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싸TV 영상 · 2022.06 · 20:25
두 돌 이후 미술놀이와 보드게임: 소근육과 실행기능을 키우는 놀이
미술놀이는 결과물보다 손을 쓰는 과정이, 보드게임은 룰을 지키며 기다리는 경험이 실행기능을 키워요.
앞선 글에서 닫힌 장난감과 열린 장난감을 소개했고, 이번에는 두 돌에서 세 돌 사이 아이를 위한 미술놀이 아이템과 보드게임이에요. 둘 다 비싼 장난감 없이도 소근육과 실행기능을 키울 수 있는 놀이예요.
미술놀이, 멋진 결과물이 목표가 아니에요
미술놀이는 비싸고 정교한 장난감 없이도 소근육과 눈손 협응을 발달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에요. 활동하면서 다양한 어휘를 들려줄 수 있어 언어 발달에도 좋고요. 어린 아이에게 미술이 창의성이나 자기표현에 좋다는 명확한 근거는 아직 부족하지만, 소근육 발달만 두고 봐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아이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유익한 활동인 건 분명해요.
팁을 하나 드리면, 아이와 그림을 그릴 때 너무 멋진 걸 자꾸 그려 주면 신기하고 재밌어서 그려 달라고만 하고 정작 본인은 손을 쓰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려 달라고 하면 동그라미나 선처럼 쉬운 것 위주로 그려 주세요.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환경에서 활동하면 아이가 미술놀이에 계속 흥미를 가질 수 있어요.
요즘 많이 나오는 엄마표 미술 키트가 나쁘다고 보진 않지만, 키트로만 하다 보면 멋진 결과물이 없을 때 미술을 즐기기 어려워질 수 있어요. 결과물이 정해져 있으니 아이가 정해진 방식대로 안 하면 다그치게 되거나 부모 주도로 흘러가기 쉽고요. 멋진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손을 많이 쓰고 "내가 원하는 걸 어떻게 표현해 볼까" 생각해 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해요. 아이가 주도적으로 종이나 여러 표면에 아무렇게나 끄적이는 경험도 함께 많이 하셨으면 해요.
물감은 한 가지 색부터, 도구는 다양하게
두 돌 정도면 물감을 비롯한 다양한 도구로 미술놀이를 할 수 있어요. 물감은 한 가지 색으로 시작하세요. 두 가지 이상 주면 열에 아홉은 색 섞기에 열중하니, 한 개에서 두 개, 세 개로 점차 늘려 가세요. 물의 농도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고 붓 크기나 누르는 강도에 따라 선 두께도 달라져서, 아이가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인과관계를 익힐 수 있어요. 붓 외에 롤러나 찍기 도구를 써도 되고 손으로 그려도 돼요.
파스넷 같은 크레파스는 부드럽게 잘 그려져서 기본으로 갖춰 두면 유용하고, 물로 지워지는 워셔블 마커도 좋아요. 마커는 약간 뻑뻑해서 선의 표현이 물감이나 크레파스와 또 달라요. 색연필은 손에 힘이 더 필요해서 손 힘을 기르기 좋고요. 꼭 유아용이 아니어도 파스텔, 분필, 일반 펜 등 뭐든 시도해 보세요. '물 서예'로 검색하면 물만 묻혀도 그림이 그려지고 마르면 사라지는 종이를 살 수 있는데, 더러워질 걱정 없이 물감놀이를 할 수 있어 아이도 대체로 흥미로워해요.
스케치북 밖으로: 바닥, 벽, 그리고 이젤
스케치북 안에서 선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연습하는 것도 충동 조절 연습이 되지만,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 주면 아이가 더 흥미로워하며 열심히 참여해요. 저는 롤 페이퍼를 걸 수 있는 미술 책상에 종이를 길게 펼쳐 놓고 함께 그리기도 하고, 전지를 바닥에 크게 깔거나 잘 지워지는 물감은 화장실 바닥에 그리기도 해요. 아크릴 판, 반찬통, 블랙보드나 화이트보드처럼 더러워져도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시도해 보세요.
또 하나 추천하고 싶은 게 이젤이에요. 몬테소리 기관에서도 많이 쓰는데, 수평면보다 이젤의 수직면에 그릴 때 아이가 그림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어 몰입에 도움이 되고, 어깨와 팔의 다양한 근육을 더 쓰게 돼요. 서서 그리니까 오래 앉아 있기 어려워하는 아이에게도 좋고, 오른손이 몸의 중앙선을 넘어가 왼쪽에 그림을 그리는 일도 많아져요.
이 마지막 항목은 조금 생소하실 거예요. 중앙선 넘기(crossing the midline)라고 하는, 몸의 중앙선을 넘어가서 활동하는 능력은 여러 소근육·대근육 스킬 발달에 중요해요. 아주 어린 아이들은 보통 오른손은 몸 오른쪽에서, 왼손은 몸 왼쪽에서만 쓰다가, 크면서 점점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에서도 손을 쓰게 돼요. 이런 활동을 많이 하면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촉진되고, 한쪽 손을 우세하게 쓰는 연습을 하면서 소근육이 더 세밀하게 발달할 토대가 되고, 읽기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에도 필수적이에요. 신발을 신는 것처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연습되는 스킬이지만, 미술놀이 중에 조금 더 연습할 기회가 있으면 더 좋겠죠.
크레욜라 제품과 아무 데나 그릴 때 대처법
크레욜라는 영유아용 미술 도구를 무독성으로만 팔아서 안심하고 살 수 있어요. 목욕할 때 쓰는 크레용도 있어서 목욕놀이를 더 풍부하게 하면서 소근육 발달도 되는 시간을 만들 수 있고요. 미술놀이의 최대 강점은 가성비죠. 크레욜라 야외용 분필은 커서 부러질 걱정 없이 바닥에 그릴 수 있고 물에 아주 잘 지워져요. 물티슈나 물총으로 지우거나, 비 올 때까지 기다려도 괜찮은 곳이라면 그냥 두셔도 되고요.
창문이나 거울에 그리는 크레용도 있어요. 표면마다 맞는 도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면 좋고, 다 그리고 나서 몬테소리 일상생활 활동인 창문 닦기와 연결하면 더 좋아요. 종이가 아닌 피규어에 그림을 그리고 작은 도구로 씻어 내는 제품은 상상놀이와 미술놀이를 둘 다 할 수 있고, 집중해서 깨끗이 씻어 내는 과업을 완수하면서 소근육도 발달하는 몬테소리스러운 면이 있어요. 목욕이나 샤워를 싫어하는 아이라면 씻는 것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색칠할 수 있는 집도 텐트처럼 아이가 들어가서 놀 만한 놀잇감이 없다면 괜찮아요. 오며 가며 색칠할 동기가 생긴다는 것 자체도 좋고 상상놀이에도 활용할 수 있어요. 집이 크니까 어린 아이라면 정교하게 색칠하기보다 핑거 페인팅이나 롤러로 크게 칠하는 게 더 즐거울 것 같아요. 크레욜라만의 특이한 제품으로 메스 프리도 있어요. 전용 종이에만 색이 나타나는 특수 마커로 색칠놀이를 하는 제품이라 외출할 때 가지고 다니기 좋고, 다미도 흥미로워하며 잘 하더라고요. 각 장면을 엮어 간단한 스토리를 만들어 보면 좋은 언어 활동이 되겠죠.
다만 아이가 소파 같은 데 그린다고 해서 미술놀이 자체를 섣부르게 포기하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그림은 종이에만 그리는 거야" 하고 긍정적인 톤으로 반복해서 바로잡아 주고, 말을 안 들으면 "화장실에 가서 그리자" 정도의 대안을 주세요. 그래도 계속 다른 곳에 그리려 하면 차분하게 "오늘은 미술놀이는 안 되겠구나" 하고 정리하면 돼요. 아무 데나 그리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고 종이 안에 그리는 룰을 지키는 것도 좋은 배움이에요.
보드게임이 실행기능을 키우는 이유
보드게임은 아무리 간단한 게임이라도 룰이 있어요. 내 차례 다음에 네 차례, 네가 할 때 나는 기다려야 해, 이런 것도 룰이죠.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참을 줄 알아야 해서 자기조절 연습이 되고, 룰을 숙지하고 그대로 행동하려면 기억도 잘해야 하니 기억력 연습도 돼요. 도중에 룰이 바뀌면 기존 룰을 폐기하고 새 룰을 따라야 하는데, 여기서 인지적 유연성이라는 스킬도 길러져요.
이 스킬들은 모두 실행기능이라는 능력의 영역이에요. 어릴 때부터 개인차가 나타나는 실행기능은 학업 성취와 직업적 성공을 비롯한 삶의 모든 성취에 중요한 능력으로 주목받고 있어요. 똑똑한 아이보다, 놀고 싶은 충동을 참고 상황마다 요구되는 룰에 따라 자기 행동을 바꾸면서 과업을 꾸준히 달성해 나갈 줄 아는 아이가 뭐든 더 잘한다는 거죠. 저는 이 개념을 알고 나서 관심이 많아졌어요. 이 능력이 어릴 때부터 길러질 수 있다는 연구를 보고 나니, 다미가 실행기능을 갖춰서 나중에 제 잔소리 없이도 알아서 삶의 과업을 달성해 나가도록 돕는 게 부모로서 제 역할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관심이 있다면 엘렌 갤린스키의 책이, 영어가 되신다면 아델 다이아몬드 교수의 논문도 도움이 돼요.
보드게임의 또 다른 중요한 장점은 상호작용이에요. 다른 사람과 함께 하니까 아이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되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으로 유대감을 쌓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요. 어떻게 반응하고 놀아 줘야 할지 잘 모르겠는 아빠나 친척, 육아 참여도가 낮은 부모라면 보드게임이 반응육아와 관계 쌓기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실행기능과 반응육아, 이 두 가지 때문에 저는 보드게임에 관심이 많아요.
만 2세부터 할 수 있는 보드게임
보드게임은 주로 유치원생 이상을 대상으로 한 게 많은데, 최근에는 만 2세 정도 어린 아이를 위한 게임도 조금씩 나와요. 만 2세가 보드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최소 나이인 것 같고, 이 나이용 게임은 이기고 지는 개념이 없는 게 많더라고요.
피스풀 킹덤의 멍키 어라운드는 번갈아 카드를 뽑아 거기 나오는 그림과 지시에 맞게 동작을 하는 게임으로, 이기고 지는 건 없어요. 전체 카드의 3분의 1 정도는 동봉된 봉제 바나나를 쓰는데, 머리에 올리거나 파트너에게 던져서 받는 식이죠. 동작을 완성하면 카드를 나무의 빈 칸에 놓고, 다섯 개를 다 채우면 한 게임이 끝나요.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아이들이, 특히 바나나가 필요한 동작을 아주 좋아해요. 파트너와 함께하는 신체 활동과 스킨십이 많아서 어린 아이 발달을 잘 이해하고 만든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작을 설명하며 언어 발달에 좋은 어휘도 들려줄 수 있고, 세 돌까지 즐겁게 할 수 있고 형제자매끼리도 잘 가지고 논다고 해요. 동작 지시가 영어라 이중언어 육아를 하는 분들에게 특히 좋고, 아니면 한국어로 설명해 주면 돼요.
도토리 수프도 이기고 지는 것 없이, 레시피 카드대로 재료를 냄비에 넣는 게임이에요. 재료를 세면서 수 감각을 익히고, 순서에 맞게 찾으면서 작업 기억력이 좋아지고, 스푼에서 떨어뜨리지 않게 옮기면서 소근육과 균형감각에도 도움이 돼요. 난이도를 높이려면 재료와 냄비 사이 간격을 멀리 떨어뜨려 놓으세요. 요리사나 배고픈 아이들을 돕는 역할을 주면 상상놀이도 할 수 있고, 만 2세에서 3세 아이에게 딱 좋고 그 이상은 조금 지루할 수 있어요. 다미는 요리 콘셉트 때문인지 멍키 어라운드보다 이걸 더 좋아했어요. 이 두 게임을 고른 이유는 보드게임이면서도 대근육·소근육 신체 활동이 많이 수반된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 밖에 국내에서 살 만한 유아 보드게임 브랜드로는 하바와 오차드 토이즈가 있어요. 하바 제품 중 만 2세에 할 수 있는 것으로 가장 마음에 든 건 주사위로 찾을 목표를 정하는 게임이에요. 색깔이 나오면 그 색 장난감을, 모양이 나오면 그 모양 장난감을 찾고, 조각을 뒤집어 조건에 맞으면 내가 갖고 아니면 다시 놓아서, 마지막에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이겨요. 특히 좋았던 점은 주사위가 색이냐 모양이냐에 따라 룰이 계속 달라져서, 그 룰을 기억하면서 플레이해야 한다는 거예요. 실행기능 중 인지적 유연성과 작업 기억력을 키우기에 좋은, 상당히 교육적인 게임이에요.
하바의 나의 첫 번째 과수원도 글로벌하게 인기 있는 협력 게임이에요. 번갈아 주사위를 던져서 색깔이 나오면 그 색 과일을 수확하고, 바구니가 나오면 원하는 과일을 아무거나 수확하고, 까마귀가 나오면 과수원 방향으로 한 칸 옮겨요. 까마귀가 도착하기 전에 과일을 다 수확하면 다 같이 이겨요. 바구니가 나왔을 때 가장 많이 남은 과일을 가져가는 게 유리해서, 반복하다 보면 기초적인 전략을 세우는 능력도 키울 수 있어요. 부모가 까마귀 연기를 실감 나게 해 주면 아이가 더 즐거워할 거예요.
영국 오차드 토이즈에는 만 2세용 게임이 많지는 않았는데 우체통 게임이 괜찮았어요. 편지를 하나씩 뒤집어 같은 색 우체통에 넣는 심플한 색 분류 게임도 되고, 각자 우체통 색을 정한 다음 맞는 색 편지를 찾으면 넣는 기억력 게임 형태로도 할 수 있어요. 만 2세에 적합하게 심플한데, 그만큼 아주 오래 플레이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은 우체통이 생소할 수 있으니, 게임 전에 우체통에 편지를 넣는 내용의 책이나 경험을 접하게 해 주면 더 즐겁게 할 수 있을 거예요.
정리해 보면
- 미술놀이는 멋진 결과물이 아니라 손을 쓰고 표현을 고민하는 과정이 목표예요. 너무 잘 그려 주지 마세요.
- 물감은 한 가지 색부터 시작하고, 스케치북 밖의 바닥·벽·이젤로 환경을 바꿔 주세요.
- 이젤처럼 몸의 중앙선을 넘어 손을 쓰는 활동은 소근육 발달의 토대가 돼요.
- 보드게임의 룰과 차례 기다리기는 자기조절·기억력·인지적 유연성, 즉 실행기능을 키워요.
- 만 2세에게는 이기고 지는 것 없이 신체 활동이 많은 게임으로 시작하세요.