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는 성조숙증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어요. 오늘은 영유아기의 경험이 어떻게 사춘기 시기를 결정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춘기가 오는 시기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환경적 요소 중 상당히 중요한 하나가 바로 어릴 때의 몸무게 급증이에요.

몸무게가 빨리 느는 아이, 사춘기도 빨리 온다

태아 때 엄마가 잘 못 먹었거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아이가 작은 체중으로 태어났는데, 이후 2년 동안 몸무게가 빠르게 늘어 또래를 따라잡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걸 캐치업 성장이라고 하는데, 이런 아이들은 성조숙증이 올 가능성이 확실히 높아진다고 합니다. 작게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몸무게가 빠르게 늘어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예요. 반대로 아이가 크게 태어났거나 정상으로 태어났는데 몸무게가 지나치게 늘지 않는 경우에는 사춘기가 오히려 늦게 오는 경향이 있다고 해요.

태아기와 생애 초기는 몸무게나 키 같은 성장의 기본값이 정해지는 기초공사 시기예요. 태아 때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우리 몸은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에너지를 더 잘 저장하는 형태로 신진대사 시스템을 발달시킵니다. 반대로 생애 초기에 몸무게가 빨리 늘어난 아이들은 성장호르몬을 받아들이는 수용체 수도 빠르게 늘어나서, 살이 더 잘 찌는 체질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해요. 이 두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면 소아비만, 나아가 성인기 비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아요. 비만이 되지 않더라도 이 자체가 사춘기 시기를 앞당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정확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아직 잘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아기에 기초공사가 이뤄지는 성장호르몬과 성호르몬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으로 추측되고 있어요.

비만은 성조숙증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혀요

성조숙증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장 많은 학자들이 꼽는 단 하나의 요인이 바로 비만이에요. 최근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아이들의 사춘기 시작 시기는 10개월에서 18개월 정도 앞당겨졌다고 합니다. 이 흐름과 맞물려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요인이 전 세계적인 영양 상태 개선이에요.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과영양이 문제로 지적될 정도죠.

나이에 비해 너무 빠른 속도로 몸무게가 늘면 우리 뇌는 몸이 어른이 될 준비를 마쳤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몸이 자손을 낳을 준비가 되었는지를 판단할 때 영양 상태나 지방이 쌓인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통통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정서가 있고, 작게 태어난 아이라면 부모님이 오히려 더 먹이려고 애쓰기도 하죠. "지금은 통통해도 나중에 다 키로 간다"는 말은 사실 과학적으로 맞는 말이 아니에요. 8세 이전에 과영양으로 살이 찌는 것은 키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오히려 성조숙증을 거쳐 최종 키 관점에서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신진대사 시스템이 자리 잡는 어린 나이에 비만을 경험하면 지방세포 수나 렙틴 같은 호르몬에 영향을 미쳐서, 나중에 더 잘 찌는 체질과 성인 비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져요.

모유수유와 먹이는 습관이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몸무게가 급증하지 않게 하려면 첫째, 모유수유가 도움이 됩니다. 모유수유와 성조숙증의 관계를 다룬 연구는 상당히 많은데, 연구 규모로 보면 모유수유가 성조숙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쪽이 조금 더 우세해요. 적어도 초기 6개월 동안 모유수유한 아이들은 비만 가능성이 더 낮다고 알려져 있고요. 모유는 분유보다 단백질 수준이 낮은데, 단백질 섭취량은 생애 초기 몸무게와 키 성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예요. 직수는 아이가 먹는 만큼만 나오기 때문에 젖병 수유보다 과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유수유를 하고 계신데 아이 몸무게가 걱정되신다면, 단백질 함량이 낮은 분유를 고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어릴 때 저단백 분유를 먹은 아기들이 고단백 분유를 먹은 아기들보다 향후 비만이 될 가능성이 더 낮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수유 텀 없이 아이의 신호에 따라 수유하는 것도 도움이 돼요. 배고픔과 배부름이라는 내면의 신호에 맞게 스스로 식사량을 조절하도록 어릴 때부터 도와주는 게 중요하거든요. 특히 젖병 수유는 부모가 탄 만큼 끝까지 비우게 되는 경우가 많아 과식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아이가 배불러하는 신호를 살피면서 천천히 먹이는 습관이 필요해요. 한 연구에서는 안이 잘 안 보이는 불투명한 젖병을 쓰면 부모가 분유량 대신 아이의 신호로 수유 중지 시점을 판단하게 되어 과식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냈어요. 아이가 크면서는 간식보다 식사로 영양을 채우고, 채소나 생선 등 다양한 식품군을 골고루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쓴맛 나는 채소를 잘 안 먹는 건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이니, 부모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이며 꾸준히 노출하면 거부감이 서서히 줄어들어요. 식이섬유가 풍부한 통곡물, DHA가 풍부한 등푸른 생선, 폴리페놀이 많은 블루베리, 유산균이 풍부한 발효식품처럼 장내 미생물에 좋은 음식도 신경 써 주세요. 나쁜 장내 미생물 환경은 비만은 물론 성조숙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거든요.

안정된 애착 형성도 사춘기 시기에 영향을 줍니다

한 연구에서는 15개월 무렵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들이 향후 성조숙증이 올 가능성이 더 높다고 밝히고 있어요. 이 연구의 저자는 생애 초기에 사람의 몸이 여러 경험을 통해 향후 번식을 위한 전략을 미리 프로그래밍한다고 설명합니다. 세상이 위험한지 아닌지를 판단해서 몸을 언제 성숙시킬지 미리 계획을 세운다는 거예요. 세상이 위험한 곳이라면 생존이 보장되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성숙해서 자손을 낳는 게 유리한 전략이 되고, 환경이 안정되어 있다면 조금 더 준비된 다음 성숙하는 게 몸에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불안정 애착은 아이가 부모를 안전기지로 여기지 못할 때 형성돼요. 부모가 충분히 따뜻하게 반응해 주지 않으면, 아이는 위험할 때 이 사람이 나를 최우선으로 지켜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마음속에 갖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을 더 위험하고 불안한 공간으로 인식하는데, 이런 경험이 사춘기 타이밍을 정하는 생체 시스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불안정 애착과 비만의 상관관계를 밝힌 연구들도 꽤 있습니다. 물론 부모가 식단에 신경을 덜 쓰거나 아이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등 다른 경로도 있을 수 있어 인과관계를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생애 초기의 생물학적 프로그래밍이라는 관점에서도 충분히 해석 가능한 결과예요.

정리해 보면

  • 태아기에 작게 태어났다가 빠르게 따라잡기 성장을 하거나, 영유아기에 몸무게가 급증하면 성조숙증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 비만은 성조숙증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단일 요인으로 꼽히며, "통통해도 나중에 키로 간다"는 말은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 모유수유, 아이 신호에 따른 수유, 젖병 과식 방지 같은 습관이 어릴 때 몸무게 급증을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자라면서는 간식보다 식사로 영양을 채우고 장내 미생물에 좋은 식품을 골고루 먹이세요.
  • 부모가 안전기지가 되어 안정된 애착을 형성해 주는 것도 사춘기 시기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