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3.12 · 16:27
언어학자가 말하는, 아이에게 건강하게 영어 노출시키는 법
정서적 언어가 먼저 자리잡은 뒤라면, 영어 노출은 많을수록 아이에게 도움이 됩니다.
아이에게 영어를 얼마나, 어떻게 노출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모국어가 흔들릴까 봐 걱정도 되고, 영어를 잘 못하는 부모라면 아이에게 뭘 해 줄 수 있을지도 막막하죠. 이 궁금증들을 언어학자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아이의 영어 노출, 정말 위험할까요
어떤 육아 전문가들은 아이가 모국어가 아닌 영어에 일찍 노출되면 모국어 노출 시간이 줄고 아이가 혼란을 겪는다며,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영어 노출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이 언어학자는 이런 걱정이 들어맞는 경우는 정말 드문 상황이라고 답했어요. 부모가 바빠서 아이가 어린이집, 집, 또 다른 보호자에게서 각기 다른 언어를 접하고, 그 어느 언어로도 정서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가정은 이런 상황과 거리가 멀다는 거죠.
가장 중요한 건 부모와 아이의 정서적 언어
언어학자가 강조한 원칙은 하나입니다. 부모와 아이 사이에 가장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정서적인 언어가 먼저 잘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엄마가 영어에 서툰데 억지로 영어로만 말하려다 표현 자체가 얕아진다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지만, 아이와 편한 언어로 정서적 교감이 잘 자리잡은 다음이라면 영어 노출은 많을수록 좋다고 말합니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은 여러 언어가 섞여 사는 다중언어 환경이고, 한국처럼 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의 언어만 쓰는 상황이 오히려 특수한 경우라고 해요. 언어 노출은 인지 발달과 사회성 발달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아이의 언어를 방해하기는커녕 여러모로 이롭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나는 영어를 못한다"고 할 때
다섯 살까지 영어 그림책을 즐겨 읽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나는 영어를 잘 모른다"며 자신 없어 하고 책에도 관심을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어학자는 이럴 때 아이와 직접 대화해 보라고 권했어요. 예전에 영어 특기반 같은 곳에서 선생님에게 "발음이 이상하다"는 말을 들은 게 마음에 남아 자신감을 잃는 아이들이 있다고 해요.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래 남는 거죠. 이럴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괜찮아, 잘하고 있어" 하고 다독여 주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감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이 최고의 책
그림책을 고를 때 아이의 취향에 맞춰 골랐는데 막상 너무 어려운 책이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언어학자는 너무 어렵지 않은 수준으로 책을 고르거나, 어려우면 부모가 쉽게 풀어 읽어 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합니다. 어릴 때는 학문적으로 어려운 책을 읽는 게 목표가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가장 잘 해낼 수 있고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을 곁에 두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손이 가는 책이 곧 자신감이 붙는 책이고, 그런 책이야말로 최고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레벨별로 정해진 리스트를 그대로 따라가려다 오히려 아이가 영어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부모는 선생님이 아니라 코치
영어를 잘 못하는 부모가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언어학자는 부모가 아이의 "선생님"이 되려 하지 말고 "코치"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해요. 부모가 영어 문법을 고쳐 주거나 가르쳐 줄 수는 없어도, 아이와 함께 영어로 놀아 줄 수는 있다는 겁니다. 예로 든 방법은 그림책 스케치북 같은 노트를 만들어, 아이와 책을 읽고 그림으로 소통하면서 영어 한마디를 덧붙이는 거예요. 문법을 고쳐 주지 않아도, "Well done", "Great", "Fantastic" 같은 한마디를 써 주고 말해 주는 것만으로 아이의 영어 표현은 시작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소통을 해 주는 코치가 되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언어학자의 조언입니다.
"영알못"이라는 말부터 버리세요
언어학자는 부모가 스스로를 "영어 못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부터 그만두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실제로 영어를 생산해 내지 못할 뿐, 알고 있는 영어는 상당히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영어 못한다", "발음이 이상하다" 같은 자기 검열의 말들은 걷어 내고, 영어를 그냥 집에서 친숙한 언어로 만드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미국 아이들의 영어를 살펴본 연구에서도, 중학교 1학년쯤 되어야 마스터한다고 여겨지는 단수·복수나 성별 구분 실수가 열 살 무렵까지도 흔하게 나타난다고 해요. 이런 건 실수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니, 아이의 사소한 실수에 너무 목숨 걸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모국어 발달이 늦어진 게 영어 탓일까요
18개월부터 엄마표 영어를 조금씩 병행했는데 아이의 한국어가 40개월쯤 늦게 트였고 조음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연도 있었습니다. 언어학자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영어 노출이 이런 지연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는 없다고 답했어요. 머릿속에서 한국어와 영어가 하나의 한정된 공간을 나눠 쓰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언어는 그렇게 자원을 나눠 쓰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죠. 언어 지연이나 조음 문제는 흔히 있는 일인데, 마침 영어에 노출된 아이라면 그 원인으로 영어를 지목하기 쉬울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리해 보면
- 부모와 아이 사이에 편안한 정서적 언어가 먼저 자리잡으면, 그 이후의 영어 노출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 아이가 영어에 자신 없어 한다면 계기를 물어보고, 다독이며 자신감을 되찾아 주세요.
- 어려운 책보다 아이가 자신 있게 손이 가는 책을 곁에 둡니다.
- 부모는 영어 선생님이 아니라 코치라는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영어로 놀아 줍니다.
- "영알못"이라는 자기 검열을 버리고, 영어를 집에서 친숙한 언어로 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