 혈류량이 늘어난다고 해요. 달리기처럼 심박수를 높이지 않고도 뇌 혈류를 늘리는 걷기의 힘이 놀랍죠. 우리 뇌는 움직이며 살아가고 움직이며 배우도록 되어 있어요.

그러니 집에 앉아서 영상이나 책으로 개미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걸어가다 개미를 들여다보고 따라가면서 함께 이야기할 때 더 효과적인 배움이 일어나요. 산책하면서 보이는 것들을 도란도란 이야기한다면 언어 발달도 더 잘 일어나겠죠. 해외에는 러닝머신과 책상을 결합해 걸으면서 일하게 만든 상품도 있어요. 움직일 때 뇌가 더 잘 돌아가니 생산성이 오른다는 거죠.

이렇게 보면 하원길에 "빨리 가자"고 재촉할 이유가 없어요. 걷는 행동 자체와 그 와중에 일어나는 모든 상호작용이 배움의 기회니까, 꼭 20분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좀 돌아가도 괜찮아요. '하원길 육아' 같은 건 없잖아요. 하원길은 그냥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죠. 우리가 가치를 모르고 흘려보내는 소중한 발달의 시간이에요. 이제 알았으니 재촉하는 시간이 아니라 여유 있게 아이를 관찰하고 발달을 지지하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어요.

오래 앉아 있는 연습, 시켜야 할까요

신체활동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면 육아의 여러 결정이 달라져요. 저는 어린이집을 고를 때 바깥놀이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봤어요. 다미의 첫 어린이집은 아기띠를 하고 버스를 타야 해서 등하원이 고됐지만 숲 바로 근처였고, 코로나가 풀리자 아이들이 숲에 자주 나가 놀 수 있었죠. 다미가 커서 하원 후 학원에 보내야 한다면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택하려고 해요. 유치원이든 학교든 한국 교육과정 안에서는 신체활동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으니 따로 채워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유치원생쯤 되면 슬슬 오래 앉아 있는 연습을 시켜야 하지 않느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 기대와 달리 잘 못 앉아 있고 계속 돌아다니려는 건 앉는 연습이 안 돼서가 아니라 그 나이가 원래 그렇기 때문이에요. 책에서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움직임의 욕구는 만 5~6세에 정점을 찍어요. 신체활동이 발달에 더욱 필요한 시기라는 뜻이겠죠. 이 시기가 지나면 움직임 수준이 점점 떨어지는데, 그때조차 적당한 신체활동이 오히려 더 잘 앉아 있는 아이를 만들어요.

잘 노는 아이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아이는 놀면서 배우고 놀면서 발달하며, 잘 노는 아이일수록 더 다양한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건 이제 많은 부모님이 알고 계세요. 그런데 놀이가 타고난 능력이라면서 시간이 갈수록 잘 노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생겨요. 학술적으로는 이걸 놀이성(playfulness)이라고 하는데, 놀이성이 높은 아이는 놀이를 잘 주도하고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방식으로 변형하거나 확장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결합해요. 우리 아이는 어떤가요?

잘 못 노는 것 같아 걱정되신다면, 방법은 특별하지 않아요. 책은 지금 아이와 매일 하는, 특별할 것 없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라고 말해요. 이제까지 A를 했으니 B를 하라는 게 아니라 A를 더 하라는 거죠. 잘 놀기 위해 아이에게 필요한 건 장난감이나 키즈카페가 아니라 기회예요. 어떻게 놀지 고민하는 시간, 같은 놀이를 반복하면서 점점 잘하게 되는 시간, 어제 하다 멈춘 놀이를 이어서 할 수 있는 시간. 그러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와 충분히 논다는 건 쉬워 보이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생각보다 어려워요. 저는 놀이가 중요하다는 걸 그렇게 많이 읽고 배우고 놀이 강의까지 하고 있는데도, 막상 다미와 노는 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매일 느껴요. 평일에는 등원시키고 하원하면 씻기고 먹이고 재우기 바쁘고, 주말에도 외출하고 미디어도 보고 밀린 집안일도 하다 보면 다미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를 실컷 한 날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요즘은 주말 오전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미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를 밀도 있게 하는 시간으로 확보하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어요.

그래도 다미는 잘 노는 편이에요. 외향성이 높아서 상호작용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눈 뜨자마자 "놀자"고 하는 아이거든요. 아이가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면, 따져 봤을 때 놀이 시간이 몇 시간 안 된다는 걸 깨닫는 분이 더 많으실 거예요. 놀이성은 어릴 때 놀이 상대와 많이 놀아야 자라요. 꼭 부모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보통은 부모가 그 상대가 되기 쉽죠. 그러니 어떤 놀이든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로 노는 시간을 많이 확보해 주세요. 무한 반복이어도, 아무리 단순해도 상관없어요. 김보경 박사가 책에서 소개한 연령별 놀이도 읽어 보면 다들 이미 매일 하고 있는 것들이에요. 머릿속의 이상적이고 멋진 놀이를 조급하게 기대하지 않고 지켜봐 주면서 아이가 주도적으로 놀이 경험을 반복하게 기다려 준다면, 놀이 실력은 결국 천천히 높아질 거예요.

논문을 읽다 보면 대중매체에 흔히 나오는 혁신적이고 짜릿한 뇌 발달 방법은 없고, 기본에 충실한 것이 결국 정답이라는 걸 계속 느껴요. 문제는 기본이 아는 것 같으면서도 실천하기 어렵다는 거죠. 건강하게 먹고 잘 자는 게 중요한 줄 알면서 실천이 쉽지 않은 것처럼요. 중요성을 지식으로 알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를 자꾸 환기하다 보면 어느새 지식은 신념이 되고 신념은 행동으로 녹아 나와요.

정리해 보면

  • 책육아, 몬테소리처럼 이름이 붙지 않은 일상의 순간도 발달에 그만큼 중요해요.
  • 만 3~4세는 하루 180분 이상 대근육 활동이 권장되는데, 하원길 걷기가 좋은 기회예요.
  • 걷기는 뇌 혈류를 늘리고 뇌 성장을 돕는 단백질을 높여서, 걸으며 나누는 대화가 더 잘 배워져요.
  • 움직임 욕구는 만 5~6세에 정점이니 억지로 앉히는 연습보다 충분히 움직이게 하세요.
  • 잘 노는 아이가 되는 길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를 반복할 시간을 넉넉히 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