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1.11 · 7:28
영유아 영어 노출의 오해와 진실, 그리고 방향성
영어 노출은 선택이지만, 한다면 조기교육 찬반이라는 좁은 우물 대신 '영어도 언어'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해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영어를 한 번쯤 고민해 보셨을 거예요. 저처럼 관심이 전혀 없다가 주변에서 뭐라고 하니 궁금해진 경우도 있고, 어릴 때가 영어 습득의 황금기라는 말에 혹한 분도 있고, 극성 부모가 되기 싫어서 혹은 조기교육의 부작용 이야기를 듣고 아예 눈을 돌린 분도 있겠죠.
영어 노출은 100% 선택 사항이에요
저는 아이에게 꼭 영어를 경험시켜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100% 선택 사항이죠. 너무 조기교육 같다거나, 내가 그럴 여력이 안 된다거나, 그냥 감정적으로 싫다면 부담을 느끼면서까지 영어 노출을 고민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건 그보다 훨씬 많으니까요. 다만 누구나 올바른 지식을 바탕으로 각자 상황에 맞게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거 하면 큰일 난다", "안 하면 큰일 난다" 하고 누군가 맥락도 없이 이분법으로 정해 준 것에 떠밀리듯 결정하기보다는요.
한국어로 찾은 자료와 영어로 찾은 자료가 달랐어요
콘텐츠를 만들고 책을 쓰면서 아이의 외국어 노출 문제를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많이 조사했는데, 결과가 아주 달랐어요. 한국어로는 주로 의료계 종사자분들을 중심으로 어릴 때 조기교육은 좋지 않다는 이야기, 그리고 좀 더 큰 아이들을 대상으로는 파닉스니 원서 읽기니 하는 엄청난 양의 학습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어요. 영어로 조사했을 때는 좀 더 언어적이고 본질적인 자료를 찾을 수 있었고요. 언어 습득에 관한 언어학자, 언어치료사, 이중언어 학자들의 연구 결과, 그리고 여러 언어를 접하고 사회적으로 습득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지식이었죠.
한국이 외국보다 뭐가 뒤떨어져서 이렇게 된 걸까요. 아니에요. 문화적인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한국 사회가 이제까지 경험해 온 학습 위주의 영어 교육, 조기교육의 부작용, 부모의 과도한 사교육 욕심에 희생당한 아이들, 단일 언어와 단일 민족이라는 신화. 우리는 이런 맥락 속에서 외국어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반면 이중언어, 삼중언어, 다중언어가 그냥 일상인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는 외국어는 그저 하나의 언어일 뿐이라는 전제 위에서 이야기하죠.
극단적인 이야기는 2000년대에 끝났어야 해요
저는 좀 답답해졌어요. 우리끼리 좁은 우물 안에서 한정된 전제에 갇혀 왈가왈부하고 있는 모습이요. 영어를 어릴 때 하면 큰일 난다, 늦게 하면 망한다, 원어민 같은 발음이 어쩌고, 파닉스가 어쩌고. 이런 극단적인 이야기는 2000년대에 이미 끝났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한국만의 특수한 맥락 속에서 계속 재생산되는 낡은 이야기죠. 이 우물에 갇혀 영어 교육을 받아 온 우리 세대의 결과가, 문제는 잘 풀지만 영어를 실제로 쓰지는 못하는 한국인의 모습이고요.
한국에 살 건데 왜 영어를 잘해야 하냐고요? 이것도 굉장히 옛날에 나온 질문이에요. 가장 단적인 예로 인터넷 정보량의 60% 이상이 영어이고 한국어는 1%도 안 돼요. 네이버에서 구글로, 한국어에서 영어로 검색 습관만 살짝 바꿔도 내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의 다양성이 엄청나게 달라지죠. 영어로 세계와 소통할 수 있어서 생기는 무궁무진한 기회나 사고의 확장은 말할 것도 없고요.
새로운 프레임, 영어는 언어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우리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해요. 아주 본질적인 핵심을 손에 쥐고 시야를 밖으로 돌려야 해요. 그 핵심은 '영어는 언어다'라는 거예요. 영어도 언어고 한국어도 언어예요. 그래서 저는 교육학자도 의사도 아동심리학자도 아닌 언어학자로부터, 어린아이가 한국어와 영어를 언어로서 경험하는 과정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본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모두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어를 교육으로만 접근하는 좁은 우물 안에서는 돌에 시작하든 일곱 살에 시작하든 영어 문제 잘 푸는 아이를 키워 내는 정도가 고작일 가능성이 높아요.
아이에게 외국어를 왜 알려 주고 싶나요? 다른 문화권과 다른 언어에 개방적인 마음을 갖고, 앞으로의 열린 사회에서 더 활발하고 진취적으로 살아가도록 돕고 싶기 때문 아닌가요. 그렇다면 부모부터 이 좁은 우물에서 나올 필요가 있어요.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만의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에서 눈을 돌려, 세계의 바이링구얼·멀티링구얼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지, 그걸 지켜보고 연구한 언어학자들은 아동의 외국어 노출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시야를 넓혀 보시면 좋겠어요.
언어학자에게서 들은 새로운 방향
그래서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한국학과 언어학을 가르치며 아이들의 이중언어 습득을 활발히 연구하고 관련 책도 쓰신 언어학자 조지은 교수님을 모시고, 영유아 시기의 외국어 노출을 언어학의 관점에서 듣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동안 부모님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했던 주제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오해와 편견을 정리해서 여쭤봤죠. 질문에 대한 답뿐 아니라 아이의 평생에 걸친 외국어 경험의 방향성을 잘 잡아 주셔서 많은 부모님께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게도 좋은 해답이 됐어요. 제 책에서는 바이링구얼 육아를 실전에 적용할 때 부모의 선택에 따라 1단계에서 3단계로 나눴어요. 1단계는 아이가 영어를 즐거운 경험으로 인식하고 소리에 감을 잡는 정도를 목표로 하고, 2·3단계는 부모가 영어 실력을 점차 높여 가면서 일상 속 특정 시간이나 상황을 떼어 영어로만 진행하는 방식이에요. 아이에게 영어를 써야 하는 이유와 동기를 더 줄 수 있다는 한 이중언어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인 거였죠. 그런데 늘 고민이었던 게, 2·3단계, 특히 3단계까지 가는 데는 많은 부모님이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았고, 반대로 1단계만 하면 효과가 없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도 있을 것 같았어요. 교수님은 1단계와 2·3단계 사이, 1.5단계쯤 되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셨어요. 부모가 각자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시도해 볼 수 있고 효과도 충분할 것 같은 방향이었죠. 이 방향을 듣고 더 다양하고 좋은 바이링구얼 육아의 모습을 소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뻤어요.
정리해 보면
- 영어 노출은 선택이에요. 부담을 느끼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 하기로 했다면 남이 정해 준 이분법이 아니라 올바른 지식으로 결정하세요.
- '어릴 때 하면 큰일, 늦으면 망한다' 같은 극단론은 한국만의 맥락에서 재생산된 낡은 이야기예요.
- 영어도 언어예요. 아이가 언어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세요.
- 세계의 바이링구얼 아이들과 언어학자들의 시각으로 시야를 넓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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