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3.01 · 18:37
몬테소리와 발도르프, 꼭 하나만 골라야 할까요
겉은 반대 같아도 뿌리는 같고 둘 다 좋아요. 교조주의에 갇히지 말고 각각의 좋은 점을 내 육아에 녹이면 됩니다.
인지발달이나 교육에 관심이 있거나 장난감을 열심히 찾아보신 분이라면 몬테소리와 발도르프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 보셨을 거예요. 둘 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영유아 교육 철학인데, 막상 접하다 보면 뭐가 맞는 건지 헷갈리기 쉽죠. 겉으로 드러나는 놀잇감과 활동의 성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닫힌 놀이의 몬테소리, 열린 놀이의 발도르프
아주 단순화해서 말하면, 놀이의 성격에서 몬테소리는 닫힌 놀이를, 발도르프는 열린 놀이를 추구해요.
몬테소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아이가 무언가에 숙달하는 경험이에요. 내적 동기를 갖고 몰입해서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 이런 숙달 지향성을 아이 마음에 키워 주려고 여러 교구를 준비해 둡니다. 손으로 조작하기 조금 어려운 과제에 도전해 몇 주 동안 반복하다 능숙해지면, 다음에는 조금 더 어려운 단계를 스스로 골라서 해요. 아이 입장에서는 놀이인데, 그 안에서 성장의 기쁨을 배워 가는 거죠.
발도르프의 놀잇감은 정해진 답도 목표도 없어요. 이렇게도 놀고 저렇게도 놀면서 확산적으로 생각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떠올리는 열린 놀이를 주로 하죠. 정답이 없으니 '해냈다'는 성취감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지만, 확산적 사고 같은 면에서 강점이 있어요.
참고로 저는 몬테소리를 훨씬 깊이 공부했고 발도르프는 이해가 그만큼 깊지 않을 수 있어요. 그래도 부모가 둘 중 하나를 골라 그것만 추구해야 할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마디로 "교조주의를 경계하자"예요. 어떤 사상에 종교처럼 푹 빠져서 그것만 옳고 나머지는 나쁘다고 여기게 되는 것 말이에요. 몬테소리를 하면 발도르프를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 구도를 좋게 보지 않아요.
아이가 혼란스러워한다는 근거는 없어요
몬테소리와 발도르프가 양립할 수 없다고 보는 분들이 자주 드는 이유가 '아이에게 혼란을 준다'는 거예요. 어떤 놀이는 방법이 정해져 있고 어떤 놀이는 정해진 방법이 없으니 헷갈린다는 거죠. 그런데 아이들이 실제로 혼란을 느낀다는 좋은 근거는 없어요. 둘을 같이 해서 세상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는 사례도 없고요. 근거가 없는 주장은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정답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는 사실, 세상에는 여러 원칙이 나란히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게 바른 교육 방향이 아닐까요. 발도르프로 키운 아이에게도 언젠가는 "어떤 건 매뉴얼대로 해야 해", "시험에서는 정답을 골라야 해" 하고 가르쳐야 하잖아요. 반대로 세상에는 정답 있는 것만 있다고 믿게 되는 것도 큰 문제고요. 기관 커리큘럼은 한쪽 방향을 택할 수 있지만, 아이는 부모와 다양한 놀이와 경험을 하면서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걸 배워야 해요. 혼란을 주지 않겠다고 한 종류의 놀이만 시키는 건 오히려 세상의 다양한 원칙을 배울 기회를 빼앗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놀이 경험을 통해 "이 장난감은 정답이 있구나, 이 장난감은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거구나"를 충분히 배워 가요. 다미와 저는 열린 놀이도 하고 닫힌 놀이도 하는데, 요즘은 블록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열린 놀이를 더 많이 해요. 그런데 퍼즐처럼 정답이 있는 장난감을 할 때 제가 잘못하면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엄마" 하면서 장난감이 의도한 대로 하더라고요. 그건 그렇게 하는 거라는 걸 자기가 아니까요.
혼란을 준다는 말은 아이들을 좀 얕잡아 보는 것 같아요. 어릴 때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들려주는 것과 비슷해요. 생후 4~5개월 아기도 두 언어가 다른 체계와 리듬을 가졌다는 걸 바로 구분해서 받아들인다고 하거든요. 어른 눈에는 아이가 백지 같아 보이니 혼란을 걱정하지만, 처음에 잠깐 헷갈리더라도 아이는 그 과정에서 "이 상황엔 이 규칙, 저 상황엔 저 규칙"을 다 이해할 수 있어요.
겉은 반대 같아도 뿌리는 같아요
몬테소리와 발도르프를 겉으로만 보면 반대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아주 비슷해요. 아이가 놀이를 주도한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한다, 제한된 울타리 안에서 자유를 준다, 몸을 움직이고 손을 쓰면서 세상을 이해해 간다. 핵심은 같아요. 아이에게 좋은 방향이 뿌리부터 다를 수는 없거든요. 위에 얹히는 적용 방식은 달라도 핵심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어요.
그리고 둘 다 좋을 수 있어요. 국어도 아이에게 좋고 체육도 좋잖아요. 책 읽기가 좋다고 아이가 체육을 못 하게 하고 하루 종일 책만 읽게 하는 분은 없겠죠. 좋으면 다 하면 됩니다. 제가 AMI 자격증을 따며 배운 시몬 데이비스 선생님은 정통 AMI 교사이고 네덜란드에서 몬테소리 기관을 운영하시는데, 그분 집에는 레고 듀플로나 블록 같은 열린 놀잇감이 있고 부모들에게도 그런 장난감을 추천해요. 몬테소리 교사도 "하루 종일 몬테소리만 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아요.
부모로서 아이를 이끌 때는 기관보다 더 균형 잡힌 큰 그림으로 봐야 해요. 아이가 기관에 다니더라도 하루 종일 거기 있는 건 아니니까요. 몬테소리 기관의 커리큘럼을 가정에 100% 옮겨 오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몬테소리가 직접 운영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도 하원하면 집에서 열린 놀이, 상상 놀이를 했을 거예요. 몬테소리는 집에서도 성취감을 느끼는 몬테소리 활동을 시키라고 권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몬테소리 육아를 한다고 하루 종일 닫힌 놀이만 하려는 건, 좋다는 걸 지나치게 확장해서 잘못 적용하는 사례가 되는 거죠.
중요한 건 "나는 몬테소리 육아를 하니까 몬테소리 기관에서 하는 것만 시킬 거야" 하지 않고, 각 교육 철학이 왜 이런 놀이가 아이에게 좋다고 하는지 이해해서 내 육아에 적절히 녹이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적당히 조합할 수도 있고요. 저는 제 육아가 몬테소리 육아라고도, 발도르프 육아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베싸 육아예요. 얻은 지식을 잘 녹여서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 가는 거죠. 여러분도 무언가에 너무 갇히지 않고 각자의 육아를 하셨으면 해요.
베싸네 집에서는 이렇게 섞어 써요
이건 그냥 제 스타일이지 정답이 아니에요. 일상생활과 생활 환경은 몬테소리에서 힌트를 많이 얻었어요. 아이가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는 낮은 식탁과 의자에서 밥을 먹는 것(지금은 다미가 어른 식탁도 자유롭게 오르내려서 같이 먹어요), 스스로 양치하고 단장하고 옷을 꺼내 입는 것처럼 일상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늘려 가는 것 같은 부분이요.
놀이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도록 닫힌 놀이와 열린 놀이라고 부를게요. 둘 다 적절히 했어요. 6개월 이전에는 닫힌 놀잇감을 많이 준비해 줬고, 그 뒤로 열린 장난감을 조금씩 교구장에 채우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발도르프 스타일이라 할 만한 열린 놀이를 많이 해요. 목적이 있고 딱 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몬테소리 스타일 장난감에 장단점이 있듯, 열린 놀이에도 장단점이 있더라고요.
열린 놀이의 장점과 단점
장점부터 볼게요. 첫째, 가성비가 좋아요. 발도르프 장난감은 하나하나는 비싸요. 그림스 같은 건 하나에 20만~30만 원 하잖아요. 하지만 한 장난감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 무궁무진하게 놀 수 있어서, 아이가 일단 열린 놀이에 자신감이 생기면 정말 많이, 오래 가지고 놀아요. 아이가 커 가면서 자기 발달 수준에 맞는 방식으로 다르게 놀 수 있거든요. 블록이라면 어릴 땐 쌓기만 하다가 여섯, 일곱 살이 되면 성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지어내죠. 장난감 하나의 수명이 길어요.
둘째, 몬테소리식 환경 세팅보다 부모 품이 덜 들어요. 몬테소리 스타일 장난감은 아이가 단기간에 집중해서 마스터하고 나면 가치가 떨어지거든요. 기관에는 난이도 순으로 교구가 1번부터 100번까지 있어서 하나를 끝내면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넘어가지만, 집에서는 한 명을 키우는 거라 교구를 100개 갖다 놓을 수 없어요. 발달 단계를 보면서 흥미 없는 건 빼고 맞는 걸 사거나 만들어서 환경을 계속 바꿔 줘야 하고, 그렇게 해도 기관과 달리 공동체가 아니라서 동기부여가 잘 안 되기도 해요. 열린 놀잇감도 환경 세팅 방식은 있지만 장난감을 찾고 만드는 품이 덜 들어서 장기적으로 편해요.
셋째, 교육적으로 확산적 사고, 창의력, 문제 해결력,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 보는 주도성이 길러져요.
단점은 닫힌 장난감보다 어렵다는 거예요.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요. 그림스 레인보우를 갖고 계신 분 중에 아이가 잘 가지고 놀지 않거나, "내 창의력이 부족해서 노는 법을 충분히 안내하지 못하겠어"라고 느끼는 분이 많을 거예요. 열린 놀이는 다양하게 놀 수 있다고 하지만, 아이가 장난감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이걸로 이것도 저것도 만들 수 있겠다"가 떠오르는 건 아니거든요. 아이도 익숙해져야 하고, 레퍼토리가 머릿속에 생기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그 과정에서 부모가 충분히 모델링해 주면서 천천히 익혀 가는 스킬이에요.
로켓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아주 강한 추진력이 필요하지만 일단 올라가면 알아서 가듯이, 열린 놀이도 초반에 추진력이 필요해요. 아이의 스킬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알아서 이것저것 해 보며 늘거든요. 저도 다미와 그 궤도에 오르려고 장기적으로 열린 놀이의 길을 밟아 가는 중이에요.
정리해 보면
- 몬테소리는 숙달을 향한 닫힌 놀이, 발도르프는 정답 없는 열린 놀이를 추구하지만, 아이 주도·선택 존중·움직임을 통한 배움이라는 뿌리는 같아요.
- 두 가지를 함께 하면 아이가 혼란스러워한다는 근거는 없고, 아이는 경험으로 어떤 놀이에 답이 있고 없는지 금방 구분해요.
- 국어와 체육처럼 둘 다 좋으면 둘 다 하면 되고, 기관 커리큘럼을 집에 100% 옮길 필요는 없어요.
- 열린 놀이는 장난감 수명이 길고 부모 품이 덜 들지만, 아이가 궤도에 오르기까지 부모의 모델링이 필요해요.
- 하나의 철학에 갇히지 말고 각각의 좋은 점을 이해해서 우리 아이에게 맞는 나만의 육아를 만들어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