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아이에게 절대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아이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죠. 부모 자녀 관계는 어때야 하는지를 두고 충돌하는 주장이 참 많아요. 최근에 읽은 논문 한 편이 이 혼란을 꽤 깔끔하게 정리해 줬어요.

부모 자녀 관계는 톱니바퀴 다섯 개예요

이 논문의 요지는, 육아에서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하나의 큰 일관된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섯 개 영역으로 나뉘고 영역마다 원칙이 다르다는 거예요. 커다란 톱니바퀴 하나가 도는 게 아니라, 각각 다른 원리로 도는 톱니바퀴 다섯 개가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는 거죠.

제가 이 논문에서 얻은 답은 이거예요.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존재다, 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고, 부모는 아이에게 이런 존재도 저런 존재도 될 수 있으며 영역마다 다른 역할로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아이는 자라서 사회에 나가면 선생님, 친구, 후배 등 여러 관계에 적응해 가는 사회화 과정을 거쳐요. 상하 관계도 있고, 동등한 관계도 있고, 누가 누구를 돌봐 주는 관계도 있어서 관계마다 본질이 조금씩 다르죠. 논문의 분석에 따르면, 부모와 아이가 맺는 여러 가지 관계 모습 속에 아이가 나중에 경험할 다양한 사회화의 뿌리가 다 보인다고 해요. 아이는 생애 초기의 밀도 높은 부모와의 관계 안에서, 앞으로 사회에서 겪을 다양한 관계를 미리 경험하고 연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시기별로 등장하는 다섯 영역

다섯 영역을 시기별로 간단히 살펴볼게요.

  • 보호 영역은 생애 초기부터 시작돼요. 아이가 울고 힘들어하면 달래 주고 욕구를 채워 주면서 안정감을 주고, 그 경험으로 애착을 형성하죠. 여기서 부모는 보호자예요.
  • 상호 영역은 6개월 무렵부터 나타나요. 부모와 아이가 조금 더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혜택을 주고받는 관계예요. 부모가 아이의 요구를 수용해 주면 아이도 '부모는 나에게 좋은 것을 주는 존재고, 내가 협조하면 서로 좋은 것을 주고받을 수 있어'라고 느껴 더 협조적으로 나오게 돼요. 대립하는 사이가 아니라 같은 목표를 가진 파트너가 되는 거죠.
  • 통제 영역은 주로 돌 이후에 두드러져요. 아이에게 안 되는 것을 가르치고 행동을 통제하거나 교정하는 영역이라 위계가 뚜렷하고, 부모는 권위자 역할을 맡아요.
  • 가이드된 학습 영역은 두 돌에 가까워지면서 더 의미가 커져요. 부모가 적절히 스캐폴딩을 해 주면서 아이의 능력을 길러 주고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영역이고, 부모는 학습 가이드가 돼요.
  • 그룹 참여 영역은 조금 더 자란 뒤에 중요해져요. 가족 문화나 루틴, 습관을 함께하면서 소속감을 느끼는 영역이에요. 여기서 부모는 그냥 같은 그룹의 구성원이죠.

하나의 원칙으로 설명하려 하면 어긋나요

이렇게 관계의 본질이 여러 가지인데, 부모와 아이의 관계는 어때야 한다, 친구가 되면 안 된다, 선생님이 되면 안 된다 하는 식으로 너무 단순하게 설명하려 하면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겨요. 그래서 실제 육아에 적용할 때 어려움을 느끼게 되죠.

예를 들어 부모가 아이를 혜택을 주고받는 파트너로만 대한다면, 권위자로서 가르쳐야 할 규칙이나 행동의 한계는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 수 있어요. 반대로 부모가 보호자이기만 하다면, 아이가 스스로 능력을 기르도록 돕는 학습 가이드 역할은 잘 못할 수 있고요. 부모의 역할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명하려 하면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는 거예요.

우는 아이, 달래야 할까요?

논문에 아주 적절한 예가 하나 나와요. 아이가 울 때 달래 줄 것인가, 내버려 둘 것인가. 부모의 직관에서 나오는 답이 있으실 텐데, 당연히 달래 줘야 해요. 보호 영역에서 보면 아이의 고통을 달래고 보호하는 보호자로서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요.

그런데 영역을 착각해서, 아이가 우는 상황에 통제 영역의 원리를 잘못 끌어오면 달래 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려요. 통제 영역에서는 벌을 주거나 보상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부정적인 행동을 없애는 원리가 주로 작동하거든요. 우는 것을 통제해야 할 부정적인 행동으로 보면, 관심을 주지 않는 식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줘야 하고, 안아 주고 달래는 것은 긍정적인 피드백이니 우는 아이는 좀 무시해야 한다는 잘못된 결론으로 가게 되는 거예요. 우는 아기를 자꾸 안아 주면 손 탄다, 버릇 나빠진다는 옛 어른들 말씀은 애착이나 보호자로서의 부모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알지 못하던 시대에 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이가 크면서 역할의 무게중심이 옮겨 가요

즉 부모는 아이의 발달 단계에 따라,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에 따라 역할의 모드를 바꿀 수 있어야 해요. 요즘 저는 다미에게 파트너나 학습 가이드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고 느껴요. 권위자나 보호자 역할은 두 돌 이전에 비해 확실히 많이 줄었고요. 역할의 초점은 아이가 커 가면서 계속 바뀔 수 있어요.

그러니 부모로서 내 역할이 뭔지, 왜 예전보다 내 역할이 많이 바뀐 것 같은지 혼란스럽거나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부모는 역할을 바꿔 가면서 각 역할을 균형 있게 해내는 존재예요.

정리해 보면

  • 부모 자녀 관계는 하나의 원칙이 아니라 보호·상호·통제·가이드된 학습·그룹 참여 다섯 영역으로 이루어져요.
  • 영역마다 부모의 역할이 달라요. 보호자, 파트너, 권위자, 학습 가이드, 같은 그룹의 구성원.
  • 친구가 되면 안 된다, 선생님이 되면 안 된다처럼 한 가지로 단순화하면 실제 육아와 어긋나요.
  • 우는 아이는 달래 주세요. 통제 영역의 원리를 보호 영역에 잘못 적용하지 마세요.
  • 아이의 발달 단계와 상황에 따라 역할의 모드를 바꾸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